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단순히 ‘걸크러시’, ‘센 언니’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함이었다.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 제작 반짝반짝영화사)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문소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위를 압도하는 기운을 갖고 있었다. 뭔가를 깨부수거나 내리누르는 데서 오는 강함이 아니었다. 19년 배우 인생이 쌓아온 내공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지성미의 결과물인 ‘멋짐’이 인터뷰장을 환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영화 ‘배심원들’은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작품. 어쩌다 배심원이 된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문소리는 주심 재판관 김준경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극의 중심축을 확실히 잡아준다.

영화가 공개된 후 뛰어난 완성도와 영화적 재미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지적인 아름다움이 뭔지 알게 해주는 문소리의 연기에 ‘명불허전’이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문소리는 영화에 대한 호평에 무척 고무됐는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법복을 입고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언론 시사 전날 사실 잠을 못 잤어요. 사실 제가 낙천적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있는 걱정, 없는 걱정을 다 싸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우리 영화의 방향을 관객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메시지가 잘 전달될까 등등 고민이 고민을 낳더라고요.(웃음) 다행히 반응이 좋아 한시름 놓았어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있는데 우리 영화는 촬영할 때부터 어떻게 이리 좋은 마음만 모여서 작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님들까지 좋은 마음을 모아주니 정말 힘이 돼요. 오랫동안 고집스레 영화를 준비한 감독님의 진심이 인정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게 이 영화의 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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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는 충무로에서 최고의 달변가로 알려진 배우. 그런 문소리에게 판사 역할은 맞춤 배역 같은 느낌이다. 홍승완 감독이 “선배님밖에 이 역할을 할 배우가 없다”며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온 후부터 문소리는 김준경 판사 역할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재판을 참관했고 김영란 전 대법관부터 수많은 여성 판사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사실 여성 판사들을 만나기 전 엄청 많이 다를 줄 알았는데 그들도 사람이니 똑같더라고요.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 달라요. 판결문도 판사마다 자신의 개성이 들어가더라고요. 정답이 없었어요. 어떤 분은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어떤 분은 만연체로 쓰셨어요. 모든 이들이 이해하게 쉽게 쓰는 요즘 추세에 맞춰 쓰는 분도 계시고요. 판결문을 읽을 때도 판사마다 톤이 다 달랐어요. 그래서 (누구를 흉내내기보다) 나 자신에서 캐릭터를 출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판사님들과 개인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솔직히 어려운 지점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야기 나눠보니 그들도 한 명의 직장인이고 엄마더라고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속 저와 다를 바 없었어요. 촬영 준비할 때부터 맥주 한 잔 하며 많이 친해져 요즘도 ‘문부장님. 우리 회동 언제인가요”라고 문자가 오곤 해요.“

영화 ‘배심원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는 이유는 문소리를 중심으로 박형식 조한철 백수장 김흥파 서정연 권해효 이영진 등 실력파 신구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강렬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다. 특히 영화를 이끄는 배심원 8번 권남우 역을 맡은 박형식은 특유의 순수한 건강함으로 큰 웃음을 선사하며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문소리는 박형식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박형식에 대한 정보가 영화를 찍기 전 별로 없어 출연한 작품들을 찾아봤어요. 감독님이 예능 ‘진짜 사나이’에 나온 순수하고 어수룩한 인간 박형식을 보고 권남우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대본 리딩 때 처음 만났는데 키도 크고 인물이 훤칠해 8명의 배심원으로는 좀 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좀 들었어요. 그러나 촬영을 2~3회차 하니 절대 튀지 않고 하나의 그림이 돼 있더라고요. 정말 그건 자기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인데 그 나이의 친구가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드니 후배에게 조언은 조심스럽더라고요. 박형식이 촬영 초반 테이크가 스무번 넘게 가니 어쩔 줄 모르더라고요. ‘누나 나 어떻게 하냐”고 묻기에 ’나도 ’박하사탕‘ 찍을 때 스무번에서 삼십번 테이크 가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해줬죠. 그러며 ‘감독님을 잘 들여다보라. 감독님이 만들어놓은 세상이니 답은 감독님 안에 있다“고 이야기해주니 금방 알아듣더라고요.”

문소리는 이제 내년이면 연기생활 20년차. 수많은 작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배심원들’은 ‘박하사탕’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에 이은 ‘인생작’이 될 만한 작품. 문소리는 영화 속 연기에 대해 “부드러운 ‘걸크러시’가 뭔지 알게 해주었다”는 찬사를 건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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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걸크러시를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지향한 적이 없어요. 제가 누구를 크러시(crush,으스러뜨리다)하다뇨!. 누구랑 충돌하는 거 원하지 않아요. 화합하고 평화롭게 살아야죠. 강하게 보이는 건 제 안에 있는 씨고 거둬야 할 열매인 건 맞아요. 작품 안에서 발현되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건 저도 소심하고 여린 구석이 있는 사람이에요. 한 없이 나약하고 여성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어요. 배우 20년차는 큰 의미를 안 둬요. 전 뒤는 돌아보지 않아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는 편이죠. 아직 못해본 게 많아요. 진한 멜로는 ‘오아시스’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스파이’ 때 처음 접한 코미디도 자신 있는데 기회가 안 오네요. 제 코믹 본능은 ‘코미디의 대가’ 윤제균 감독님이 인정해주셨어요.(웃음) 배우로서 소망은 이창동 감독님과 다시 한 번 작업해보는 거예요. 시간이 걸려도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언제 배우를 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조곤조곤 자신의 연기 열정을 토해냈다.

"저는 배우 일을 시작한 게 가장 잘한 일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촬영장에 가기 전 새벽 6~7시 정도예요. 차속에 있거나 메이크업을 하면서 그날 할 연기들을 생각하며 드는 긴장감과 설렘이 정말 좋아요. 이번에 양수리 촬영장에서 촬영할 때 숙소에서 촬영장까지 걸어갔는데 스멀스멀 연기할 캐릭터의 감정이 올라오는데 그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촬영장에서 펼쳐질 일들이 기대되면서 에너지가 확 올라오는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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