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영화 '생일'의 순남 역을 맡아 4년 만에 복귀한 전도연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순남이 세상과 동 떨어진 섬처럼 살아가다가 아들의 생일에 남겨진 이들과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미 '생일'의 시사회 현장에서 영화 상영 시간의 절반 이상을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눈물을 흘린 뒤였지만 헐렁한 티셔츠와 질끈 동여맨 헤어스타일에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기자들을 마주 한 그와 눈이 닿은 순간 다시 한 번 마음 저 안쪽에서 울컥 하는 것이 치밀어 올랐다.

전도연은 이날 인터뷰에서 '생일'의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몇 차례 주저했던 이유와 촬영 당시의 생각과 힘들었던 순간들, 세월호 유가족 시사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 등에 대해 차곡차곡 천천히 풀어냈다. 앞선 인터뷰에서 촬영 당시를 여러 번 되돌아본 탓에 그녀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 있는 상태였고 담담한듯 했지만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을 한 올씩 기억에서 길어 올리는 동안 몇 차례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앙다물었다.

극중 인물이었지만 수개월 동안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순남으로 살었던 그이기에 여전히 아픔의 정서가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는듯 했다. 잠시 대신 살아낸 전도연조차 이리 아파하고 저려하는데 실제 부모들의 심경은 어찌 해도 헤아리기 어렵겠다는 명징한 이치가 가슴을 친다. '생일'에 대해 머릿속으로는 꼭 봐야하고 응원해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맴돌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가시처럼 거부감이 돋았던 이유도 그녀와 1시간여 대화 끝에 깨닫게 됐다.

묻고 싶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지만 물어야 했고 들어야 했다. 앞으로도 한참을 겪어야 할지 모를 그 아픈 심경 속으로 들어가봤다. 전도연은 영화 '생일'을 통해 '배우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온몸과 온 마음으로 보여줬다. 세상을 위무하고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동시대인으로 만났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 다양한 이유로 영화를 선뜻 못고르겠다는 반응들이 있다. 막상 보고 나면 배우들을 포함해 제작진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 미안해지더라.

▲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나서가 많이 다르다고들 하신다. '생일'이 세월호 유가족을 중심되게 다룬 이야기이기에 다가가기 쉽지 않으신 것 잘 안다. 편견도 있고 오해도 있다. 그렇게 아픈 이야기를 보고 다시 그 기억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도 있으실 거다. 하지만 보고 나셔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신다. 슬프기만한 영화도 아니다. 함께 위로하고 함께 힘을 주는 영화다.

- 안산에 내려가서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함께 하는 시사회가 있었다던데. 가족분들의 반응을 보는 마음이 쉽지 않았겠다.

▲ 상영이 끝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한 발자국 내딛기가 너무 힘들더라. 이 무거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극장 안에 들어가서 그 분들 앞에 서니 울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담담히 저희를 쳐다보는 분들도 있었다.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고개를 단 한번도 못들었다. 그 분들의 슬픔에 제가 눈을 맞추며 볼수가 없었다. 실제 그 분들의 이야기이고 저는 그저 연기를 한 배우인데 '영화 어때요?' '저 이만하면 잘 했나요?'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말도 할수 없었다. 유가족분들은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 우리가 생일 모임을 하는 이유는 위로나 치유를 받으려는게 아니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단 하나라도 찾기 위해서 그 모임을 하는 것'이라고 말 하시더라.

- 큰 각오가 필요한 자리였겠다.

▲ 되게 무섭고 어렵고 내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가 생각도 들었다. 한 어머니께서 무대 앞으로 나오셔서 노란 리본이 묶인 지갑을 제 손에 쥐어 주시며 감사하다고 인사하셨다. 저는 눈물이 터져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어머님의 한 마디와 그 지갑에 위안받고 응원의 한마디를 듣고 온 것 같았다. 어머니의 한 마디에 '왜 그 자리를 피할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나' 죄스러운 마음도 을었다. "제가 이 자리에 섰고 서있으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이종언 감독도 그렇고 저도 그 분들의 한 마디에 가장 큰 힘을 얻은 것 같다.

- 영화화가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지적들도 있었다.

▲ 저 또한 그랬다. 처음 이종언 감독에게 이 시나리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아?'라고 물어봤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 걱정과 우려가 앞섰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고 오해와 편견이 있을 수 있기에 온전히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고민이 앞섰다. 이 영화는 절대적으로 이종언 감독이 시작했다.

- 두 번 정도 출연하지 못하겠다고 고사하기도 했는데.

▲ '밀양'의 신애를 이미 경험했고 자식 잃은 어머니를 다시 맡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고사를 하긴 했지만 누가 이 영화를 해도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계속 맴돌았다. 순남과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종언 감독님이나 제작사 이동하 대표와도 계속 나눴다. 제가 용기를 못냈고 표면적으로 못하겠다고 했지만 계속 제 마음 속에 이 작품이 맴 돌았다. 출연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이 이야기가 제 마음에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 대본이 저에게 오기까지도 힘든 일들이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우려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에게 이 영화가 왔고 저 또한 지지하는 사람이다 보니 결국 출연하게 되더라.

- 왜 지금 세월호 소재의 영화를 만드는가라고 묻는 이들도 많다.

▲ 제가 이종언 감독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에 당당하라. 이 이야기는 어제일수도 있고 오늘일수도 있는데 그게 지금이다. 적당한 타이밍은 없다. 타이밍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다'라고. 이종언 감독이 선택했다면 그 타이밍도 감독님이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 이 영화의 출연을 지지해준 사람이 있나.

▲ 주위에도 모니터를 부탁했는데 거의 대부분 반대했다. 다들 울면서 전화를 했다. 이야기가 너무 힘들다고, 영화적으로도 힘들지만 외적으로도 상처 받고 힘들게 보인다고 말렸다. 딱 한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송종애 언니(분장감독)만 찬성을 했다. '밀양' 신애 이후 다시는 아이 잃은 엄마 역은 안한다고 결심했고 그동안 공백 4년 동안 계속 비슷한 작품들이 들어왔어도 다 피해갔는데 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 더 좋았다. 그런데 송종희 언니가 "한번 해봐"라고 해줬다. '접속'때부터 함꼐 했고 작품 고를 때나 고민되는 부분도 상의하며 지내는 사람이다. 제가 나태해지면 채찍질도 해주는 사람이다.

- 오열 장면도 엄청나지만 걸어가는 뒷모습과 마트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장면 등에서 아들을 잃고 위태롭게 현재를 견디고 있는 순남의 현재가 아프게 다가온다.

▲ 제가 실제 엄마이다 보니 더 아프기도 했고 순남을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한발 떨어져서 순남을 보고 싶었다. 추모공원에서 다른 가족들에게 '소풍오셨냐'고 화내는 장면도 순남을 대변하자면 자기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 부여잡고 있기에 나온 반응이었다고 본다. 순남은 자기 안에 갇혀서 자기밖에 볼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는 거다.

- 오빠를 준다며 음식을 싸들고 오는 딸이 반찬 투정을 부린다고 문 밖에 세워두다가 오열하기도 한다.

▲이종언 감독님께 들으니 영화 속 센서등 장면이나 예솔이의 일화도 실제 유사한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다. 딸 예솔이를 밖에 내보냈다가 다시 들여놓는 장면을 찍으며 사람들이 정말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겠구나 싶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수호의 그림자 커서 예솔이가 보이지 않았다. 막상 촬영을 해보니 수호도 수호지만 예솔이와 지내는게 너무 아프더라. 이 아이와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고 또 극복하며 살잖나. 예솔이는 순남이 하루를 견디고 살아가는 이유인 거다. 세상에 없는 수호를 위해 옷도 사주고 방도 꾸며주는데 예솔이에게는 관심을 못쏟고 잠자는 예솔이에게 '엄마가 못나서 그래'라고 말하며 하루를 넘기고 또 내일을 살아냈다. 그런 모습들이 연기하면서도 힘들더라.

- 예솔 역의 김보민의 순수함이 관객들이 영화를 향한 마음의 빗장을 푸는데 큰 역할을 했다.

▲ 아역 배우 캐스팅을 할 때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이들은 소진되면 감정을 만들어내기가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매장면마다 설명하고 촬영을 했다. 보민이는 제목 때문에 생일 파티를 하는 즐거운 영화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보민이 덕분에 예솔이의 순수한 때묻지 않은 감정들이 나왔다. 그런 감정들이 굉장한 자극이었다. 밥먹는 장면은 리허설을 할 수가 없었다. 설명을 해주고 촬영을 했는데 보민이가 촬영하며 너무 놀라더라. 저도 너무 놀라서 있던 대사도 빼먹었다. 아이를 쫓아내고 나서 다시 촬영을 하는데 예솔이가 너무 놀라서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엔 잘 풀었다.

- 영화에 대한 비판이 아닌 정치적 비판이 따를 우려도 있다.

▲ 이번 역할에 대한 각오는 충분히 했다. 그런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았겠지. 이 작품이 가져가야 할 리스크다. 아직 끝난 문제가 아니기에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다. 하지만 제 자신에게는 제가 받는 상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저도 처음부터 TV를 통해 진행 상황을 목격했고 '당연히 다 구조되겠지'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큰 트라우마와 아픔이 됐고 무력감까지 생겼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사건을 놔버리고 외면하게 됐다. 계속 겪어야 할 감정이 무서웠다. 그런데 '생일'이 왔을 때 그랬던 제 자신이기에 괜찮을까 의문도 들었다. 제가 이 작품에 참여했다고 해서 '내 몫을 다 했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등 돌리고만 있는게 아니라 이 일을 바로 볼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댓글에서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비판성 댓글도 받고 있지만, 그 상처가 작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상처로 인해 제가 아프지는 않다.

- 설경구와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이후 18년 만의 호흡이다.

▲ 설경구 씨는 정일과 똑같았다. 18년만이라고 하는데 사석에서 가끔 경구 오빠를 봐왔고 어릴 때 봐서 그런지 친오빠 같은 사람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해주지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설경구 오빠다. 설경구라는 배우가 옆에 있어서 의지가 되고 든든했다.

- 이종언 감독은 '생일'의 시작이자 끝인 것 같다. 조용조용한 말투지만 이 어려운 영화를 결국 만들어냈다는 건 엄청난 뚝심의 소유자라는 이야기 같다.

▲ 작고 여리고 말할 때도 조용하게 조근조근하지만 촬영할 때 끝까지 밀고 가는게 있더라. 잘 이끌어간다. 이런게 더 무섭다. 시끄럽게 자기 생각을 막 이야기하고 생각을 어필하기보다 현장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실행하고 했다. 가장 부담도 크고 겁도 났을텐데 책임감이 큰 사람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전형적인 외유 내강 스타일인 것 같다. 엔딩에 롱테이크로 생일 모임을 다큐 형식으로 뚝심있게 찍어낸 것도 매우 이례적 아닌가. 다음 작품은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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