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 첫 리딩 때 대사 다 외워와… 압도감 느꼈다"
"제작자 한재덕·윤종빈, 직접적 터치 않으면서도 큰 의지 돼"
"현시대의 관객들과 원활히 소통하는 감독 되고 싶다"
하지만 막상 영화의 뚜껑이 열리자 그동안 본 적 없던 경쾌하면서도 공감가는 스토리와 류준열(조일현), 유지태(번호표), 조우진(한지철)이 펼쳐 가는 군더더기 없는 촘촘한 연기 호흡, 잔혹한 폭력신 없이도 쫀쫀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동반하는 짜임새 넘치는 연출력 탓에 무려 개봉 4주차를 맞이한 현재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며 누적관객수 330만 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박누리 감독은 영화 '돈'으로 '집으로' 이정향 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 '탐정: 리턴즈'의 이언희 감독에 이어 네 번째로 300만 흥행을 넘긴 여성 감독에 오르게 됐다. 흥행이 영화 평가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았다는 것만큼 연출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 또 있을까.
'돈'의 개봉 초기 영화의 제작사인 서울 한남동의 사나이픽처스 사무실에서 박누리 감독을 만났다. 박누리 감독은 유승호 주연의 영화 '서울이 보이냐'(2008)에서 연출부 막내로 영화를 시작해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의 ‘남자가 사랑할 때’(2013)의 조감독을 거치는 등 영화 현장에서 기본기를 충분히 닦으며 한 계단씩 밟아 온 사람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공을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 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한 주장을 펼치기보다 차분하면서 조근조근한 말투로 '돈'의 제작 후기에 대해 설명해 나가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 각각의 배우들과 촬영하며 느낀 지점도 궁금하다.
▲ 류준열은 만나보기 전까지 본능적으로 연기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메라 앞에 따뚝 서면 자연스러운 리액션이나 표정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막상 만나보니 진짜 공부를 많이 하더라. 작품 전체적으로 자신이 주연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요한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더라. 항상 콘티랑 대본을 보고 있다. 자간의 띄어쓰기 하나까지도 공부하고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할 줄은 몰랐다. 현장에서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도 자연스럽게 대응할 줄 알았는데 전부 준비되고 공부된 거였다. 본 받고 싶을 만큼 성실한 사람이다.
- 류준열을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 붙여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끌어올리려 했다던데.
▲ 초반 작업 기간 내내 제 방에 붙여둔 메모가 있다. 조일현에 대한 설명인데 '순수한 청년-하지만 비수를 품었음'이라는 내용이다. 순수하고 건실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착함 속에 비수를 품은 것 같은 느낌이 나기를 바랐다. 류준열은 자기가 그런걸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느낌 아닌가. 실제로도 정말 착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비수를 품고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선가 꺼내서 보여준 적도 없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꼭 꺼내주고 싶었다.
▲ 촬영하면서 많이 괴롭혔다. 너무 착한 친구라 영화 속 변곡점에서 이후 상황으로 넘어 가며 날카롭게 화도 내야 하는데 변곡점 지점을 처음 찍게 되는 날 막상 화를 못내더라. 좀 더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를 뒤 쪽으로 데려갔다. 류준열 왈 '누구를 그렇게 미워해 보거나 화를 내보거나 짜증을 내 본 적이 없다. 화를 얼마나 내야 남들이 볼 ㄸㅒ 짜증을 내는 걸로 보이는지 알려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대로 짜증을 내도록 알려 주겠다 했다. 제가 내내 현장에서 인상을 쓰고 있으니 저를 관찰하더라. 그를 극한의 지점까지 만들어보고 싶었다. 결국 자신도 재미를 느꼈는지 류 배우 스스로 잘 찾아갔다. 결국 제가 보고 싶었던 모습을 봤다. 류준열 배우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서 분노나 어두운 이미지가 표출됐을 때 어떤 모습이 아노는지 알기를 바랐다.
- 유지태와는 어땠나.
▲ 유지태 배우는 엄청난 공부 벌레였다. 저와 처음 만날 때 대사를 다 외워왔다. 첫 미팅을 하고 나서 두 번째 미팅때 유지태 배우가 대사 리딩을 먼저 해보자고 하더라. '자 한 번 맞춰 볼까요'하더니 대사를 전부 다 외워와서 줄줄 읊는 거다. 시나리오를 딱 덮은 채로 대사를 외우는데 위압감도 느껴졌다.(웃음) 대본을 쓴 저는 막상 시나리오를 보며 읽었다. 제가 조일현 역을 읽는데 '내가 번호표야'하고 압도 받는 느낌이었다. 유지태 배우가 감독도 해봤고 20년 가까이 연기한 사람이니 영화적 선배 같은 느낌이었다. 선배이자 동지, 파트너였다. 정말 도움을 받았다.
- 조우진도 열심히 하는 것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인데.
▲ 조우진 배우 역시 공부를 많이 해온다. 한지철이 정의를 쫓는 인물이지만 현실감도 중요했다. 조 배우는 본인이 분석을 많이 해와서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가 있는 설정이긴 했는데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못해 이혼 당한 남편인 것은 조 배우의 설정이다. 아이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새아빠에게 사달라고 해'하는 대사도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조우진 배우 덕에 한지철이 훨씬 뜨거운 인물로 만들어졌다.
- 현장에서 경력을 쌓아 온 여자 감독들의 출현이 몹시 반갑다. 특히 가장 상업적인 소재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후 활동에도 기대가 된다.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 우선 영화는 소통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돈'을 관객들이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영화란 현시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창구 아닌가. 현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화두를 늘 던지고 싶다. 그것이 감독으로서의 의무라 생각한다. 특정 소재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매력적이고 공감되는 인물을 비추어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만들수 있지 않을까. '돈'을 만들 때 범죄 영화이고 주식 영화지만 사람에서 출발하려고 했다. 앞으로도 한 인물의 성장을 다루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