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소니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 초반부에는 비리를 일삼다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조필호의 사투가 펼쳐진다. 그 거친 세계 한가운데, 남자들 틈에서도 무섭도록 반짝이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낯선 배우가 있다. 작고 여린 몸, 선이 고운 얼굴을 가졌지만 맥주병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능숙하게 후려치는 미나다.

“미나의 첫인상은 되도록 의아하길 바랐어요. 관객들이 보자마자 ‘아~ 쟤 그런 애네’보다 ‘쟤 뭐야?’ 이런 느낌이길 바랐죠. 미나는 흔한 인물 같지 않았어요. 솔직하고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죠. 심지어 남을 위해 그렇게 움직여요. 대단하고 한편으론 동경했던 것 같아요.”

배우 전소니가 연기한 미나는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고 방황하는 여고생으로 의문의 폭발 사건의 중요한 증거를 쥐게 된다. 늘 반항적인 눈빛에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로 두렵지 않은 척 하지만 누구보다 슬프고 불안하고 여려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전소니는 “복합적인 감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거친 면이 미나의 성격이라기보다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세상을 버티는 방식이었겠죠. 아직 어려서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모를 거예요.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쉽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근데 또 지원이한테 쓴 편지에서는 미나의 새로운 면이 보이죠. 그래서 그 편지가 좋았어요. 항상 우악스러웠는데 그 편지에선 자길 지키려고 가시를 세운 미나가 아니었거든요. 사실 욕하는 장면은 고민이 많았어요. 이왕 하는 거 차지게 잘하고 싶었거든요. 처음에 감독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연습했는데 주변에서 남자 욕을 따라하지 말라고, 여자가 하는 욕은 또 다른 느낌이 있다고 해서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자연스럽게 잘 지나가서 다행이에요(웃음)”

사진='악질경찰' 스틸
영화 속 미나의 운명은 가혹하다. 짧다면 짧은 인생 내내 상실의 아픔에 괴로웠고 또 외로웠다. 아직 어리지만 누군가로부터 따뜻하게 보호받기보다 남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데 익숙했고 그런 미나의 운명은 마지막까지 처절했다.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대사와 함께 그려지는 미나의 충격적인 엔딩은 그래서 더 관객들의 마음에 아프게 박힌다.

“저도 처음 대본에서 미나의 엔딩을 보고 ‘왜 그래야 돼요?’ 그런 질문을 했어요. 감독님께서도 여러 고민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결말을 고집하신 건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바와 연관이 돼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너무 가혹하다고 하지만 미나한테 벌어지는 일들이 아예 없는 일들이 아니니까요. 미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에요. 옥상에 올라가서 현실을 봤고, 일종의 무력감이 들었을 거예요. 미나로서는 삶의 이유를 한순간에 빼앗긴 거죠. 옥상신을 찍은 날은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였어요. 너무 미안하고 그때만큼은 ‘이 영화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럼 미나가 덜 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죠.”

특히 전소니는 미나가 단순히 중년 남성 캐릭터의 각성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지킨 캐릭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강조했다. “미나는 단순하게 소비되고 끝나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어떤 기능이나 성격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인물도 아니고요. 미나가 삶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 걸 보고 느낌 경험의 결과였고 미나의 정서, 일련의 경험을 통한 선택 그런 면들이 잘 보이는 캐릭터라 좋았어요. 또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했지만 미나가 어떤 이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물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잊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 그것만 붙들고 있으면 잘못 생각하게 될 것 같았거든요. 배우로서 미나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미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최대한 집중하려고 했어요.”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지난 2014년 단편영화 ‘사진’으로 데뷔한 전소니에게 ‘악질경찰’은 데뷔 후 첫 상업영화다. 센 역할인데다 상업적 흥행에 대한 부담감까지, 아직 모든 게 처음인 전소니에게 조금은 버거운 무게일 테다. 하지만 전소니는 “영화가 잘 되면 좋겠지만 얻은 게 많아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악질경찰’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쁨을 알게 됐어요. 물론 그전에도 그랬지만 내가 연기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실감했죠. 옷, 머리, 미술, 음향, 조명까지. 내 연기가 납작할 때 얼마나 여러 겹의 층을 만들어서 그 캐릭터로 보이도록 도와주는지 확실하게 경험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제 안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에요. 처음엔 ‘내가 미나를 잘 연기할 수 있을까?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까?’ 했었거든요. 영화 스틸을 보는데 저도 처음 보는 제 모습이 있더라고요. 정말 재밌었어요.”

고교시절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전소니는 유달리 영화를 좋아했고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창작한 작품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했고 영화를 본 후 삶이 달라지는 듯한 기분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고. ‘악질경찰’ 이후 한국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라이징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너무 먼 미래보다 코앞에 주어진 일부터 잘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현재 상태와 영화가 만나서 완성되는 게 감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영화가 좋아요. 그때 심리에 따라서 좋아하는 장르도 달라지는 것 같고요. 배우로서 영화가 좋은 건 연기할 때 고되고 갑갑한 기분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연기는 촬영이 끝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잖아요. 그 한정된 시간 안에 제 모든 걸 쏟아 붓고 나면 묘하게 좋더라고요. 사실 아주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니라서 저는 좀 현실적이에요. 욕심은 많지만 연기를 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아요. 돌아오는 결과가 없어도 이 모든 경험이 저한테 그 자체로 가치 있으니까요. 매 작품에서 ‘전소니한테 저런 모습이 있었어?’ 그런 말을 듣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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