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여진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7년 전 MBC ‘해를 품은 달’의 어린 왕세자를 연기했던 열여섯 소년이 ‘왕이 된 남자’로 돌아왔다.

최근 종영한 tvN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리메이크작이다. 배우 여진구의 존재감은 처음부터 강렬했다. 광기 어린 폭군 이헌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하선의 천진한 얼굴을 넘나들며 펼친 극단의 1인 2역 연기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왕이 된 남자’가 더욱 각별한 건 배우로서 느꼈던 답답함을 깨준 첫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그 전까지는 제 연기를 보는 게 별로였고 답답했어요. 저도 이유를 찾고 싶은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이유를 찾으려고 대학교까지 진학했는데 결국 ‘왕이 된 남자’를 만나고서야 이유를 찾았어요. 예전엔 현장에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가 참 어려웠어요. 감독님, 선배님들 말이 맞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근데 이번엔 감독님께서 매번 모든 신을 리허설을 진행하셨고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어요. 나중에 제 연기를 보니까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연기할 때 감정이 떠올라서 울컥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죠. 연기할 때 어느 정도 고집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길을 찾은 느낌이에요.”

이헌이 불같이 뜨거웠다면 하선은 자유롭고 순수했다. 여기에 중전 소운(이세영)과의 애틋한 사랑은 마지막까지 안방을 절절하게 녹였다. 설렘과 긴장감을 섬세하게 조율한 여진구의 밀도 높은 감정 연기에 시청자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여진구는 1인 2역 연기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가장 신경 썼던 건 ‘눈빛’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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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2역이란 게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했지만 하선과 이헌 투샷을 상상하는 게 어려웠어요. 가장 신경쓴 부분은 눈빛이에요. 두 인물을 다르게 표현하려면 답은 눈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화면에 어떻게 찍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보여지는 거라 카메라 감독님, 조명 감독님, 의상 소품 담당해주신 스태프 분들 모두가 노력해주신 덕에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아요.”

‘왕이 된 남자’는 궁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하선이 소운과 운명처럼 재회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진구는 “사실 감독님이 하선이 죽는 결말을 고민하셨다”며 엔딩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감독님께서 ‘이거 살아남는 게 맞아? 다 죽어야 말이 되는 거 아냐?’ 심각하게 고민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라면 하선이를 죽일 것 같았어요.(웃음) 물론 실제 조선시대라면 말이 안 되지만 저희는 픽션이 섞인 드라마니까 하선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봐요. 제가 계속 ‘감독님, 하선이 살려만 주십쇼’라고 말씀드렸었어요. 마지막회 대본에서 하선이가 살아남는 장면을 확인하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저도 하선이랑 소운이가 행복하길 바랐거든요. 둘의 사랑이 애틋했잖아요. 꽉 닫힌 해피엔딩이라 정말 마음에 들어요.”

아직 20대 초반인 여진구는 벌써 데뷔 15년차다. 지난 2005년 영화 ‘새드무비’로 데뷔한 이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드라마 ‘일지매’, ‘자이언트’, ‘무사 백동수’,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등에서 나이답지 않은 연기로 주목받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써클: 이어진 두 세계’, ‘다시 만난 세계’, ‘대립군’ 등을 통해 아역 이미지를 한 겹 걷어내고 어엿한 20대 성인 연기자로서 포지션을 확실히 잡았다. 특히 유독 낮고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는 수많은 팬들이 그를 나이에 상관없이 ‘진구오빠’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유다. 여진구는 “목소리는 장점이자 넘어야할 산”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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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 확실히 목소리가 낮은 편이라 사극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목소리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장르에 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배우로서 가장 큰 무기이자 동시에 넘어야할 부분이라고도 생각해요.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일반적으로 아역출신 배우들이 가진 고정적인 이미지와 성장통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고 성장한 터라,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배우로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 만난 여진구는 자신의 한계를 만나고 깨는 과정을 흥미로워하고 나아가 대중들의 높은 기대치를 감사하게 여기는 성숙한 스물셋이었다. 해맑고 건강한 에너지가 한가득 전해왔다.

“기대치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굳은 심지가 있어야 돼요.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점이 정확하게 있어야 하고 평가는 당연한 거죠. 그게 부담된다고 해서 기대치를 낮춰달란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가끔은 실망을 안길 수도 있고 칭찬받을 때도 있겠지만 휘둘리지 않고 제 길을 갈 거예요. 그래야 대중들과 신뢰가 쌓이지 않을까요. 어릴 때부터 연기 활동을 했지만 저도 평범한 20대에요. 작품 끝나면 취준생(취업준비생)이나 다름없어요. 평범한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작품 끝나면 친구들이 백수라고 놀리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이번엔 차기작(tvN ‘호텔 델루나)이 정해졌으니까 재취업을 빨리 한 편이죠. 또 다른 여진구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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