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갈머리 찢어버릴라', 대본 읽고 충격 받았죠"

"실제 남편도 정형외과 의사, 강준상과는 달라"

"김서형과 호흡? 기가 쫙 빨리는 느낌"

'SKY 캐슬' 배우 염정아와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제공
[스포츠한국 박소윤 기자] 지난해 연말과 올 연초, 그 누구보다 화려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완벽한 타인' '뺑반'에 이어 JTBC 드라마 'SKY 캐슬'까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상반기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인 영화 '미성년' 개봉까지 앞두고 있다.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최정점에 서있는 염정아를 만났다.

"정말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얼떨떨하고 행복하다.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니지 않냐. 제가 생각한 'SKY 캐슬' 주 타겟은 아이들 키우는 엄마였는데, 10대부터 남성분들까지 봐주시더라. 지인에게 연락도 많이 받았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제가 있는지 모르고 'SKY 캐슬' 얘기를 하시더라. '아 정말 많이들 보는구나' 실감했다."

'SKY 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리얼 코믹 풍자 드라마다. 염정아가 연기한 한서진은 전직 교사 출신 전업주부. 두 딸의 자녀교육도 남편의 내조도 완벽하지만 아무도 몰래 곽미향이란 본명을 숨기고 살아온 인물이다.

'SKY 캐슬'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염정아지만, 정작 본인은 모든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다. "유현미 작가님 대본은 읽자마자 그냥 재미있었다. 또 대본 한 번 늦은 적 없다. 매 회 밀리지 않고 미리 주셨다. 조현탁 감독님에 대한 신뢰도 워낙 컸다. 감독님이라면 대본 안 보고도 함께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촬영 감독님도 고생 많이 하셨다. 배우 감정을 그대로 따라오기 위해 숨도 안 쉬고 무거운 카메라를 직접 들고 촬영하셨다. 배우가 뛰면 같이 뛰었다. 유독 한서진의 감정을 보여주기 위한 클로즈업이 많았는데, 처음에는 주름, 모공 같은 것들이 신경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냥 감독님을 믿고 가게 되더라. '단점 보이면 뭐 어때' 싶었다."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제공
염정아는 '아갈머리를 찢어버릴라' '쓰앵님' 등 다양한 유행어로도 화제에 올랐다. 스스로도 '아갈머리' 대사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처음 대본을 읽으면서 '아갈머리라는 말이 있어?'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시청자분들도 크게 와닿으셨던 모양이다. 연기를 하면서는 너무 재미있었다. 한서진이 남들 앞에서는 정체를 감추고 굉장히 교양있게 행동하지 않냐. 얌전한 척 하고 있다가 아무도 없을 때 이수임(이태란) 앞에서만 '아갈머리' 한다. 정말 신나서 연기했다."

염정아에게 'SKY 캐슬'은 운명 같은 우연도 겹친 작품이다. 극 중 남편 강준상(정준호)이 정형외과 전문의이듯 염정아의 실제 남편도 정형외과 의사다. 예서(김혜윤), 예빈(이지원) 대신 초등학교 5학년·4학년이 되는 딸과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설정 자체는 비슷한데 실제 저희 남편과는 많이 다르다. 강준상은 시어머니 치마폭 안에서 곱게만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남편이지 않냐. 저희 남편은 마마보이도 아니고 우유부단하지도 않다. 하하."

'SKY 캐슬'에서 노승혜를 연기한 윤세아는 앞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서 "염정아가 평소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 연기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언급하니 염정아는 "세아는 항상 제가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만 봤을 거다"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는다.

"평소에는 남들과 똑같은 엄마다. 야단도 치고, 예쁘다고 칭찬도 해준다. 승혜 캐릭터처럼 말 곱게 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드라마를 하면서 교육관이 변하기도 했다. 내가 연기했지만 요즘 애들 진짜 힘들겠다 싶더라.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입시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신중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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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는 "가족들도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다 보니 처음에는 못 보게 했는데 '친구들도 다 보는데 나는 왜 안 되냐'며 조르더라. 강렬한 장면이 있었던 1, 2회 빼고 다 보게 했다. 나중에는 저랑 눈만 마주치면 '위 올 라이('SKY 캐슬' OST)' 하더라. 그래도 아이들이 많이 컸고 엄마가 연기하는 사람이란 걸 알아서 그런지 한서진과 실제 엄마를 혼동하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사인해 달라고 한다며 받아가기도 했다.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연기하는 동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서진이 매 회 모든 인물과 부딪힌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감정을 놓치면 이상해지는 거다. 계속 같은 감정을 잡아가는 게 어려웠다. 원래 대본에 체크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모든 장면에서 '수임이랑 뭐 했나' '이전 신에서 김주영(김서형)하고 어떤 감정으로 이야기했나' 다 써놨다.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한서진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다. 외로운데 남편, 아이들과도 그 감정을 나눌 수 없다. 예서를 서울의대 보내야 하는 책임감도 있고 김주영이 좋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았음에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한서진이라는 사람이 너무 외롭다고 생각했다. 물론 김주영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된다(웃음). 서형이가 그런 부분에서 많이 힘들었을텐데 참 잘해줬다."

극 중 가장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운 김서형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기가 쫙 빨리는 느낌"이라 표현했다. "서형이는 첫 촬영 때부터 자기 캐릭터를 정확하게 잡아왔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들이 김주영 선생님과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찍고 나면 어깨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또 뭔가 해낸 것 같은 쾌감을 주더라. 서형이가 연기를 잘해줬기 때문인 것 같다. '저 사람만 믿고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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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한서진의 마음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장면을 꼽으면서는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우주(찬희)가 누명을 쓰고 시험지 유출 사건을 알게 된 후에 예서에게 '엄마는 어떤 욕을 먹어도 상관 없다. 다 알아서 할게 너는 공부만 해라. 엄마는 네 인생 포기 못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김주영의 악행을 다 고백하기로 결심한 후에 '엄마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딸 잘 먹고 잘 자고 마음 편한 게 최고다 싶다. 엄마가 우리 예서 사랑해' 할 때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SKY 캐슬'은 무려 5명의 40대 여성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배우들에게도, 염정아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였다. 염정아는 "캐스팅 소식 듣고 저희 모두 파이팅 넘쳤다. 이런 드라마가 잘 되면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캐릭터도 많아지고, 점점 좋은 콘텐츠가 많이 생길 거라며 서로 다독였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SKY 캐슬'에서도 그냥 '누구 엄마'가 아닌 한서진, 곽미향이라 더 좋았다. 여자도 캐릭터성을 가진 작품이 많아져야 배우들이 할 작품도 늘어나지 않겠냐."

다섯 배우들의 바람대로 'SKY 캐슬'은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소위 말하는 역대급 성공을 거뒀다. 염정아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그의 성격만큼 쿨한 답변이 돌아온다.

"글쎄,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한서진 이미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코미디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제가 액션이 안 된다. 다들 이미지 보고 액션 좀 할 것 같다고 하시는데 손발이 따로 노는 스타일이다. 구강액션만 된다(웃음). 또 다른 모습의 엄마여도 좋고, 특별한 직업을 가진 여성이어도 좋겠다. 어떤 인물이든 상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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