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선규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영화 한 편의 성공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지난 2017년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로 하루아침에 충무로 대세가 된 배우 진선규도 그런 경우다. 그는 ‘범죄도시’ 위성락 캐릭터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제38회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이제 많은 작품의 러브콜을 받는 배우가 됐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로또 맞고 인생대역전’이다. 단 한 작품으로 이 정도의 성공이라면 슬쩍 콧대를 세울 법도 한데 오히려 진선규는 “저는 변한 게 없고 그대로다. 천천히 가고 싶다”며 멋쩍게 웃었다. 피냄새 나는 악역이든 골 때리는 코미디든 그의 연기가 편안하게 안겨오는 건 이미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5인방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창업한 ‘마약치킨’이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진선규는 마약반의 트러블 메이커 마형사로 분했다. 마형사는 수원 왕갈비집 아들로, 갈비 양념을 전수받은 마형사의 치킨이 뜻밖의 대박을 터트리면서 마약반의 위장수사에 큰 파란을 몰고온다.

“‘범죄도시’로 상을 받고 난 이후 제일 처음 들어온 작품이 ‘극한직업’이었어요. 말도 안 되죠. 제가 20년 가까이 무명이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배역이 너무 커진 거예요. 포스터에 막 제 얼굴도 들어가고(웃음) 기적이죠.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 감독님한테 ‘저 정말 이거 시켜주실 수 있어요? 제가 진짜 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묻기까지 했다니까요.”

마형사는 사고뭉치이지만 숨겨진 절대미각으로 결정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인물. 진선규는 과감하고 능청스러운 연기로 코미디에도 능한 배우라는 걸 제대로 각인시켰다. 태연한 표정으로 수원 왕갈비 통닭을 튀기는 마형사를 보고 있자면 ‘범죄도시’의 위성락을 연기했던 배우가 맞나 싶을 만큼 낯설고 신선하고 또 반갑다. 진선규는 “‘범죄도시’ 때 ‘어떻게 죽일까?’를 고민했다면 이번엔 ‘어떻게 웃길까?’ 고민했다”며 “개인적으로 비와이의 팬이기도 해서 비와이의 헤어스타일을 모티브로 따왔다. 약간 섹시한 비와이 느낌으로 가려고 했는데 ‘혹성탈출’의 시저처럼 나왔더라”고 말해 취재진을 폭소케 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은 ‘스물’, ‘바람바람바람’을 흥행시킨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갖게 된 둘만의 술자리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고 작품을 함께하는 인연까지 이어지게 됐다. “무명배우이던 시절에 ‘스물’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어떻게 저런 대사가 있지?’ 싶고 막 스피디하게 돌아가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근데 의외로 그런 톡톡 튀는 대사를 쓰는 감독님의 본질은 정말 조용하고 낯도 많이 가리세요. 감독님과 만났을 때 정말 조용한 술자리였는데 제가 혹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주 작은 역할도 좋으니 꼭 배역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거든요. 2년 반이 지나서 진짜 시나리오가 들어왔죠. 맨 앞에 ‘감독 이병헌’ 이 글자만 보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앞으로 연기하는 한 계속 같이 하고 싶은 감독님이에요.”

특히 배우들의 호흡이야말로 ‘극한직업’의 최대 백미다. 마약반 5인방의 연기 대결이 러닝타임 내내 혼을 쏙 빼놓는다. 무엇보다 진선규는 이하늬와 뜻밖의 시너지로 큰 재미를 책임졌다. 실제로 친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호흡이란 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테다. 진선규는 “운이 좋아서 이번에도 팀워크 좋은 배우들을 만났다”며 따뜻했던 촬영장 뒷이야기를 전했다.

“(류)승룡이형, (이)하늬, (이)동휘, (공)명이 다 사람이 정말 좋아요. 배역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같이 있는 게 재미있어서 같이 다녔어요. 승룡이형이 차를 좋아하셔서 저희한테 차를 많이 만들어주셨어요. 그냥 물 끓여서 휙 타는 게 아니라 다도를 정말 정석대로 하세요. 다도가 기다림의 과정이더라고요. 모여 앉으면 찻잔이 따뜻해지길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게 돼요. 어차피 다들 극 중에서 좋은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운동화에 트레이닝복이라 바닥에 앉아서 차 마시고 수다 떨고 그랬어요. 촬영장에 빨리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렇듯 완벽하게 색다른 작품으로 돌아왔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범죄도시'의 위성락을 기억한다. 상업영화에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터닝포인트와도 같은 작품이었고 존재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독보적인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덕분에 ‘범죄도시’ 이후 실제 조선족을 섭외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을 정도였다.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르던 위성락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극한직업’의 진선규를 보며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같은 배우의 연기라고 믿기 힘들 만큼 극명한 연기 대비가 소름 돋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쯤되면 실제 진선규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질 차례. 그는 “실제로는 착하다는 말에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있다.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다”며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게 좋아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어릴 때부터 저희 어머니가 늘 어딜 가든 인사 잘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숙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널 한 번 더 봐줄 거라고요. 그때부터 그런 게 몸에 배어서 어린 선규는 정말 착했어요. 하다못해 이름에도 ‘선’자가 들어가잖아요. 약간 콤플렉스 같은 거죠. 나도 화낼 수 있는데 ‘선규가 그랬다고? 선규는 착한데?’ 그런 말을 듣는 게 어느 순간 싫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연극을 시작했는데 막 소리 지르고, 살면서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대사를 하는 게 너무 짜릿하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다른 배우들보다 한 시간 먼저 가서 분장 받고 앉아 있어요. 대사연습보다도 그냥 외모부터 다른 사람으로 변한 제 자신을 보는 게 정말 행복해요. 진선규를 싹 지우고 그 캐릭터로서 존재하는 게 좋아요.”

연극무대 출신 영화배우들이 뒤늦게 빛을 보는 스토리는 흔하다. 하지만 잘생긴 외모나 위태로운 스타성만 내세운 배우 지망생들이 숱하게 피고 지는 영화계에서 40대 배우 진선규의 성공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조선족 위성락부터 재치 넘치는 마형사까지 극과 극의 캐릭터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는 본인만의 개성으로 자기복제 없이 다양한 연기가 가능한 배우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극한직업’ 개봉 이후 더 넓어진 스펙트럼의 캐릭터로 돌아올 그가 기대되는 이유다.

“청룡영화제 수상 소감 때도 말했지만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어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 또 해외 수많은 톱배우들이 어딜 쫓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보는 목표는 또 다르잖아요. 평소에 ‘무게 추를 반발짝만 앞으로 하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조금이라도 앞으로 가려는 힘이 존재하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게 된다는 말이거든요. 코끝에 쇳덩어리를 하나 달아놓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싶어요. 실제로 연극무대에서 시작한 이후로 15년 넘게 그렇게 해왔더니 이제 사람들이 좀 알아봐주기 시작했어요. 엘리베이터 탄 것처럼 빵 올라왔으니까 이제는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제 길을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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