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이선균에게 지난 한해는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달려온 한 해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지난해 봄 드라마 본질과는 동 떨어진 논란 속에 첫방송됐지만 결국 드라마 자체의 힘으로 마니아 팬들을 양산하며 동시대의 많은 시청자들을 위로했던 tvN '나의 아저씨'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면 연말에는 1인칭 전투 게임 형식을 차용한 영화 'PMC:더 벙커'(감독 김병우, 이하 'PMC')로 스크린 관객들과 만났다.

'나의 아저씨'에서 순리대로 세상을 살며 절대 앞에 나서지 않지만 이지안을 위해 키다리 아저씨로 변모하는 박동훈 역으로 40~50대 중장년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면, 'PMC'에서는 적에게도 지혈을 위한 붕대를 내줄 정도로 사람의 생명을 가장 중시하는 북한 의사 윤지의 역을 맡아 극 중 용병 부대의 캡틴인 에이햅(하정우 역)과 묵직한 브로맨스에 불을 지폈다.

최근 영화 'PMC'를 위해 매체 인터뷰에 나선 이선균은 그 어느 해 인터뷰 자리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선균이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을 통해 대중들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고 '커피프린스 1호점'과 '파스타'로 멜로 드라마 킹으로 급부상했다면, 이후 영화 '쩨쩨한 로맨스', '화차', '내 아내의 모든 것',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끝까지 간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등을 통해 장르와 흥행을 넘나드는 다양한 도전을 시도해왔다.

드라마와 영화를 고루 오가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몇 안되는 배우이고 흥행도, 인기도, 평단의 좋은 반응도 모두 얻어 왔기에 한 1~2년은 푹 쉬고 싶을 법도 하지만 새해 개봉 대기 중인 영화만 '악질경찰'(감독 이정범), '기생충'(감독 봉준호) 두 편이고 설경구와 함께 하는 '킹 메이커:선거판의 여우'(감독 변성현)의 봄 촬영이 예정돼 있을 정도로 여전히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아이돌 못지 않은 바쁜 일정을 보내자면 제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울 듯 한데 촬영 현장이나 무대 인사 등 홍보 현장에서 매번 스태프들의 근황을 먼저 챙긴다는 목격담도 들려온다.

이선균이 배우로 , 또 한 집안의 가장으로, 또 농구와 마라톤을 즐기는 40대의 한 남자로 이 모든 영역에 조화를 이루며 인생을 풍요롭게 가꿔가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인생 동반자이자 동료인 아내 전혜진과 두 아들이겠지만 작품과 캐릭터를 향한 여전한 호기심과 현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도전 의식, 배우로서 진일보하려는 프로페셔널한 자세 또한 그의 진일보를 위한 자양분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이 배우를 향한 궁금증이 더 고개를 든다.

- 30대 때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남주였다면 지금은 40대 남성들의 정서를 대변해주고 있다.

▲ 제가 딱 그 또래잖나.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40대 중반의 가장들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쓸쓸함을 잘 보여준 것 같다. 10년 전 제가 청춘 같고 파릇파릇했다면 지금은 여러 고민도 있고 무게도 있어야 하고 그런 나이니까. 배우는 그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게 맞다. 김원석 감독을 만난 건 인생 최고의 행운 같다. 현장 최고의 지휘자였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언제 뭘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아저씨'는 정말 좋았던 작품이다. 감독님만 의지하고 았다.

- 아주 옛날 작품이지만 '쩨쩨한 로맨스'도 그렇고 꼭 내 주변에 있는 사람 같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다.

▲ '쩨쩨한 로맨스'는 원래 대본에는 외형적으로 깔끔하고 강남 클럽에 가면 있을 듯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내가 홍대에서 난장 피우는 인물 느낌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마치 주위에 있는 애처럼 표현하고 싶었다. 제가 멋진 역할을 잘 못한다. 멋부리는 걸 못하는 것 같다. 평범한 주위 사람들처럼 연기해야 관객들이 더 공감해주신다.

- '임금님의 사건 수첩'을 보고 이선균에 반했다는 이야기도 꽤 들리는데.

▲ 아쉽고 또 그리운 작품이다. 우리를 믿고 투자한 분들께 이익을 못남겨드려 아쉽지만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내 아이들이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다. 연극을 하던 시절부터 원래 가족은 잘 안 부르는데 이 영화는 온 가족이 다 모여 봤다. 제가 20년 좀 안 되게 연기를 해오고 있는데 모든 기억이 작품과 연결돼 있다. 달력 표지 그림처럼 2006년은 '하얀거탑', 2007년은 '커피 프린스', '파스타' 첫 촬영날 우리 큰 애가 태어났다. 2018년은 'PMC'로 기억되겠지. 앞으로도 매년 생각날수 있는 작품을 가지고 싶다.

- 2019년은 '악질 경찰', '기생충' 개봉작만 두 편이다.

▲ 두 작품 모두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정범 감독은 대학 때부터 내가 의지하고 좋아했다. '악질경찰'은 너무 열심히 찍었고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게 돼 애정이 남다르다.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도 너무 좋았다. 제가 배우 초창기때부터 한국 영화의 꼭지점에 있던 봉준호 감독님, 송강호 선배와 함께 했으니 기분이 남 다르더라. '기생충'은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오픈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 '기생충' 팀 단톡방이 여전히 운영 중인데 강호 선배님은 카톡을 안하셔서 단톡방에 안 계신다.(웃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고 가장 많이 본 영화다. 처음 '기생충' 제안을 받고 봉 감독님과 저녁을 먹는데 마치 신인 때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더라. 너무 신기했다.(웃음)

- 불한당원(영화 '불한당'을 지지하는 팬들의 모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변성현 감독 차기작 '킹 메이커'의 촬영을 앞두고 있다.

▲ 변 감독님도 너무 좋다. 요즘 자주 만나 뵙는다. 불한당원 분들의 기대를 안 꺾으려면 제가 잘 해야 한다.

-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 아닌가. 충전도 좀 필요할 것 같은데.

▲ 최근 2~3년동안 한 작품이 끝나면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며 디졸브처럼 작품을 했다. '이것만 하고 쉬어야지' 할 때 너무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은 분들한테 제안이 왔다. '미옥'과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스코어가 아쉽게 나왔고 불안함도 있던 시기였다. 어떨 땐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결혼을 했고 아버지가 되고 일반 가장들도 그렇겠지만 배우도 자기 고민을 많이 한다. 이럴 때 새 작품 제안이 계속 들어오면서 용기를 줬다. 다른 건 몰라도 감독님 복과 파트너 복은 타고 났다. 정말 감사한다.

- 영화와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몇 안되는 배우다.

▲ 2년에 한 번씩 꼭 드라마를 한 편씩 했다. 영화만 한 분들은 드라마를 겁내기도 하지만 드라마 자체의 맛이 있다. 드라마를 꾸준히 해왔기에 오랜 촬영 기간이나 대본이 늦는 것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다. 드라마를 하다 보면 바로 조금 전까지 찍은 내용이 몇 시간 뒤 방영되고 바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느끼는 생동감이 있다. 새벽 시장의 화끈함 같다고 할까. 드라마 환경도 많이 좋아지고 있고 특히 좋은 작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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