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호두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이선균에게 지난 한해는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달려온 한 해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지난해 봄 드라마 본질과는 동 떨어진 논란 속에 첫방송됐지만 결국 드라마 자체의 힘으로 마니아 팬들을 양산하며 동시대의 많은 시청자들을 위로했던 tvN '나의 아저씨'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면 연말에는 1인칭 전투 게임 형식을 차용한 영화 'PMC:더 벙커'(감독 김병우, 이하 'PMC')로 스크린 관객들과 만났다.

'나의 아저씨'에서 순리대로 세상을 살며 절대 앞에 나서지 않지만 이지안을 위해 키다리 아저씨로 변모하는 박동훈 역으로 40~50대 중장년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면, 'PMC'에서는 적에게도 지혈을 위한 붕대를 내줄 정도로 사람의 생명을 가장 중시하는 북한 의사 윤지의 역을 맡아 극 중 용병 부대의 캡틴인 에이햅(하정우 역)과 묵직한 브로맨스에 불을 지폈다.

최근 영화 'PMC'를 위해 매체 인터뷰에 나선 이선균은 그 어느 해 인터뷰 자리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선균이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을 통해 대중들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고 '커피프린스 1호점'과 '파스타'로 멜로 드라마 킹으로 급부상했다면, 이후 영화 '쩨쩨한 로맨스', '화차', '내 아내의 모든 것',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끝까지 간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등을 통해 장르와 흥행을 넘나드는 다양한 도전을 시도해왔다.

드라마와 영화를 고루 오가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몇 안되는 배우이고 흥행도, 인기도, 평단의 좋은 반응도 모두 얻어 왔기에 한 1~2년은 푹 쉬고 싶을 법도 하지만 2019년 개봉 대기 중인 영화만 '악질경찰'(감독 이정범), '기생충'(감독 봉준호) 두 편이고 설경구와 함께 하는 '킹 메이커:선거판의 여우'(감독 변성현)의 봄 촬영이 예정돼 있을 정도로 여전히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아이돌 못지 않은 바쁜 일정을 보내자면 제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울 듯 한데 촬영 현장이나 무대 인사 등 홍보 현장에서 매번 스태프들의 근황을 먼저 챙긴다는 목격담도 들려온다.

이선균이 배우로 또 한 집안의 가장으로 또 농구와 마라톤을 즐기는 40대의 한 남자로, 이 모든 영역에 조화를 이루며 인생을 풍요롭게 가꿔가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인생 동반자이자 동료인 아내 전혜진과 두 아들이겠지만 작품과 캐릭터를 향한 여전한 호기심과 현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도전 의식, 배우로서 진일보하려는 프로페셔널한 자세 또한 그의 진일보를 위한 자양분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이 배우를 향한 궁금증이 더 고개를 든다.

- 역시 'PMC' 출연 이유부터 묻는게 순서겠다.

▲ 기술적으로 굉장히 한 발 앞으로 나아간 영화다. 국내에서 보지 못한 장르물이고 장점이 많았다. '더 테러 라이브'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무엇보다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의 조합이 가장 끌렸다. 가장 중요한 건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먼저 제안을 해줬다는 거다.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오래 준비했고 열심히 준비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언젠가 같이 할 보장이 없을 것 같았다. 개인적 욕심이 컸다.

- 출연 분량이 적은 것에 대한 지적도 있는데.

▲ 전작의 촬영 일정과 겹치기에 'PMC'의 촬영이 저를 빼고 한 달 정도 진행된 후에 합류할 수 있었다. 만약 출연 분량이 전부 영어 대사이고 비중마저 더 컸다면 고사했을 것이다. 제 스케줄을 감안하고 책을 준 것이기에 오히려 힘이 됐다. 이렇게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를 해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 기술적으로 이런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 것 같아서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 아내 전혜진이 '더 테러 라이브'에 출연한 인연으로 김병우 감독과 몇 차례 만남이 있었던 걸로 안다.

▲ 사실 김병우 감독님 첫 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내 때문에 ('더 테러 라이브')현장에 한두 번 간 적이 있는데 너무 샤이하시더라. 이번에 함께 하며 낯을 워낙 많이 가리고 대답이 짧은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따뜻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다.(웃음)

- 'PMC'는 드론샷, 1인칭 시점 샷 등 이전 영화들과 다른 카메라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직접 촬영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 손목에 광각 렌트 카메라를 그립 장치로 연결해 내 출연 분량을 꽤 찍었다. 제가 카메라로 제 연기를 찍는 것이기에 코가 커보인다던가 얼굴이 길어 보이는 단점도 있었다. 제가 찍은 장면을 두고 한 테이크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앵글이나 깊이에 대해 토론하고 다시 디렉션이 들어온다. 카메라 각도 신경쓰랴, 연기 신경쓰랴 집중도 안되고 힘들었다.(웃음)

- 북한 사투리를 써야 하고 출연하는 거의 대부분 분량에 총격신이 벌어지고 있다. 대사 연기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 신경 쓸 것이 많은 현장이었다. 대사가 안 들린다는 지적도 들었는데 딕션과 워딩에 집중해야 할지, 아니면 계속 전투 중인 상황에 더 방점을 둬야 할지 김병우 감독과 의논을 했고, 전투 상황에 더 방점을 두기로 결론이 났다. 현장감을 생생히 느끼려 귀마개도 끼지 않고 연기했는데 폭발음이나 총성은 그리 쉽게 견딜수 있는게 아니더라. 나중에서야 귀마개를 꼈다. 얼굴의 표정이나 어깨의 움직임 등 전쟁 상황에 대한 반응을 잘 전달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은 있다.

- 자신에게 총을 쏘려던 용병에게 붕대를 건네주는 붕대신에 대해 찬성파와 반대파가 나뉘는 경향이 있던데.

▲ 그 장면에서 감독님과 의견이 갈렸던 부분이 "지혈하시오" 대사를 할 것인가를 두고 였다. 대사가 차라리 길거나 말 없이 붕대만 주고 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전에 용병 역의 강신철과 찍은 장면 중 서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이 편집에서 빠지면서 '지혈하시오'라는 대사가 과하게 인식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 윤지의 전사 중 어떤 내용이 축소됐나.

▲ 또 다른 PMC 조직 퍼스트 서비스의 용병과 대화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대화가 오간다. 영화 초반 북 군부 조직의 2인자가 망명하잖나. 체제 자체가 무너져 가는 거다. 윤지의 대사 중 '사람 사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자기만 살겠다고 해서 전쟁이 난다'는 내용이 있다. 결국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인 인물인데 영화 전체 템포에서는 이런 내용이 빠지는게 낫다고 김병우 감독이 판단한 것 같다.

- 김병우 감독만의 특징이나 장점은 무엇인가.

▲ 자신만의 유일한 화법을 가졌다고 할까. 이 영화가 관객들을 얼마나 충족시켜줄지 모르겠지만 감독의 장점은 뚜렷하다. 하정우가 '김병우는 이과학도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던데 처음 볼 때는 당황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귀엽다. 똑똑한 사람이다. 대본 자체가 꼼꼼하고 계산적이다. 현장감과 즉흥감으로 찍는게 아니고 미리 계산돼 있다. 대본이 마치 건축 설계도처럼 감정에도 다 힘이 정해져 있고 영화 속 공간을 본인이 직접 레고로 미리 만들어서 준비한 것도 인상적이다. 엔딩의 낙하 장면도 프리 비전으로 다 보여줘서 화면에 어떻게 구현될지, 촬영 과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할 수 있었다. 이런 감독이 처음이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 윤지의는 기존 국내 영화에 등장한 북한 인물들과 차별성이 큰 인물이다. 어떤 점을 중시해 인물을 설계해 갔나.

▲ 윤지의는 정치적 신념보다 사람과 가족이 먼저인 인물이다. 윤지의는 에이햅이 갈등하고 계속 새로운 선택을 해나가는 과정에 키를 쥔고 있다. 윤지의가 가진 사람의 목숨을 중요시하는 신념과 의사로서의 가치관을 더 보여주는 방향으로 키를 잡았다. 에이햅이 군인으로서 혹은 생존에 대한 목적이 있다면 윤지의의 끊임 없는 이타적 태도가 에이햅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게한다. 특별한 교감 없이 이들이 가까워지고 브로맨스를 펼쳐 나가려면 윤지의의 신념이 중요하다고 봤다.

- 영화 촬영 당시 남북 관계와 개봉 당시의 남북 관계는 마치 천지가 개벽했다고 해도 좋을 정반대 상황이 됐다. 현실의 정세가 편집 방향 등에 영향을 미친 건 없나.

▲ 촬영 당시는 바로 내일모레 핵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대치가 극심하지 않았나. 하지만 우리 영화는 정치적 영화는 아니다. 두 남자가 벙커에 고립된 상황이 상징적이지 않나? 지금도 남과 북이 갈등 상황 중에 있고 마음애로 뭔가 할 수 없는 처지다. 대립 구도이든 화해 무드이던간에 이 두 남자가 놓인 상황이 측은해 보이지 않나. 둘이 어깨 동무를 하고 나가는 것을 희망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 촬영 중 어려운 점은? 혼자 연기하는 장면들이 많았을 텐데.

▲ 하정우가 먼저 다 촬영했고, 그 장면들을 봤기에 가이드가 됐다. 그가 연기한 에이햅의 행동에 내가 어떤 것을 입혀야 현장에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일까. 카메라 렌즈만 보고 연기하는게 어려웠다. 카메라를 찬 팔은 늘 한 쪽으로 들고 있어야 해서 어색하기도 했지만 잘 헤쳐 나갔다.

- 'PMC' 현장에 대해 귀족학교 같다는 말을 했는데.

▲ 촬영 순서는 'PMC'가 먼저고 그 다음에 '나의 아저씨'를 했다. 영화 '악질 경찰'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때 괴리감이 있었다. '악질 경찰' 캐릭터가가 상당히 강하고 영화도 거칠기에 현장 분위기도 너무 달랐다. 이쪽 현장은 외국 배우들도 많고 현장도 너무 조용하고 심지어 김병우 감독님도 너무 조용했다. 귀족들만 다니는 국제 학교에 전학온 느낌이었다.(웃음) 총소리 날때는 시끄러웠지만 그걸 빼고는 조용했다. 초반 현장 적응은 하정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병서 촬영 감독은 학교(한예종) 때부터 너무 좋아하는 친구다. 김병서 촬영감독의 졸업 작품에 내가 출연했는데 김 감독이 졸업도 안 한 상태에서 충무로로 불려 가는 바람에 완성이 안됐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인데 작품에서 한 번도 못 만나다가 이번에 18년 만에 만났다. 그 졸업 작품은 루시드 폴의 '너는 내 마음속의 나'라는 곡의 뮤비로 공개됐다.(웃음)

- 엔딩 공중 낙하장면은 최고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촬영 에피소드는.

▲ 저도 굉장히 좋아하고 자랑하고 싶은 장면이다. 기술적으로도 한 단계 나아간 장면이다. 마치 땅에 있다가 공중으로 팍 솟아오른 느낌이 나도록 촬영했다. 윤지의야 기절해서 에이햅에게 매달려 있으면 됐다. 저는 눈을 감고 비행기 밖으로 추락한 다음부터 편하게 촬영했다. 무술 감독님이 합판 같은 것을 제 몸 아래 대고 끌어 당겨서 추락신을 찍었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릴 때 기분이 생각보다 좋더라. 하정우는 팔, 다리의 관절마다 전부 와이어로 연결해서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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