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와 '삼시세끼' 속 모습은 단 1%의 꾸밈도 없는 실제 이서진 혹은 자연인 이서진의 모습이었다.

'최선'과 '열심'이라는 단어가 그 어떤 것보다도 미덕이고 지향점인 한국 사회의 40대 후반 남성이, 그것도 데뷔 이후 톱스타의 자리에서 거의 내려와 본 적이 없는 20년 경력의 배우가 이토록 쿨함과 시크함, 솔직함으로 인터뷰 자리에 선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위해 홍보 인터뷰에 나선 이서진은 주어진 질문에 대해 단 하나의 질문에도 한 치의 머뭇거림이나 불편해 하는 내색 없이 털털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인간적 냄새가 물씬 풍기고 털털하게, 하지만 진지하게 답변에 임하는 그의 모습에서 영화 '완벽한 타인'에 대한 호감도가 절로 올라갈 정도였다.

연기에 대한 야심이나 배역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30대 후배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나이에 걸맞는 작품을 택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을 걷겠다는 그에게서 단단한 심지가 느껴진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선생님들에게서 '인생 끝까지 무대에서 보내고 싶다'는 열정을 느꼈다는 그가 펼쳐 갈 이후 연기 인생을 유심히 지켜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 유해진, 조진웅, 염정아, 김지수 등과 호흡이 어땠나.

▲ 노련한 배우들과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영화는 한 사람만 잘 한다고 되는 영화가 아니기에 서로 배려하고 양보했다. 한 달 동안 전남 광주 세트에서 합숙하며 ㅉㅣㄲ었다. 서울이라면 집에서 왔다갔다 하며 촬영하겠지만 같은 숙소에서 자고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촬영장에도 같이 가고 하면서 생활하니 정말 친해졌다. 송하윤 빼고는 나이도 비슷한 또래라 더 친해지더라. 윤경호는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선배님들보다 어려 보여서 걱정이다"라고 하길래 욕을 해줬다.(웃음) 실제로는 우리보다 10살 정도 어리다.

- 평소의 젠틀한 이미지와 달리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준모 캐릭터가 의외성이 있더라.

▲ 남자들은 평소 욕을 많이 한다. 저도 어릴 때부터 좀 했다. 아마 '꽃보다 할배'에서 여행 다닐 때도 뒤에서 욕하는 장면도 꽤 있을텐데 나영석이 잘 편집해서 그렇지.(웃음) 이재규 감독과도 친하고 제가 욕하는 모습도 많이 봐서 극 중 더 세게 욕하고 야한 이야기도 더 했는데 수위 조절을 많이 한 것 같다.

- 정반대되는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오는 일탈의 감정 같은 것이 있었나.

▲ 오히려 제가 싫었던 건 송하윤과 닭살 돋는 그런 장면이었다. 욕하는 장면은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하윤이 나이 때는 하기 싫어도 알콩달콩한 그런 표현을 하게 되잖나. 요즘은 절대 안하지만. 제 출연 장면은 심각한 것도 거의 없다. 남들이 심각할 때 풀어주는 역할이어서 편하게 촬영했다. 가장 고민도 없는 인물이었다. 유해진씨나 조진웅이 감정신을 준비할 때 저만 준비할 게 없었다. 저만 편했다.

- 포스터를 보면 김지수가 이서진만 쳐다 보고 있다. 영화의 여기저기서 관계 암시를 하고 있다.

▲ 휴대폰 게임 자체가 내 휴대폰을 볼려고 시작한 거다. 영화를 두 번 보시면 바로 아실 거다. 이재규 감독과 얘기할 때 티 안나게 이런 표현을 하기로 했다. 닭강정을 먹다가 저를 쳐다보고 하는 장면들이 가끔 있다. 이런 디테일을 감독이 잘 살려줬다.

- 이재규 감독과는 인기 드라마 '다모' 이후 처음 만남이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 이재규 감독이 직접 만나서 "자기가 새 작품을 하는데 함께 하자"고 하더라. 저랑 15년 만의 만남이다. 그동안 한 번도 같이 한 적이 없다. 저를 잘 아는 사람이니 '자신 있어서 같이 하자고 하겠지' 싶더라. 영화가 큰 사이즈고 이런 건 아니지만 함께 하는 배우들도 다들 잘 하는 배우이고 인간들 사이에 오가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런 영화도 재미있어 보였다. 대본을 볼 때보다 영화로 만들어지니 '이렇게 풍성했나' 싶다. 고부갈등부터 사랑, 우정, 자식과의 갈등 등 없는 게 없지 않나. 이재규에 대한 신뢰가 더 커졌다. '나이를 먹더니 더 유연해지고 여유있어 졌구나' 싶다.

- 실제로 영화와 같은 휴대폰 게임을 제안 받는다면 할 생각이 있나.

▲ 절대 내 휴대폰은 오픈할 수 없다. 이건 남이 궁금해서 하는 게임인데 나는 남의 삶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굳이 그런 걸 뭐하러 하나. 염정아는 휴대폰을 오픈할 수 있다고 하더라.

- 영화 출연이 오랜만이어서 반갑다. 평소에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 전부터 늘 하고 싶었다. 나이 드니 아무래도 좀 더 편해진 게 사실이다. 나이 들면 할 수 있는 역할도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주인공을 벗어나는 나이이다 보니 편해졌다. 주인공이 들어오면 더 좋겠지만 이제 '왜 주인공을 못하지'라는 생각은 안한다. 얽매이지 않는 나이가 됐다. 이번 영화에서도 유해진씨 역할이나 진웅이 역할이면 못했을 거다. 부부생활이나 가족 관계 표현은 별로 안 맞는다.

- 이번에도 바람둥이 역할인데 '오늘의 연애'에서도 문채원을 울리는 유부남 역할이었다.

▲ 박진표 감독이 '이건 이서진을 위해 썼다. 잠깐만 나오면 된다'고 했다. 막상 하겠다고 하니 장면이 잔뜩 늘어났더라. 그 때는 심지어 불륜이었다.

- 김지수가 연기한 정신과 의사 예진과 수의사이자 아내인 세경에게는 각각 어떤 감정인건가.

▲ 예진이한테 준모는 특별한 단 한 사람이지만 준모는 모든 여자가 다 특별한 애다. 이 여자는 이래서 특별하고 저 여자는 저래서 특별하다고 할까. 그런 사람을 실제 본 적이 있다. 태생 자체가 그렇다. 타고 나기를 연예 쪽으로 발달한 사람 말이다. 여자들이 원하는 남성상에 전부 맞춰 주는 그런 남자로 해석해서 연기했다. 깊이도 없고 얕은 성격이고 심각해진다 싶으면 대화의 화제를 바꾸는 그런 인물로 표현했다. 이재규 감독도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다.

- 이재규 감독은 왜 준모 역으로 이서진을 캐스팅했을까.

▲ 자기가 알던 이서진이 평소 모습 그대로 예능에서 관심을 받으니 그 모습을 딱 가져다 쓰면 맞겠다고 한 것 아닐까. 준모는 나쁜 놈이지만 사람들이 그리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본 것 같다.

- 함께 한 조진웅과 유해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유해진씨는 정말 치밀하고 예민하고 계획 세우고 이런 걸 많이 한다. 연구도 많이 하고 현장에서 예민하다. 진웅이는 (작품을 위해)몸무게가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봐도 정말 대단하다. 지금은 촬영 때보다 몸이 좀 불었던데 (건강이 상할까봐)가끔 걱정스럽다.

- 이번 영화로 얻은 교훈이 있나.

▲ 교훈은 없다. 그렇게 오래 된 친구사이에서 친구의 와이프와 일이나 벌이고 제 정신이 아니다. 준모는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애다. 해외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 캐릭터지만 한국에선 절대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 송하윤과 격정적 멜로 장면도 촬영했는데 삭제됐다고 들었다.

▲ 처음 영화 초반부 준모와 아내 세경과 자동차 타러 가기 전 (애정 행각을 벌이는)진한 장면이 있었다. 준모는 힘이 넘치는 애다. 초반 장면 대사 중에 "또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맥락이다. 준모는 그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건강한지 모르겠다.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그 쪽으로 발달이 된 친구다. 영화 전체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아 준모와 세경의 애정신은 삭제됐다고 들었다.

- 예정된 차기작은.

▲ '백야행'의 박신우 감독이 연출을 맡는 OCN 7부작 드라마 '트랩'을 촬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 작품을 하고 나면 바로 털고 다음 작품으로 가는게 힘들었는데 요즘은 빨리 들어가고 나올 때 빨리 나온다.

- 드라마 남주는 20~30대로 넘어갔지만 영화계에는 40대 남자 주인공들이 꽤 활약을 하고 있다. 주연 자리를 후배들에게 내려주겠다고 했는데 정말 욕심이 없나.

▲ 요즘은 여러 명의 주연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이 많으니 한편으로 '주인공의 의미가 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나이대는 벗어났다고 본다. 더 어린 친구들이 주인공을 맡아야 하고 내 나이쯤 되면 이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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