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현진, 고아라, 박민영.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김봉진 기자 view@hankooki.com
[스포츠한국 박소윤 기자] 스크린, 브라운관을 가리지 않고 여성 중심의 서사를 가진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 김희선과 김해숙의 복수를 뛰어넘은 워맨스(우먼+로맨스)로 연일 화제인 tvN 드라마 '나인룸', 2049 여성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언니들의 먹방 예능 올리브 '밥블레스유'가 대표적인 예다.

안타까운 것은 이를 거스르는 시대 역행적 캐릭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SBS '여우각시별' 속 채수빈이 맡은 한여름은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실수투성이 공항공사 직원이다. 여기에 위기 상황마다 남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전형적 캔디형 인물이다. 이수연(이제훈)의 '괴력팔'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설정이라지만 아쉬운 건 매한가지다. SBS '흉부외과' 속 윤수연(서지혜)는 야망과 사명감이 넘치는 흉부외과 의사지만, 결정적 순간 남의사간의 갈등 유발 도구로 전락한다. 깜짝 놀랄 반전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냉장고 속 여자'(남성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비극적으로 희생당하는 여성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 클리셰의 연장선일 뿐이다.

'반쪽짜리' 캐릭터, 성불평등을 부추기는 서사는 더 이상 대중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이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듯 때로는 사이다 대사로, 때로는 가슴 저릿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팬들을 울고 웃긴 작품들이 있다. 객관화된 대상이 아닌,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브라운관 속 여성들을 소개한다.

사진=JTBC '뷰티 인사이드'
# JTBC '뷰티 인사이드' 서현진

서현진이 연기하는 한세계는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톱스타지만 그 행보는 '전형적 여배우'와 조금 다르다. 한세계는 "딸 같아서 그런다"며 자신이 후원하는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기업 대표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주무른다. 그리고 "예뻐서 만졌다. 아빠 같아서. 진짜 아빠도 조심스러워서 안 만지는데 왜 남의 아빠들이 함부로 만져대는지 모르겠네"라 응수한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남성 제작진들에게 갑질을 당하는 여성 후배의 술을 대신 마셔준 뒤 "네가 그걸 받아줌으로써 수많은 후배들은 얼마나 더 심한 걸 견뎌야 하는지 아냐. 네가 열 번씩 웃어주면 다른 애들은 뭘 참아야 되는지 생각 좀 해"라고 충고한다. 한세계와의 연애를 반대하는 서도재(이민기)의 모친이 "1억 받고 헤어져"라 강요하자 '1억 100원'을 역으로 입금하며 "싫다"고 거절하는 식이다. 남주 어머니에게 물을 맞고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던 기존 여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 JTBC '미스 함무라비' 고아라

등장부터 강렬했다. 지하철 성추행범을 직접 검거하는가 하면, 자신의 짧은 옷차림을 지적하는 판사에게 "조신한 옷으로 갈아 입겠다"며 히잡을 입고 나타난다. 남성 동기들이 성추행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법을 사용했다. 시장 이모들에게 각종 성희롱, 성추행 발언을 듣고 나서야 "성적 굴욕감을 제대로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박차오름(고아라)은 "이제 대한민국 여자들의 일상을 좀 이해하시겠냐"고 되묻는다.

유례없는 독보적 '여성 판사' 캐릭터는 '글 쓰는 판사'로 유명한 문유석 부장판사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저 역시 똑같은 '한남'(한국남자)이지만, 제게 울분을 토하던 많은 여성 법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공감을 안 할 수가 없다. 젠더 감수성은 결국 역지사지, 인지상정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진=tvN '김비서가 왜 이럴까'
#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박민영

'비서계 레전드'라 불리는 9년차 베테랑 비서 김미소(박민영)는 2030 여성들의 워너비로 떠올랐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함, 자신의 삶을 위해 사표를 던지고 상사를 향한 '돌직구 발언'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대리 만족을 자아냈다. 박민영은 "주체적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미소의 모습에 많은 또래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JTBC '뷰티 인사이드'
# JTBC '뷰티 인사이드' 이다희

'뷰티 인사이드' 속 또 한 명의 숨은 공신은 이다희다. 이다희는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야망녀 강사라로 분했다. 선호그룹 원에어 대표 자리까지 꿰찼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친오빠 서도재(이민기)의 자리를 노린다. 류은호(안재현)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천편일률적인 '재벌 3세 남성-가난하지만 착한 여성'이라는 관계성 대신, '사랑도 돈으로 사고픈 여성-알바를 전전하는 천진난만 남성'이 엮이며 신선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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