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수살인'서 연쇄살인범 강태오 역 열연
'신과함께2', '공작'이어 개봉작만 세 편 내놔
'2018년은 주지훈의 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동안 뿌렸던 씨앗들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중이다. 주지훈의 2018년은 그 어느해보다 화려하고 배우 생활에서의 모든 영광이 올 한해에 모두 꽃을 피우는 것만큼 집중된 듯 보이지만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달려온 시간은 결코 짧지도 간단치도 않다.
영화 '암수살인'에서 연쇄살인범 강태오 역을 연기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삭발 투혼을 감행하는가 하면 그 어렵다는 부산 사투리 연기에도 도전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주지훈을 만났다. 올해 개봉한 작품들 때문에 벌써 여러 차례 만남이다. 각종 공개 행사에서는 남자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급의 미모를 뽐내는 그이지만 인터뷰 자리에서는 늘 그렇듯 흰 무지티셔츠에 나이키 운동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인터뷰 첫 머리부터 최근 성과의 공을 그동안 작품을 함께 한 정우성, 황정민, 하정우, 김윤석 등 선배 배우들에게 돌렸다. 자신에게는 그저 인복이 있었을 뿐이라면서.
호흡을 이룬 상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지만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이 그를 사랑하고 촬영 현장에서 후배 배우가 최선의 기량을 다 할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줬다는 건 그를 그만큼 매력 넘치는 배우이자 인간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주지훈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달변에 놀라고 사려깊은 분석에도 놀라지만 또 한 가지 배우로 살아온 지난 13년 여의 시간동안 매 현장에서 보고 배운 사례를 모아 자신만의 굳건한 연기와 삶의 철학으로 단단히 쌓아왔다는 점에 더욱 놀라게 된다. 학맥과 인맥이 성공의 지름길이자 발판인 한국 사회에서 영화계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서 오로지 현장에서 선배 배우들 혹은 감독들과 호흡 속에서 몸소 습득한 산 지식들로 오늘에 이른 주지훈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경험이다. 청출어람청어람이라는 고사성어가 이리 잘 들어맞기도 어렵지 않을까.
- 작품이 연달아 흥행하고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그런데 선배 배우들에게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던데.
▲ 얼마 전에 어떤 매체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선배로 황정민, 정우성 형만 이야기가 나왔던데 분명 하정우 형도 이야기했는데 형이 빠져 있더라.
- '신과함께' 1, 2편과 '공작' 이후 "잘 생겼다"는 외모 평가가 오히려 더 나온다.
▲ 저는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평가를 더 많이 해주실 줄 알았는데 또 '잘 생겼다'고 봐주시니 감사하고 고맙다. 배우의 인생이 긴데 앞으로 더 중후하고 멋진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겠나. 그 때 더 어른 같은 모습이 생겼을 때 멋진 역할을 하면 된다.- 농부가 벼를 수확하듯 그동안 활동 중 괄목할만한 성과가 몰아치고 있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드라마 '궁'으로 모델에서 배우로 첫 시작을 했다. 그 때부터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좋은 감독님들이 발탁해 주신다. 저는 열심히만 하면 됐다. 배우 데뷔 초기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이해 못하던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져 갔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복이 많은 사람 같다. 아 물론 초창기 사기도 당하고 고난도 겪었지만 지금 제게 선물을 주시나 보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공작'도 좋은 형들을 너무 많이 만났고 '암수살인'도 전형적인 부정적 캐릭터인데 상대 역인 김윤석 선배가 거대한 산처럼 버텨 주셔서 잘 표현할 수 있었다.
- 정말 현재 최고 정점을 찍은 선배들과 연달아 작품을 했다.
▲ '아수라' 때 정우성 형, '신과함께' 하정우 형, '공작' 황정민 형과 함께 했잖나. 이 선배들은 잘 해야 본전인 역할들이다. 이 선배들이 한 롤은 연기적으로 뭔가 '짠'하고 보여줄수 있는 상황이나 시퀀스가 없다. 그저 묵묵히 끌어가는 역할이다. 기초 토대가 탄탄히 있는 역할을 선배들이 해줘서 내가 뛰어 놀수 있었다. 저는 행운이 따랐다. 선배들이 예뻐해준다. 제가 술을 잘 먹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 하정우와는 동네 형, 동생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다.
▲ 올 여름에 하와이에 화보 촬영을 위해 갔다가 휴가를 온 정우 형과 잠시 함께 지냈다. 김용화 감독님 가족도 여행을 오셨는데 하와이에 큰 태풍이 불어 집에만 있었다. 나갈 데도 없어서 더 똘똘 뭉쳤다. 정우 형과는 시간이 나면 거의 매일 만난다. '암수살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미리 이야기를 했다. 정우 형이 '윤석이 형 좋은 사람이다. 가필드 형은 귀여운 분이다"라며 성대 모사까지 해주더라. 정우 형 이야기 덕분에 작품에서 처음 만나기도 하고 또 저보다 연배가 높은 김윤석 선배님에 대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 '신과함께2'와 '공작'이 일주일 텀으로 개봉해 어려운 점도 있었겠다.
▲ 초반에 혹시라도 서로에게 피해가 갈까봐 불안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았다. '신과함께 한 공작'이라고 들어봤나. 두 팀이 모두 모여서 사진도 찍고 뒷풀이도 함께 했다. 김용화 감독, 윤종빈 감독, 정우 형, 나, 정민이 형 모두 친하다. 영화계에서 여름 개봉작끼리 이렇게 친하게 함께 홍보해 준 건 유례없는 일이다. 좋은 선배들이 옆에 있어서 정말 좋은 건 내가 어떤 일로 고민할 때 정말 도움이 되는 충고를 준다. "무대 인사 겹치면 어떻게 할래?" 이러는 게 아니고 "그냥 즐겨, 이런 일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아"라고 충고해주는 고마운 형들이다.
- 김윤석은 주지훈에 대해 "지훈이는 똑똑한 친구다. 호락호락한 배우가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 '암수살인'은 김윤석 선배가 연기한 김형민 형사와 제가 맡은 강태오와의 긴장 관계가 핵심이다. 그 긴장감을 잘 표현하는게 중요했다. 제가 너무 긍정적인 걸 수도 있는데 제가 한 지역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의 감정까지 읽기는 어렵다. 그 쪽 지방 사람들의 감정 표현이 따로 있다. 사실 사투리 연기는 제가 제시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의 제작을 맡은 곽경택 감독님이나 김윤석 선배 모두 경상도 분들이었고 저는 그 분들을 100% 믿고 따라 갔다. 그리고 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다.
- 사투리 연기 만족도를 포함해 전체적 만족도는 어떤가.
▲ 항상 노력해도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제 영화를 처음 볼 때 내 연기만 보인다. 사람인지라 저로서 히든 카드로 내놓은 장면에서 잘려 나간 것도 다 보인다. '암수살인'은 김태균 감독님이 순서 편집부터 여러 버전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곰곰히 살펴볼 때 영화가 말하고 싶은 목적대로 잘 나왔다. 자극을 위한 자극을 빼낸게 너무 좋더라. 형사 캐릭터나 범죄에서 강렬하고 이런 쪽으로 빠지기 쉬운데 오히려 안스럽고 불쌍한 피해자에 포커스를 맞췄다. 관객들이 관심도를 높일 수 있게 영화가 잘 나온 것 같다. 영화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사투리 연기는 제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잘 한 건지 잘 모르겠다.
- 강태오 역을 위해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
▲ 특별히 레퍼런스 삼은 것은 없다. 한창 촬영하면서 이 영화에 윤석 선배가 나오고 살인마가 나오고 톤앤매너가 어두우니 '추격자와 비교 되겠다'는 소리가 한창 나왔지만 아예 다른 영화다. 레퍼런스 삼을 게 없었던 이유는 다른 작품들에는 살인의 이유가 있지 않나. 성기능 장애로 인한 정신적 문제든, 불우한 가족사가 원인이든 하잖나. 그런데 이 영화는 그저 '묻지마' 살인이다.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살인하는 게 아니라 길 가다가 부딪혀서 살인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 매일 뉴스에서 등장한다. 공권력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고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예방을 할 수도 없다. 김형민 형사의 대사 중 '그 때 아버지 사건이 있고 나서 너를 바로 잡았더라면 이후 불행한 희생이 없었을텐데'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 사회가 소외 계층과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 시스템을 만든다면 이런 악마들이 만들어진다던가 불쌍하게 희생 당하는 사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 강태오를 그려간 과정이 궁금하다.
▲ 시나리오 구성이 강에서 약, 또 중강에서 약으로 유려하게 이어지며 탄탄했다. 부산 사투리 연기를 위해 곽경택 감독을 매일 만났다. 정말 1대 1로 이런 대사를 한 후 다음 행동 하나씩 전부 계산해 가며 연습했다. 그 흔한 추격전이나 액션 없이 형민과의 밀당을 전달해야 됐기에 김태균 감독님이나 제작자인 곽경택 감독님이 고민을 많이 했더라. 접견실 만남 만으로 극한의 긴장감을 보여 줘야 하니까. 단어 하나, 음절 하나 하나에 목소리 톤과 행동이 다 약속 되어 있었다. 고됐지만 굉장히 집중력과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 부산 지역에 대한 엄청난 사전 조사를 했다는 것이 영화에서 느껴지더라. 김태균 감독의 장점은 뭔가.
▲ 굉장히 섬세하고 선한 분이다. 곽경택 감독님이 사수신데 김태균 감독님이 '억수탕' 때 조감독을 하셨다더라. 두 분이 정말 오랜 사이고 두터운 신뢰 관계더라. 김태균 감독은 부산 사람이 아니어서 제 사투리 연기 부분은 곽 감독님께 도움을 받았다. 김 감독님이 디테일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쓴 게 대부분 배우들이 다 부산 출신이다. 오디션도 부산 극단 출신 배우들로 본 걸로 안다. 그 사람들이 이 영화의 공기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신경 쓰시더라.
- 부모님들도 요즘 행보를 상당히 기뻐하시겠다.
▲ 우리 어머니가 대단한 분인게 아들이 일하는데 피해를 끼치면 안된다고 철저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그동안 VIP 시사회 같은 데서 우리 부모님을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너무 오고 싶어 하는데 어머니가 다 막으신다. 군대 시절 뮤지컬을 많이 했는데 감동적 이야기가 있다. 군대 뮤지컬이라 전국을 순회하는데 거제도에 가기도 했다. 총 몇십회를 공연했는데 어느 날 매니저가 모든 공연이 끝난 뒤에야 말해줬다. "어머니가 제 뮤지컬 전회차를 한 번도 안 빠뜨리고 다 보셨다"고 하더라. 정말 독한 분이다. 단 한 번도 나에게 말하지 않으셨다.
- 부모님 중 누구를 더 많이 닮았나.
▲ 전에 '메디컬 탑팀'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 때 내 모습이 딱 아버지 청년 시절과 똑같더라. 그 이전까지 소년에 가까운 청년이었다면 그 때 비로소야 그냥 청년 모습이 나왔다. 아버지가 22살 때 결혼하셨다. 일찍 결혼하셔서 지금도 젊어 보이신다. 내가 메이크업을 했을 때 모습이 아버지 생얼과 똑같다.(웃음)
- 영화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드라마 ‘아이템' 출연 예정이다. 영화의 돌풍 흥행이후 바로 드라마 출연을 선택한 게 의외다.
▲ 드라마가 영화에 비해 몸도 힘들고 관객들의 변화도 더 빠르지만 장점은 관객 스킨십이 가깝다는 거다. 김용화, 윤종빈 감독님이나 하정우 형도 "드라마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충고해 줬다. 황정민 형은 "나는 안 시켜줘서 못해"라고 하시더라.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드라마 출연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 5년전 인터뷰 때만 해도 할 말만 한다는 인상이 강했다면 올해는 정말 유연해졌다는 느낌이 있다.
▲ 사실 연예계 분들과 친해지게 된 건 영화 '아수라'이후 인 것 같다. 예전엔 연예계 분들을 잘 몰라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같은 작룸으로 청룡영화제에 갔을 때 혼자 화장실에서 앉아 있기도 했다. 그만큼 관계자 분들이나 선배님들도 어렵고 낯설었다. 어릴 때 사기도 당해 보고 인간 관계에서 실수한 적도 있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본 일도 있다. 사람 관계에서 얘기 하다 보면 진심이 안 통할 때도 있지 않나. 분노도 해보고 슬퍼도 해보고 했었는데 인간 관계를 하나 하나 겪어 보니 많이 이해하게 됐다. 예전에는 악의적 기사를 보며 화가 났다면 요즘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도 든다. 신문 기사에서 내 진심을 잘 써주기도 하고 애정도 느껴진다. 촬영을 예로 든다면 감독도 투자배급사나 제작자가 따로 있어서 자기 원하는 대로만 찍을 수는 없잖나. 예전엔 '아 왜 저렇게 준비 안해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아, 저 사람도 힘들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뎌지는 것일 수도 있고 유연해지는 걸 수도 있다.
- 일 외에 취미 활동이나 즐기는 운동은 뭔가.
▲ 평소 짐에서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전에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을 마셨다면 지금은 꾸준히 걷는다거나 격투기도 즐긴다. 격투기는 몸을 다칠까봐 걱정도 된다. 요즘은 골프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