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하늘과 맞닿아 있을 듯한 큰 봉우리들 사이로 격렬한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양새다.

개봉 후 가족관객들을 끌어 모으며 뜨거운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 제작 ㈜주피터필름)은 장중한 품격이 살아 있는 웰메이드 사극 영화다.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풍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보태 탄생한 이 영화는 2013년 ‘관상’, 2018년 ‘궁합’에 이어 역학 시리즈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대를 이어 두 명의 왕이 나온다는 ‘2대 천자 지지(二代天子之地)’를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과 욕망을 그린다.

전국 913만명을 동원한 ‘관상’의 후광과 조승우 지성 백윤식 유재명 문채원 김성균 등 초호화 캐스팅, ‘인사동 스캔들’ ‘퍼펙트 게임’으로 호평받은 박희곤 감독이 메가폰을 쥐어 제작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개봉 후 영화에 대한 좋은 입소문에 3050 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영화 ‘명당’을 명당으로 만드는 주위 세 가지 자연 경관을 살펴봤다.

#조승우란 큰 산을 둘러싼 봉우리들!

관객들이 ‘명당’에 눈길을 돌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들며 대중의 신뢰를 얻은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조승우는 ‘명당’에서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올곧은 성품을 지닌 천재 지관 박재상 역을 맡아 선굵은 연기를 펼쳤다. “역시 갓승우!”란 찬사가 절로 나온다. 그의 모습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욕망의 전투에서 흔듦임 없이 우뚝 서 있는 큰 산을 연상시킨다.

'명당',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조승우를 둘러싼 엄청난 규모의 봉우리들의 존재감도 대단하다. 실질적인 왕 역할을 하는 장동 김씨 가문을 이끄는 김좌근 대감을 연기한 백윤식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스크린을 이글이글 불태운다.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박재상의 친구 구용식을 연기한 유재명의 서민적인 연기는 ‘욕망의 허무함’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며 엄숙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선사한다. 김좌근 대감의 아들 야망가 김병기를 연기한 김성균이나 조선 최고 대방 초선을 연기한 문채원도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이원근 감태오 등 젊은 배우들의 열연도 칭찬할 만하다.

아쉬운 부분은 흥선을 연기한 지성의 다소 밋밋한 연기. 열연을 펼쳤지만 흥선의 극적인 변화에서 드러나는 입체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 긴장감이 떨어지게 만든다. ‘관상’에서 전율을 일으켰던 이정재의 미친 존재감이 그리운 생각이 든다.

#거침없이 흘러내려가는 두 물줄기!

연일 부동산 대책이 나오는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명당이란 소재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한다. 풍수지리는 땅의 성격을 파악하여 좋은 터전을 찾는 사상으로 요즘도 많은 이들은 환경적 요인을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 지어 ‘명당’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명당’을 흐르는 강은 풍수지리의 명당이란 줄기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라는 줄기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영화 초반 천재지관 박재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명당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왕권이 위협받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장동 김씨 가문의 횡포 속에 왕족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흥선(지성)이 등장하면서 물길의 속도가 빨라진다. 두 명의 왕이 나온다는 ‘2대 천자 지지(二代天子之地)’를 차지하기 위한 장동 김씨 가문과 흥선과 박재상 연합군의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영화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명당',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역사가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결말은 모두 아는 상황.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탐욕의 전투 속에서 감독은 진정한 명당의 의미를 묻는다. 원하는 대로 두 명의 후손이 왕이 됐지만 비극으로 끝난 흥선대원권의 말로를 알기에 운명은 환경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면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소재에 함몰되지 않은 박희곤 감독의 깔끔한 연출이 돋보인다.

#산과 강 사이에 위치한 양지 바른 들판

영화 ‘명당’은 고개를 들어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높은 산과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강 사이 양지 바른 들판에 집을 짓는다. 전작 ‘관상’의 흥행 요소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명당이라는 소재에 맞는 새로운 집을 지은 스마트한 기획이 돋보인다.

실제 역사에 역학을 접목해 상상력을 발동시킨 뼈대는 비슷하지만 역학의 ‘관상’과 ‘명당’이 다른 것처럼 두 영화의 색깔은 다르다. ‘관상’은 자신이 갖고 태어난 외모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지만 ‘명당’은 자신이 노력을 해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가 더욱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이 때문에 배우들의 열연 못지않게 촬영과 미술의 역할이 매우 크다. 요즘 유행하는 말도 ‘장관이다’ ‘절경이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백윤석 촬영 감독이 담은 전국 각지 절경들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땅의 기운까지 담아내며 땅이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임을 다시 한 번 확신시켜준다. 인물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려낸 의상과 공간의 미를 살려내며 관객들의 눈을 매료시키는 미술도 압권이다.

'명당',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명당’은 흥미로운 소재에 명배우들의 열연, 깔끔한 연출이 더해진 충무로의 저력을 다시 일깨워주는 수작이다. 그러나 ‘명당’이라는 소재 자체에서 오는 한계도 있다. 실생활에서 땅의 유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30~50대와 달리 10~20대에게 ‘명당’은 ‘관상’만큼 관심이 가지 않는 분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선입견일 뿐. ‘명당’은 여러 미덕과 재미를 갖춘 작품이다. 아찔한 카타르시스와 묵직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명당',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명당',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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