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유독 사극과 잘 어울리는 배우들이 있다. 배우 김명민이 딱 그런 경우다. ‘불멸의 이순신’을 시작으로 ‘조선명탐정’ 시리즈까지 그가 택하는 사극은 반드시 흥행하곤 했다. 사실 사극은 배우들에게 까다로운 장르다. 옛말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사 소화부터 어렵고 자칫하면 시대적 배경에 녹아들지 못하고 튄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때문에 사극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건 곧 연기력이 입증된 배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김명민이 이번엔 ‘물괴’로 ‘사극엔 김명민’이라는 흥행 필승 공식을 다시 한 번 굳힐 전망이다.

12일 개봉한 ‘물괴’는 중종 22년, 조선에 나타난 괴이한 짐승 물괴와 그를 쫓는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김명민은 물괴를 추적하는 수색대장 윤겸으로 분했다. 윤겸은 임금을 가장 가까이 모셨던 옛 내금위장으로, 한동안 궁을 떠났다가 물괴를 잡기 위해 다시 왕의 부름에 응하게 된다. 조선 최고의 무사 출신인 윤겸은 딸 명(혜리), 충직한 부하 성한(김인권)과 손잡고 나라를 위해 나서지만, 이내 물괴의 공포스러운 실체를 맞닥뜨리고 위기에 처한다.

“촬영할 때에는 상상도 못한 모습이었어요. 혐오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비주얼은 정말 잘 나왔더라고. 솔직히 우리는 물괴가 주인공이니까 얘가 잘 해줘야 돼요. 저보다 잘한 것 같아요. 오히려 물괴한테 밀린 것 같아요. 근데 밀려도 기분이 좋았어요. 피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징그러운 괴물이지만 얘도 사실 인간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거고, 그런 물괴의 서사에서 오는 연민까지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물괴’의 가장 큰 재미는 물괴가 선사하는 최대치의 공포다. 마치 물괴를 바짝 따라가는 듯한 카메라 앵글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관객들로서는 즐거운 경험이지만 시종일관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김명민 역시 “손발 오그라드는 경험이었다”고 털어놔 웃음을 안겼다.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롯데엔터테인먼트
“주로 혼자 넘어지고 구르고 숨이 차니까 한 마디로 쪽팔려요. 민망한 건 둘째치고 사실 물괴랑 직접 호흡을 나눌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죠. 그래서 괴수가 등장하고 블루스크린을 이용하는 작품들은 드라마의 밀도가 느슨한 경우가 많아요. 철저히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니가 어쩔 수 없이 갭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빈틈없는 호흡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 했어요.”

특히 수색대원들의 쫀쫀한 호흡은 영화 상당 부분의 재미를 책임졌다. 김인권, 혜리, 최우식을 비롯해 이들과 대립하는 박성웅, 이경영까지 내공 깊은 배우들의 연기 합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다. 김명민은 “물괴의 실체가 드러난 다음부터는 액션으로 가야한다. 길지 않지만 서로 주고받는 느낌들을 잘 살려낸 것 같다”며 특히 혜리를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제 딸로 나와서 그런 게 아니라 참 예뻐요. 첫 영화라 부담이 있었을 텐데 많이 애쓰는 게 눈에 보였어요. 아무래도 아이돌이라 연기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 같은데 같이 연기한 입장에서는 전혀 걱정할 게 없었어요. 뭘 지나가면서 슬쩍 알려주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체득하더라고요. 생각보다 뱃심도 좋고 힘도 있어요. 목소리도 우렁차잖아요. 가끔 웃음소리 들으면 ‘뭐야, 나보다 커?’하고 놀랄 때도 있었어요. 하하. 본인의 노력에 달렸겠지만 얼마든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롯데엔터테인먼트
‘물괴’의 연출을 맡은 허종호 감독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포효하는 물괴를 상상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3m의 거대한 몸과 시속 45km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물괴'와 이를 추격하는 수색대의 화려한 액션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국내 관객에게 익숙지 않은 크리처 무비라는 장르를 위해 허종호 감독은 조선왕조실록 속 '물괴'의 짧은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현실감 넘치는 이미지들을 탄생시켰다. 여기에 조선시대라는 한국적인 배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물괴의 모습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도전으로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명민은 “우리는 편하게 앉아서 영화를 즐기고 끝나지만 작품 한 편엔 수백명의 노고가 담긴다. 물괴도 털끝 하나까지 사람이 일일이 터치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이런 영화들이 계속 나와야 우리나라에도 할리우드 같은 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시도가 자꾸 있어야 돼요. 이미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괴물’이 있었죠. 그 이후에 많은 크리처 무비가 제작됐는데 ‘괴물’을 이을만한 성과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크리처 장르의 불모지라는 말도 나오죠. 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그런 면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한 제작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최초의 크리처 액션 사극, 이런 것에서 오는 자부심이 있어요. 트루스토리에 토종 괴물까지 모든 게 참 좋잖아요. 물론 저는 일개 배우로서 숟가락만 얹었지만 이런 기획을 하고 개발하는 분들이 자꾸 생기다 보면 정말 훌륭한 토종 크리처 무비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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