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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류준열의 최근작들 속 캐릭터 어느 하나 강렬하지 않은 것이 없었음에도, 인물 하나하나에 연민이 느껴지고 그 인물을 위해 진심의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세상에 없을 폭소를 터뜨렸음에도 놀라울만치 그가 연이어 소개하는 새 인물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게 된다.

어떤 색이라도 터치할 수 있을 듯한 흰 도화지 같다는 표현이 이처럼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어떤 색이라도, 어떤 향이라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색 무미 무취'라는 말은 어떻게 들으면 다시 없을 비판의 표현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어떤 형태의 캐릭터라도 이질감 없이 녹여내는 류준열에겐 더 없이 어울리는 표현이다.

영화 '소셜포비아'(2014)에서 양게 역으로 데뷔해 2015년 당시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중들의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가 연기했던 김정환은 내 옆에 꼭 이런 남자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겉으로는 츤데레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인물이었다.

'응팔'로 큰 인기를 누리며 본격적으로 데뷔한 만큼 유사한 캐릭터나 드라마로 인기를 이어갈 법도 했지만 류준열은 '운빨로맨스'(2016) 한편을 제외하고 '더킹'의 조폭 넘버투 최두일, '택시운전사'의 피끓는 광주의 대학생 구재식, '침묵'의 인기가수 열혈팬 김동명 등 표현적으로도 세고 감성도 풍부해야만 하는 역할을 연이어 연기해왔다.

대중들의 폭발적 사랑 속에 데뷔했기에 그 누구보다 독야청청 빛나는 단독 주인공을 맡고 싶어 몸살이 날 법도 했으련만, 정우성, 조인성, 송강호, 최민식 등 최고의 선배 배우들 옆에서 연기력이나 주목도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에너지를 선보이며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해냈다.

충무로의 젊은 소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서의 인기와 배우로서의 연기력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얄미울만큼 현명하게 최고 배우의 자리를 향하여 한 계단씩 차분히 오르고 있는 중이다.

올해 세 편의 영화를 선보이는 류준열이 '리틀 포레스트'에 이어 다음으로 내놓은 '독전'(감독 이해영)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그는 마약 조직의 연락책 락 역을 맡아 조진웅, 故 김주혁, 차승원 등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독전' 전체를 관통하는 뜨거운 에너지를 선보였다.

- '독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기차처럼 달려가는 느낌이다. 원호와 락의 먹먹한 그 감정을 잘 보여주고 영화가 마무리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정이 잘 표현됐다. 반전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봤다.

- 락은 대사도 인물에 대한 설정도 극히 적은 인물이다. 표현이 어렵지 않았나.

▲ 락은 태어난 나라나 고향도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전사가 없지 않나. 인물을 집중해서 연구해봤지만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자기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게 락의 본질이다. 마약 조직에 더부살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혹은 마약왕이 되어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욕심이 아니라 자신이 궁금해서 알아갈려고 하는 과정이라 봤다. 조진웅 선배님이 연기한 원호도 전사가 없지 않나. 그는 이선생을 십수년간 쫓은 인물이다. 락의 입장에서는 원호를 바라보며 거울 속 자신으로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선생을 그리 오래 쫓은 사람이니 나 자신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 그렇기에 더욱 동작이나 신체 활동 또는 대사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을텐데.

▲ 처음엔 이해영 감독님이 생각한 락과 내가 생각한 락에 이견이 있었다. 배우에게 가장 편한 무기는 대사나 잔재주 아니겠나. 그러다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했고 결국 현장에서의 감정에 충실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영 감독님의 OK 사인이 빨리 떨어져서 나중엔 배우 입장에서 불안하기도 했다. 어느날 조진웅 선배와 감정적으로 뭔가 오갔는데 진웅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시더라. 그 때 정말 희열을 느꼈다. 평소 애드리브를 선호하고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대사의 어미조차 바꾸지 않았다. 감독님이 작가 출신이시라 대사가 너무 좋고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들이 많았다.

- '더 킹'에서는 정우성, 조인성, 김의성과 '택시운전사'에서는 송강호, '침묵'에서는 최민식과 함께 호흡을 이뤘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앞이라 주눅들거나 부담되지는 않았나.

▲ '더 킹'은 정말 부담을 많이 깨지 못하고 했다. 선배님들이 부담을 덜어주셨음에도 결국 부담을 많이 가져갔다. 송강호 선배님은 정말 더 선배님 아니신가. 현장에서 형이라고 부른 분들도 있는데 송강호 선배님은 더 윗 연배시니 필요 이상으로 더 어렵더라. 하지만 촬영 중간에 이러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송강호 선배님도 많이 업 해주셨다. 그 후 최민식 선배님과 호흡을 맞추며 역할대 역할로 만나는 재미를 알게 됐다. 선배와 후배가 서로 도움을 주고 이런게 아니고 내 역할과 상대의 역할이 만나서 합을 이루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번에는 까불기도 많이 까불고 농담도 하며 조진웅, 차승원 선배님과 많이 웃으며 촬영했다.

- 이해영 감독이 락 역에 류준열을 택한 이유를 들었나.

▲ 따로 들은 말은 없지만 감독님과는 정말 격의없이 친하다. 정말 친구처럼 서로 할말 안할말 다 하며 지냈다. 너무 말이 잘 통했다. 다음 번엔 이해영 감독님과 코미디 영화를 하기로 했다.

- 류준열 개인에게 영화 제목처럼 치러야 할 독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 우리 영화 제목이 마약 조직의 독전, 혹은 독한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저는 홀로 싸우는 전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살다 보면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렵지 않을까. 내가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같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기에 '내가 누구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배우 류준열과 인간 류준열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도 있고. 나는 원래대로 그냥 쭉 가는 것인지, 아니면 누가 영향을 줘서 만들어져 가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공허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허무하다는 의미보다 비어있다고 할까. 이것을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했다. 다양한 감정들이 든 영화였다.

- 결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설경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 락과 원호 중 누가 죽은 것인지에 대해.

▲ 찍어둔 장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누가 죽었고 살았나보다 내가 기다렸던 사람이 눈 앞에 있고 함께 있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 '살면서 행복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표정으로 답하며 끝나는 그 장면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 배우로서 영화 작업의 가장 큰 묘미는 뭔가.

▲ 이 작품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영화라는 작업이 별개 아니구나'라고 느낀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이야기하고 찍고 촬영이 끝나고 나면 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들, 이 시간이 쌓이다 보면 내 곁에 좋은 영화와 사람들만 남을 것 같다. 어떨 땐 작품이 인정을 못받더라도 재미있는 작품 하나가 남았고 또 어떤 깨달음도 있고 하지 않나.

- 매 작품 속 캐릭터가 변별력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각 캐릭터에 기가 막히게 녹아든다고 할까. 비결이 궁금하다.

▲ '그냥 했더니 됐다'는 아니지만 특별히 어떤 지점을 준비해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동안 선배들께 배우고 학교에서 배운 것, 내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에게 쌓인 것들, 또 내 라이프 스타일이 버무려져서 그런 캐릭터들이 나온게 아닐까.

- 영감을 가장 많이 얻는 영역은 무엇인가.

▲ 연기하고 배우로서 살면서 가장 큰 영감을 받는 것은 영화다. 힌트도 얻고 깨달음도 얻는다. 여러 감정들이 든다. 얼마 전 다니엘 데 루이스 주연의 '팬텀 쓰레드'도 인상 깊었다. 캐릭터도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았고 다니엘 데 루이스가 왜 은퇴를 했는지 고민도 되고 하더라.

-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 단연 조진웅 선배다. 락은 원호를 거울로 생각하며 자신을 향한 힌트를 얻으려 하는데 조진웅 선배님이 동물적으로 하시는 순간들이 있다. 그 감정들은 꾸민 것이 아니기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겠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다. 선배님들은 정말 독하게 준비해 오실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것을 경계하고 동물적 본능을 꺼내시더라. 그런 점에서 감명받았다.

- '응답하라 1988'이후 쉬지 않고 계속 작품을 했다. 요즘 별명이 충무로의 젊은 소라는 말도 있던데.

▲ 일단 너무 재미있다. 영화를 찍는 일이 매순간 매회차마다 즐거울수는 없는데 짜릿한 순간들이 있다. 촬영 끝나고 밥을 먹다가 문득 알게 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재미있는 인생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 그러다 보면 소모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도 들어봤는데 이런 생각은 해봤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재미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사실 데뷔 초에는 인간관계나 스케줄, 홍보 행사나 이런 것들이 너무 방대한 양으로 한꺼번에 쏟아져서 당황한 순간들도 있었다. 지금은 좋은 영감을 주는 것들을 보면서 회복이 되는 것 같다. 영화, 음악, 사진들을 보며 좋은 시간들을 가지려 한다.

- 평소 축구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 축구는 보는 것도 내가 뛰는 것도 너무 좋다. 러시아에 가서 월드컵을 보고 싶다.(웃음)

-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열심히 뛰고 있는 20대 배우 중 한 명이다. 젊은 피로서 포부가 있다면.

▲ 동료 배우들이나 감독님들과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우리 세대 배우들이 어떤 안전한 선택보다 도전의 선택들을 많이 하면 좋겠다. 선배들이 훌륭히 해왔던 것들을 지키고 혹은 안타깝게 놓치는 부분이 있었다면 우리가 그것을 챙기고, 또 우리 뒷세대 배우들이 우리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그걸 챙겨주면 좋겠다. 좋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

- '응답하라 1988'이후 실패의 경험이 거의 없다. 탄탄대로만 걸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함은 없나.

▲ 아직 불안감 같은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다. 제가 그걸 느끼고 고통스럽다고 연기를 그만둘 것도 아니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잖나. 제가 또 과거의 일들에 대해 좀 무딘 경향이 있다. 앞만 보며 현재에 충실한 경향이 있다. 지난 작품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은 하지만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주의다.

- 연기자로서 가장 듣고 싶은 칭찬이 있나.

▲ 제 연기가 아직은 늘 부끄럽지만 "나아지고 있어", "좋아지고 있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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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6/21 07:25:52   수정시간 : 2018/06/21 08: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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