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부탁'서 데뷔 후 첫 엄마 역할

현실적인 연기로 몰입감 높여

가족의 의미, 고민하는 계기 됐으면

배우 임수정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명필름 CGV아트하우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지만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미의 상징을 꼽으라면 단연 ‘청순가련’이 아닐까. 연예계에도 청순한 여배우는 넘쳐나지만, 임수정처럼 분위기까지 갖춘 배우는 드물다. 임수정이 아무리 망가진다한들 저급해 보이지 않는 건 그런 아우라 덕이 크다.

최근 명동에서 만난 임수정은 ‘청순’이란 단어를 의인화한 느낌이었다. 까맣고 긴 생머리에 희고 작은 얼굴, 다정한 목소리가 그의 첫인상이었다. 아직도 캠퍼스 로코와 진한 멜로 사이 쯤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그가 데뷔 후 첫 엄마 역할로 돌아왔다. 임수정 주연의 영화 ‘당신의 부탁’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살아가는 효진(임수정) 앞에 남편의 아들 종욱(윤찬영)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두 사람의 좌충우돌 동거를 그린 작품이다.

“아직 제가 엄마를 연상케 하는 배우는 아니잖아요. 스스로도 엄마란 캐릭터가 처음엔 낯설었고 그래서 극 초반 효진이 겪는 당혹스러움이 리얼하게 표현될 수 있었어요. 엄마 역할에 부담은 없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있고 예전부터 엄마 배역이 들어오면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거든요. 다만 제가 미혼이고 엄마였던 적이 없어서 그게 유일한 고민이었을 뿐이에요. 다행히 효진이도 아이를 직접 낳은 건 아니라서 그런 면에서 오는 낯선 감정을 덜 수 있었어요.”

‘당신의 부탁’ 속 효진은 남편과 사별한 뒤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서른 둘 여성이다. 그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아들 종욱이가 나타나고, 그의 보호자가 되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뀐다.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던 종욱은 효진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고 이는 두 사람 모두의 일상에 슬며시 생기를 불어넣는다. 임수정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채색 의상으로 등장, 무미건조한 일상부터 서서히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까지 현실감 넘치는 열연을 선보였다

사진=명필름 CGV아트하우스
“실제로 거의 메이크업을 안 했어요. 푸석푸석한 얼굴 그 자체가 효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이마에 뾰루지가 날수록 ‘그래 이거야!’ 싶었어요. 영화 속 효진이가 미모 가꿀 틈이나 있겠어요? 그래도 종욱이를 만난 뒤로 조금씩 달라지긴 해요. 돌볼 대상이 생기니까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생긴 거죠. 갑자기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종욱이가 잘못하면 혼내기도 하고요.”

‘당신의 부탁’의 영어 제목이 ‘마더스’(mothers)인 것처럼 영화는 다양한 모성상을 제시한다. 수십년간 미디어가 만들어낸 모성에 대한 이미지는 맹목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한 명일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명일 수도 있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임수정 역시 “엄마란 존재, 나아가 모성,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고 밝혔다.

“모든 여성이 엄마로 태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보통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죠. 모두가 엄마가 될 준비가 완벽히 됐을 때 엄마로 불리게 된 걸까?, 아이를 직접 낳아야만 엄마인 걸까? 고민해보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제 친엄마도 떠올랐고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하나씩 생각나더라고요. 또 언젠가 제가 엄마가 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여성으로서 품게 되는 고민들에 대해 좀 깊게 다가선 느낌이에요. 가족의 형태나 엄마의 존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메시지가 좋은 영화라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