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기.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마치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의 영향일까? 서지현 검사의 발언을 시작으로 연이어 터지고 있는 한국사회 각 분야의 성폭력 고발 움직임은 최근 문화·연예계에 집중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글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에 이어 배우 조민기, 조근현 영화감독 , 또 다른 배우와 연극 연출가 등을 언급하며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논란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대응 과정에서 더 큰 논란에 논란을 낳고 있다.

배우 조민기는 사건 초기 “성추행 관련 루머는 명백한 루머로 교수직 박탈 및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가 성추행 관련 징계가 맞다는 학교 측의 확인과 관련 학생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해 앞으로 진행될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윤택 연출가 또한 사과 기자회견이 연출됐다는 폭로에 이어 이 사실을 언급한 오동식 배우도 가해자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 같은 성폭력 이슈에 배우들도 조금씩 입을 열고 있다. 배우 김태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극단 생활을 3년간 했으며 요즘 가장 큰 관심사가 미투 캠페인이라고 전했다. 또 “너무 참담하고 충격적이다. 피해자가 타깃이 되는 현실이 힘들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배우 최희서와 김지우는 SNS를 통해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하 연극인 행동)은 22일 성명을 내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발언을 시작으로 이제야 우리 안 폭력의 실체를 마주하게 됐다”며 “그것은 권위에 순응한 우리 자신이었고, 위계 구조였으며, 침묵의 카르텔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또는 실체를 제대로 모른 채 침묵했고 방관했고 무지했던 점에 대해 피해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모든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까지, 이러한 폐단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우리는 모이고 연대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윤택. 김봉진 기자 view@hankooki.com
마치 벌집을 쑤신 듯 기다렸다는 듯 성폭력 피해 발언이 쏟아져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 발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난 1월 오프라 윈프리는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며 미투 캠페인에 연대하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오프라 윈프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특히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하고 공유할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자랑스럽다."라며 용기있게 말하기 시작한 이들을 응원했다.

주목해야할 것은 대부분의 성폭력, 성희롱은 단순한 남녀관계가 아닌 권력관계에서 빚어지며 이를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하도록 용인하는 사회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글을 쓰는 기자 또한 사회 초년병 시절 씁쓸한 경험이 있다. 모 방송사가 주최한 송년회 자리에서 행사가 무르익을 무렵, 불쑥 그 방송사의 간부가 블루스를 추자며 손을 내밀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춤을 청하는 간부의 제안을 지금이라면 자연스럽게 거절했겠지만 신입 기자였던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앞으로도 얼굴을 볼 그 고위 간부의 청을 거절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은 생각에 싫지만 응했던 기억 말이다. 다행히(?) 춤만 췄을 뿐 별다른 사건은 없었지만 왠지 분위기에 압도돼 거절할 수 없었던 씁쓸한 기억으로 깊게 각인돼 있다.

굳이 개인적인 기억을 거론한 이유는 성폭력 성희롱 이슈가 특정한 집단 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다반사에서 쉽게 겪을 수 있을 만큼 만연해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두번 쯤은 성폭력 성희롱 이슈에 맞닥뜨리곤 한다.

외국의 예지만 실제로 할리우드의 연예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중 94%가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설문조사도 나왔다. 성폭력 유형으로는 ‘불쾌한 성적 발언·농담·제스처’, ‘다른 사람의 성폭력 경험을 목격하는 일’,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 ‘다른 사람이 상사와 성적 관계를 통해 지위상승을 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 등이 포함됐으며, ‘성적 행동을 강요받은 일’이라는 응답도 21%나 됐다.

김태리.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처럼 성희롱 성폭력 이슈는 뿌리깊은 권력 관계와 그것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태동하고 확산된다. 이런 사회구조의 용인은 비단 주로 피해자로 지목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잠재적인 희생양이 된다.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미투 운동을 특정 누군가의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설상가상으로 피해자를 입 다물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집중해서 봐야하는 이유다.

최희서.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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