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슈퍼히어로가 또다시 극장가를 점령했다. 할리우드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가 4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폭발적인 흥행은 아니지만, 한국영화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이미 전 세계에서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지금까지 , , , 시리즈 등 18편이 제작됐다. 이 영화들이 올린 흥행 수입이 130억 달러나 된다. 국내 관객 수만 8000만 명에 이르며, 그중에서 (어벤저스2)는 1049만 명을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에는 새로운 슈퍼히어로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에 대해서는 초반에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다소 부정적인 평가로는 마블 영화 특유의 유머가 없다거나, 너무 진지하고 무겁다거나, 주인공의 아우라가 약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는 설 연휴 기간에 국내 관객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가 됐다.

왜 그럴까? 는 우선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의 계보 안에서 파악할 수 있다. 국내에는 마블 영화의 열성 팬이 두텁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의 중요한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는 ‘금수저’에 해당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본격적인 등장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됐다. ‘믿고 보는’ 마블 영화라는 신뢰도,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이 지닌 명성,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이라는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그러나 모든 ‘금수저’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작품만의 개성과 특징이 없으면, 제 아무리 마블 슈퍼히어로라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만의 차별화된 장점은 필수적이다. 의 티찰라는 마블 최초의 흑인 슈퍼히어로이다. 영화의 배경도 아프리카의 가상 왕국 와칸다이다. 아프리카 왕족 출신의 흑인 슈퍼히어로. 지금까지의 슈퍼히어로와는 혈통이 다르다.

그런데 티찰라는 천재적인 지능의 소유자로서 ‘아이언 맨’을 능가하는 재력, ‘캡틴 아메리카’ 못지않은 신체 능력을 지닌 전사이다. 그는 희귀 금속 비브라늄으로 만든 수트를 입으면 천하무적이 된다. 즉, 티찰라는 마블이 탄생시킨 선배 히어로들의 여러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물이다. 새로움과 익숙함이 공존한다.

마블의 마케팅 전략도 의 인기에 한몫했다. 마블은 를 통해 티찰라의 인지도를 높여 놓았다. 올 여름 개봉 예정인 에도 등장한다. 티찰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여러 작품에 등장시키는 ‘원 캐릭터 멀티 캐스팅’ 전략의 중심에 있다. 그는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미래의 히어로이기도 하다.

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 인물들의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티찰라의 존재감이 다소 약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티찰라의 옛 연인이자 와칸다 왕국의 여성 호위대 ‘도라 밀라제’의 대원인 여전사 나키아(루피타 뇽), ‘도라 밀라제’ 대표인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티찰라의 여동생이자 비브라늄을 이용해 수트를 완성한 과학자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는 영화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들은 액션, 지능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영웅 탄생의 드라마이다. 티찰라가 왕자에서 왕으로, 한 나라의 왕에서 세계 무대의 리더로, 조연에서 주연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 겪는 시련 극복이 핵심이다. 그래서 에는 영웅 신화의 모티브가 꽤 많이 들어 있다. 아버지의 부재, 지하세계 여행, 정신적인 스승과의 만남, 악당이자 숙적인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와의 대결, 죽음과 부활,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재탄생하는 과정 등은 영웅 신화 속 영웅의 행적과 매우 비슷하다.

영화 속의 모티브와 사건들은 그래서 꽤 익숙하다. 티찰라가 동생과 왕위를 놓고 싸우고, 죽은 아버지의 비밀과 약점을 알아내고, 신비의 영약을 먹고 부활하는 장면들은 마블의 히어로 영화 는 물론 다른 대중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의 스토리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측면은 가 시리즈의 첫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티찰라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는 티찰라가 영웅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시련을 겪는 과정, 영웅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즉, 티찰라는 이제 막 영웅으로 탄생한 인물이다. 대형 건물을 짓기 위한 터다지기 작업을 마친 셈이다. 의 액션이 마블의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보다 덜 화끈하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액션 장면의 스펙터클이 관객의 기대치에 살짝 못 미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의 흥행이 폭발적이지 않은 일차적인 배경이다. 하지만 티찰라는 아직 비브라늄 수트에도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신출내기 영웅이다. 티찰라의 영웅적인 활약은 후속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에서 흥미로운 점의 하나는 공간의 이중성이다. 영화는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인 와칸다 왕국이 배경이다. 그런데 티찰라를 포함한 왕국의 인물들이 투명 막을 통과하면 완전히 새로운 최첨단 세계가 열린다. 이 비브라늄의 세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와 과학 기술을 지닌 공간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의 와칸다 국민들은 비브라늄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티찰라의 아버지는 이 비밀을 유지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반면 티찰라를 비롯한 왕족들은 비브라늄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한다.

한 편의 영화가 가상공간을 설정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때 가상공간은 대부분 현실 세계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으며,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환상공간이다. 와칸다의 주민들에게는 비브라늄의 세계가 그러할 것이다. 그 세계는 최빈국이라는 현실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꿈의 공간이다. 그런데 비브라늄의 신세계는 현실 세계와 이웃해 있다. 투명한 막만 통과하면 된다. 그런 곳이 과연 존재할까? 그곳에서는 악당과 맞서 싸워 정의를 지켜내는 영웅이 존재할까? 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시적인 자연과 토속적인 문화, 최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인 수트와 비행선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눈앞에 제시한다.

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만의 가상 세계를 그릴 수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은 고단하고 팍팍하지만, 상상만 하던 꿈의 세계는 사실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투명 막만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정의의 세계. 이 대답이 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는 액션의 스케일 대신 의미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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