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트라우마로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청년 강두 역을 맡아 열연한 준호와 만났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박소윤 기자] '준호'하면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2PM이다. 무대 위에서 웃통을 벗어 젖히며 짐승돌(짐승+아이돌)로 이름을 알린지 어언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꼭 들어맞게, 준호는 연기돌로의 변신에 완벽히 성공했다.

영화 '감시자들', '협녀', '스물', 드라마 '기억', '김과장'에 이어 '그냥 사랑하는 사이'까지 제2의 전성기에 오른 준호를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붕괴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린 멜로 드라마. 극 중 준호는 붕괴 사고 트라우마로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위태로운 청년 강두 역을 맡았다.

"끝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왠지 다시 촬영하러 가야할 것 같아요. '김과장' 때는 촬영 끝나자마자 쉽게 역할에서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잘 안되더라고요. ('김과장' 촬영 당시) 마지막 방송 직전까지 촬영을 했거든요. 끝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그런지 홀가분하게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일본 투어 때문에 촬영을 조금 일찍 끝냈어요. 도중에 급하게 나왔고 일본에서 계속 일을 해서 그런지 벗어날 시간이 아직 부족하게 느껴져요."

'벗어날 시간이 부족하다'는 준호의 말마따나, 그의 SNS에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흔적이 가득했다. "이틀 전에 종방연하면서 다 같이 드라마를 보고 끝냈는데 그제서야 실감이 났어요. 감독님께서도 아직 여운이 남으셨는지 혼자 먼저 자리를 뜨시더라고요. 쓸쓸함을 즐기러 나가겠다면서요. 저 역시도 즐겁게 소회를 푸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여운을 느끼고 싶었어요. 어제 하루 종일 집에 누워서 팬분들이 올려주시는 드라마 종영 반응 찾아보고 했거든요. 많은 분들이 쉽게 못 보낼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처럼요."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건 그만큼 그가 작품에 몰입했었다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하다. 대형 참사를 겪은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았을 일이다. 드라마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물었더니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머리가 많이 빠졌고 흰 코털이 났어요(웃음). 시작할 때는 한 개였는데 끝날 때쯤 되니까 일곱 가닥으로 늘어 있던데요? 머리는 그렇다쳐도 코털은 염색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사실 충격이었죠. 아무래도 역할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흰 머리도 아닌 '흰 코털'이 날 정도라니. 준호는 대중들의 편견보다는 조금 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사실 제 자신이 무언가에 대해 준비가 안 되고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실패하는 모습이 상상이 돼요.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니까 짜증도 나고, 그럼으로써 오는 외부의 반응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죠. 일종의 압박감이에요. 가수로 출발한 연예인으로서, 배우를 본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입장에서 '기존의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같은 것들을 상상하다 보니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어쩌면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일 수도 있죠. 강박관념이 좀 센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해요. 꼭 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진짜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악성 댓글'에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단다. 데뷔 초부터 큰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준호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악플 웃어 넘겨요. 그것도 부지런해야 다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악플이 있기 때문에 저희와 팬분들이 대동단결하게 되는 면도 있고요(웃음). 개인적으로 밑도 끝도 없는 비하 댓글은 넘기는 편이에요. 다만 비판은 최대한 수용하려 하죠.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지만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안 좋은 반응이 온다는 건 제 자신감, 자존심과도 연관이 되는 일이잖아요. '아, 이 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하면서 받아들여요. 연기에는 답이 없더라고요. 노래도 마찬가지죠. 최대한 유연하게 받아들이려 해요."

이 모든 노력 덕일까. 시청률은 2%대로 조금 아쉬웠지만 드라마 마니아, 일명 '드덕(드라마 덕후)' 사이에서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시청자가 말씀해주시는 것에 따르는 편이에요. 명작이라고 해주시니까 너무 좋죠. 전작인 '김과장' 같은 경우 사회적 풍자를 담고 있고, 그래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꼽히기도 하거든요. 이번 작품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사실 감사해요. 저한테 있어서는 어느 작품이든 명작이고요. 제가 자신이 있고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때 연기를 시작하거든요. '그사이'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시작했고 이 감정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어요."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인터뷰를 진행하는 날, 2PM 재계약 소식이 전해졌다. 2008년 JYP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데뷔한 2PM은 2015년 재계약을 맺었고, 올해 무려 재재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JYP 역사상 재재계약 팀은 2PM이 유일무이하다. 한 소속사에서 10년 째 같은 그룹으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해졌다.

"JYP는 좋은 회사예요. 철없을 때는 2PM으로 대상 받고, 해외투어 하고 이런 경험들에 대해 '가수니까 당연하지'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소속사에서) 잘 케어해주신 거죠. 이제는 함께한 시간이 길어져서 임원진과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불만도 서스럼 없이 털어놓고요. 다른 소속사요? 아마도 지금처럼 편한 회사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직까지는요(웃음)."

2PM 멤버들의 근황과 함께 자연스레 입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나마 제가 그룹에서는 막내 라인이기 때문에(웃음)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형님들 한 분씩 배웅 해드리고 내년 쯤에 가지 않을까 싶네요."

앞서 준호와의 동반입대를 언급한 멤버 찬성 이야기를 꺼내자 장난스레 손사래를 친다. "꿈 같은 이야기예요. 서로 그런 말을 하긴 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거지, 사실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타이밍 문제이지 않을까 싶은데, 자연스레 함께 가게 된다면 좋겠죠."

2PM 옥택연은 지난해 입대를 앞두고 "인간 옥택연은 물김치 같은 남자"이며 "연기에 등급을 매기자면 A, B, C, D가 아닌 P(pass)"라고 말한 바 있다. 준호에게 이에 견줄만한 신선한 표현을 요구하자 당황한 듯 실소를 터뜨렸다. "택연이 형 물김치랑 P를 제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하지만 미소도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연다.

"'인생은 스테디셀러, 언제 한 번 베스트셀러를 찍어보자'라는 말을 항상 해요.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한 번쯤은 잘 팔렸으면 좋겠고요. 이 직업을 가진 모든 이들의 꿈이 아닐까요? 스스로에 대해서는 '흰 종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해 낸 앨범 제목이 '캔버스'였는데 힘들고 좌절했던 시기를 지나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이뤄가는 과정에서 흰 도화지가 저랑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지는 흰 종이. 그렇게 되고 싶은 바람도 있고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그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이, 물김치 못 이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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