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코미디 '염력', '부산행' 흥행이 준 다시 없을 찬스"

"웰메이드 상업영화만 원하는 패러다임 바꿔 보고 싶었다"

"도시 재개발 소재로 인간과 시스템의 대결 그리려 해"

"심은경, '염력'서 대배우 됐다는 봉준호 감독 칭찬 기뻐"

'염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사진제공=NEW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실사 영화 데뷔작인 '부산행'으로 1156만 관객을 모으며 문제적 감독 대열에 오른 연상호 감독이 신작 '염력'으로 돌아왔다.

류승룡·심은경·박정민·정유미가 주연을 맡은 '염력'은 어느날 염력을 가지게 된 평범한 아빠 신석헌(류승룡)이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인 딸(심은경)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염력'을 지닌 신석헌이 싸워야 하는 상대는 끊임 없는 철거와 재개발로 도시 빈민을 양산하는 도시 개발 세력이다.

한국판 슈퍼 히어로물로 명명된 '염력'은 할리우드 히어로물이 한 영웅의 성장담을 그리는 것과 달리 한국 사회가 처한 첨예한 갈등 구조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그 기반으로 했다. 하루아침에 염력을 가지게 된 신석헌이 엄청난 초능력을 발휘하는 액션이나 스펙터클한 고공낙하 액션도 물론 등장하지만 그가 그 초능력을 젖먹던 힘까지 다해 끌어내는 이유는 딸과 그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신석헌은 초능력을 이용해 영화 속에서 악역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전경들까지도 구해내려 애를 쓴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시절부터 발현됐던 한국 사회를 향한 칼날같이 예리한 의제를 던지는 연상호식 주제 의식에 만화적 상상력과 예측 불허의 비주얼과 액션이 구현됐다.

'염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사진제공=NEW
'염력'의 개봉 직후 시원한 액션과 부성애의 적절한 조합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부산행'과 달리 사회 비판적 소재와 영웅담이 함께 존재하는 것에 대해 당혹감을 쏟아내는 의견과 용기있는 시도라는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스포츠한국이 연상호 감독과 만나 '염력'의 캐스팅 과정부터 제작 동기, 배우들의 후일담, 기획 이유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 '염력'의 개봉 이후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흥행 부담도 있을텐데 심경은.

▲ '부산행' 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부산행'을 너무 사랑해 주셨기에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다. 저는 오히려 '부산행' 당시와 비교하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그 때는 정말 대단히 조마조마했다. '염력'은 뭔가 주위 사람들에게 죄송할 정도로 마음이 편하다.

- 그동안 만든 작품 중 개봉을 앞두고 가장 긴장했던 작품은.

'염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사진제공=NEW
▲ '돼지의 왕'을 만들었을 때 가장 예민했던 것 같다. 10년 넘게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돈도 못벌고 상도 한 번 못받고 주목도 못받았다. '나에게는 전혀 재능이 없나'라고 생각할 때 '돼지의 왕'을 내놓으니 갑자기 사람들이 주목하더라. 저만 느낀건지 모르겠지만 실검에 '돼지의 왕'이 '부산행'보다 더 많이 올랐었다. 인터뷰도 그 때 더 많이 했다. 그 때 지금 아내와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둘이서 "최소 4만은 간다"고 했는데 1만 9000명의 관객이 들었따. '사이비'는 흥행이 안되서 실망하기도 했다. 큰 투자사인 뉴가 배급 했기에 최소 10만 명은 기대했는데 2만 관객이 보셨다. 기대가 컸으니 사람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랬다.

- 그러다가 실사 데뷔작인 '부산행'으로 1156만 흥행을 한 것 아닌가.

▲ 사실 '돼지의 왕'도 호불호가 많았고 흥행만 놓고 보자면 실패와 다름없다. 시간이 흘러 좋은 평가도 받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부산행'도 만들수 있었다. 지금 '염력'까지 총 5작품을 했는데 길게 놓고 보자면 영화 한 편을 개봉시키고 그 반응에 큰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제가 어떤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면 '부산행'이후 2편을 만들었다거나 그 비슷한 류의 영화를 해보려 했을텐데 너무 큰 성과를 거두고 나니 사람이 복잡해졌다. 욕심도 생겼다. 옛날 작은 애니메이션을 할 때는 나라는 존재에 관심도 두지 않던 분들도 같이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고 미국에서도 함께 하자고 연락이 오니 정신을 못차리겠더라. '이렇게 엄청난 기회가 왔는데 못잡으면 바보 아닌가'하는 생각과 '인기에 취해 그것을 유지하려고 영화를 하는 건 부질 없는 것 아닌가'하는 두 가지 생각이 오갔다. '부산행'이 준 찬스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할 프로젝트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염력'이 나오게 됐다.

- '부산행'만 기대하고 극장에 갔다가 '염력' 초반부 철거민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돼지의 왕'을 만든 연상호였지"하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

▲ '생생정보통'류의 TV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철거민이 나오고 유성이 추락하고 또 그 약숫물을 먹는 등 긴 오프닝에서 영화의 정체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관객들이 '어? 이건 뭐야'하는 당혹감을 느꼈으면 했다. 어릴 때부터 한국식 B급 영화를 좋아했다. 여균동 감독의 '맨'이나 박광수 감독의 '진짜 사나이' 같은 영화들을 좋아했다. '사이비'때 권해효 배우를 캐스팅할 때 "'진짜 사나이'를 정말 좋아했다"고 얘기하며 캐스팅했으니까. 요즘 한국 영화들은 점점 경직돼 가는 느낌이다. 웰메이드 영화만 중시하기에 B급 영화는 사라져 간다. '부산행' 또한 B급 소재의 영화를 블록버스터 영화로 포장했기에 흥행이 잘 됐다. '염력'을 만들면서 뭔가 특이한 영화를 만들 기회를 가진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잘 될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또 잘 되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으니까 말이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은 시도라 생각했다. 감독 한 명이 영화를 몇 편이나 만들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제 필모그래피를 볼 때 좋은 시점이라고 봤다. 투자사나 제작사, 배우들이 많이 이해해줬다.

- 스토리가 점프하는 느낌이 있다. 해성이 떨어지고 그 기운을 받은 약수를 먹고 갑자기 염력이 생긴다거나 엄마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법적 다툼이 없는 것도 의아하던데.

▲ 스토리로 관객을 설득시키는게 가장 좋은 건데 편집된 장면들이 좀 있다. 법적으로 소송을 준비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더 설득되지는 않더라. 보편적 관객을 설득하려면 자세한 상황이 등장해야 하고 철거민 이야기니 권리금 이야기도 넣어야 하고 사실상 이 이야기들을 다 담기는 불가능했다.

- 정유미가 연기한 홍상무나 민사장 역 김민재 모두 연민이 가는 캐릭터다. 절대 악으로 그리지 않았다.

▲ 인간과 체제 혹은 인간과 무생물의 싸움을 그리고 싶었다. 사실 체제라는 건 잘 드러나지 않잖나. 홍상무, 경찰, 민사장으로 대변되는데 인간 자체가 나쁘게 묘사되면 안될 것 같았다. 인간은 인간대로 체제 밑에 있다. 인간을 악마처럼 그리고 그 악마를 처단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주면 안된다고 봤다. 다만 체제와 대항해 결국 패배했지만 사람들이 보상으로 받은 허공 같은 공간에서 모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압에 나선 전경들 또한 두려워하는 얼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 심은경이 연기한 신루미가 철거민들의 싸움에 앞장 서는 모습이나 위험에 처한 김씨(유승목)를 구하는 모습 등에서 최근 한국 영화 중 가장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심지어 자신을 구속하려는 전경까지 구하려 하던데.

▲ 영화계에서 가장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김꽃비 배우가 '염력' VIP 시사회 후 만난 자리에서 "여성 캐릭터에 나름 신경을 썼더라"고 이야기해줬다. 루미는 굉장히 인간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여성이다. 나름 신경을 썼더군. 심은경에게 시나리오 줄 때 "그동안 캐릭터성이 강한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당신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더니 많이 놀라더라.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엔 좀 당황했을 것 같다. 심은경이 그동안 강한 캐릭터들을 잘 연기했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심 배우는 정말 진지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노력을 해왔을 거다. '부산행' 때는 단 두 컷의 좀비 역을 소화하려고 액션 스쿨을 다니며 몇 주를 훈련 받았다. 정말 뭔가 해볼려고 노력하고 부딪혀 보는 성격이다. '염력'을 하면서는 좀 더 폭이 넓어졌다. 노력하는 열정도 여전했고 현장을 즐기는 마음의 여유가 보이더라. 연기한다는 게 시험보는 것처럼 강박처럼 다가가면 괴로운데 일을 즐기는 모습이 연기에서도 다 보였다. 봉준호 감독님이 '염력'을 보신후 "심은경 배우는 이제 대배우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문자를 주셔서 기분 좋았다.

- 염력의 소유자 신석헌 역의 류승룡 캐스팅 계기도 궁금하다.

▲ '사이비' VIP 시사회 후 뒷풀이에서 처음 류승룡 배우를 만났다. 그 때 류승룡 배우는 인기의 정점을 찍고 계실 때였다. 류승룡 선배가 마침 "다음 애니메이션을 할 때 저와 같이 합시다"라고 했다. 그래서 "저예산 애니메이션은 개런티를 거의 못드립니다"라고 했더니 "상관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서울역'을 같이 했다. 그 후 류승룡 선배의 영화들이 잘 안됐고 침체기면 침체기라 할 시기를 맞으셨는데 나도 어떤 면에서 그 분과 비슷하다. 무명 시절을 많이 겪었고 그 심정을 너무 잘 안다. 오래 무명 생활을 겪다 보면 일이 들어오면 다 하게 되고 놓치면 안된다는 강박이 든다. 그 이후 구설수에도 오르기도 했는데 내가 볼 때 류승룡 선배는 배우로서 가진 재능이 월등하다. 코미디 연기에 대한 감각이 정말 좋다. 진지한 연기를 하다가도 감정 태세의 전환이 굉장히 빠르고 자연스럽다. 박정민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낭중지추'라고 해야 하나. 이 두 사람은 재능을 감추려고 해도 그 재능이 뚫고 나오더라. 류승룡 배우나 박정민 모두 천부적이다.

- '염력'이 연상호 감독 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뭔가.

▲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너무 좋다. 내가 만들었지만 자꾸 보고 싶은 영화다. '돼지의 왕' 같은 경우는 끝내고 나서 잘 안 본다. '염력'은 최종 편집을 마치고 나서도 스크린 엑스용 컨펌이나 DCP 컨펌 등 제가 여러차례 다시 보게 되는데 재미있고 만족감이 든다. 영화를 하면할수록 '어떻게 하면 인정 받을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기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염력'을 만들면서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이 봐도 재미를 느낄수 있는 원초적 재미를 추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B급 코미디를 추구하게 됐다. 이 영화에는 감정이 폭발한다거나 액션이 폭발력 있게 그려졌다거나 그런게 없다. '여기서 울어야 돼' 이런 지점도 없다. 그냥 울퉁불퉁 재미있게 흘러가는게 좋은 지점이다.

- '부산행'의 1000만 흥행 이후 큰 규모의 스튜디오를 차린다던가 사업적 아이템을 생각한 건 없나.

▲ 사업적으로 성공한 다른 감독님들도 계시지만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반면 저는 그 쪽으로는 재능이 없다. 한 때 '부산행'이 잘 됐을 때 2, 3편을 만들고 좀비 놀이공원 사장도 되고 주식 상장을 해서 몇천억씩 수익을 얻고 하는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저는 사업적 재능도 없고 그런 일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영화업계라는 곳이 잘 될 때는 엄청 나지만 또 몇 년만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업계다. 매번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일을 할수는 없겠더라. 당장 내일 사라진다거나 혹은 다른 영화를 못하게 되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이번에 만화 '얼굴'도 출간했고 애니메이션 작업도 하고 있다.

- 정유미를 주인공으로 하는 재난 블록버스터도 구상 중이라던데. 정유미의 새로운 면을 영화 속에서 발굴해 왔다.

▲ 정유미라는 배우는 무엇보다 인풋의 창이 넓고 아웃풋 또한 다양하다.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들인다. '부산행' 때는 그다지 눈에 많이 띄는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정유미였기에 그 조합에서 더 눈길이 간다. 그냥 대사를 던져도 정유미만의 빛이 있다. '부산행' 때 또 놀란게 상화가(마동석) 죽고 난 후 그 감정선을 엔딩까지 이어가야 했다. 회차가 엄청 길었는데 선경(정유미)은 주구장창 그 감정 상태로 있어야 했다. 그런데 대사가 있든 없든 한 슛을 갈 때마다 단 한 번도 남편 잃은 아내의 감정이 안 흔들리더라. '부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수안이가 터널에서 노래하며 걸어가는 엔딩 장면이다. 터널 촬영도 어렵고 수안이가 노래하는 장면을 계속 롱테이크로 찍어야 하고 카메라도 같이 움직이니 포커스나 이런 부분 때문에 NG가 많이 났다. 아이는 계속 울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니 날은 덥고 많이 힘들어 했는데 정유미는 옆에서 팔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20테이크 촬영을 갔는데 그 때마다 수안이를 달래 주고 안아주고 격려 하면서 내내 같이 연기를 하더라. 정말 좋은 연기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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