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실'서 DVD방 사장 역으로 도경수와 호흡

지나치기 쉬운 일상 캐릭터에 매료

이름 대신 캐릭터로 기억되고파

배우 신하균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배우 신하균은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밀려드는 칭찬에 달아오른 얼굴을 커피잔 뒤에 숨겼고, 영화 이야기엔 금세 수다쟁이가 됐다.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커다란 눈 속에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우수가 있는 사람. 그런 신하균이 선택한 영화, ‘7호실’이 궁금해졌다.

영화 ‘7호실’은 서울의 망해가는 DVD방 7호실에 각자 생존이 걸린 비밀을 감추게 된 사장 두식(신하균)과 알바생 태정(도경수), 꼬여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열혈생존극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신하균은 밀린 월세로 보증금만 까먹는 와중에 폐업도 쉽지 않아 궁지에 몰린 DVD방 사장으로 분해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을 대변했다. “주변에 회사 다니다가 퇴직하고 자영업에 뛰어든 친구들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었고요, 시사 프로그램도 참고했어요. '7호실'은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구조의 문제점, 또 현대인들의 고민에 영화적인 재미를 더한 작품이에요. 영화가 해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같이 한 번 고민해보자는 메시지를 담았죠.”

두식이란 캐릭터는 묘하다. 주변인들에게 상냥하거나 도덕적으로 곧은 사람도 아닌데 영화를 보다보면 그의 입장에 쉽게 감정이입 된다. 괴팍한 그가 설득력을 가진 이유는 그의 얼굴에서 우리 모두 닮은 부분을 조금씩 발견했기 때문일 테다. “두식이는 어른의 몸에 갇힌 소년 같은 사람이에요. 분노 조절이 안 돼서 늘상 화를 내고 거친 욕을 달고 살죠. 근데 대체 뭐가 두식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어요. 극한 상황에 몰리니까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아무도 두식이 말을 들어주지 않은 거겠죠. 그런 전후사정이 이해가 되면 관객들도 두식이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았어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한 공간을 두고, 각기 다른 이유로 사투를 벌이는 두 남자는 빠른 속도로 폭주한다. 그리고 ‘7호실’ 안에 숨긴 비밀을 끝까지 봉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두식은 끝내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게 되고, 영화는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며 열린 결말로 도발한다. “두식이의 미래는 정말 모르겠어요. 아마 가게도 헐값에 처분하고, 돈 갚고 나면 얼마 안 남았을 거예요. 끝까지 비밀을 숨기려던 생각이 바뀌어서 경찰서로 향했을 수도 있고, 가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났을 수도 있죠. 분명한 건 계속 힘들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 인생도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잖아요.”

'7호실'의 두식은 한없이 냉소적이지만, 사실 신하균은 사회 중심부에서 살짝 빗겨선 인물들에 누구보다 온기 어린 시선을 가진 배우다. 그는 조금씩 결함이 있는 캐릭터들을 다독이며 신선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갑(甲)인줄 알았지만 결국 을(乙)이었던 ‘7호실’의 두식이 그랬고, 외계인에 집착했던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 누나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유괴를 저지르는 ‘복수는 나의 것’ 청각장애인, ‘킬러들의 수다’의 혀 짧은 킬러, 전형적인 마초남이었던 ‘페스티벌’의 장배, 자신이 만든 살인병기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중상 역의 ‘악녀’ 까지. 관객들은 어딘지 기이하고 괴짜에 가까운 신하균의 얼굴을 사랑했다. 그는 “조금 이상하다 싶은 캐릭터가 재밌지 않냐”며 웃었다. “독창적이고 신선한 캐릭터에 확실히 끌려요. 다만 너무 현실하고 동떨어진 인물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소시민 캐릭터에 정이 가요. 실제 성격은 평범해요. 절대 괴짜 아니에요.(웃음)”

이처럼 모험이 딸린 선택들 덕분일까. 고정된 이미지를 변주하는 대신 원형없이 변화해온 배우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신하균일 테다. 연기적으로, 또 외형적으로 커버 가능한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말에 “평범하게 생겨서 그렇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외모보단 자신감을 무기로 삼는 것 같아요. 가슴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났을 때 제 안에서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요. 잘하고 싶다는 생각, 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많은 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7호실'에 이어 선보일 차기작 역시 평범하진 않다.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바람바람바람’(감독 이병헌)에선 제주도에서 바람 피는 캐릭터로 또 한 번 비범한 매력을 드러낼 전망. “다리 골절 부상을 입긴 했지만 재미난 촬영이었어요. 지난 여름에 촬영이 끝나서 쉬고 있어요. 워낙 취미가 많은데 장난감 만드는 걸 제일 좋아해요. 피규어나 프라모델, 레고 같은 것들 있잖아요. 요리도 좋아해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집에서 불고기,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같은 걸 만들어요. 할 때마다 맛은 바뀌지만.”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불과 20년 전, 신하균이 20대이던 때만 해도 신비주의 콘셉트를 적절히 활용하는 건 스타덤에 오르는 전략 중 하나였다. 일단 대중과의 접촉을 꺼리는 전략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최근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이미 수많은 배우들이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 방송이나 영화를 넘어서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신하균은 여전히 스크린이 아니면 보기 힘든 배우다. 그는 여전히 낯설다고 털어놨다.

“저 사실 카메라 울렁증 있어요. 연기는 주어진 대본이 있으니까 괜찮은데, 예능 같은 방송에서 제 진짜 모습으로 보이는 게 너무 어색해요.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긴 하는데 어디까지나 시청자 입장에서 재밌는 거죠. SNS를 안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요. 저에 대해선 보여드릴 게 없어요. 신하균이라는 사람은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은 ‘7호실’의 두식이로만 보셨으면 좋겠어요. 유일하게 소통하는 방법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말미, 그는 본명 대신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다는 '비범한' 소망을 덧붙이기도 했다. “저는 아직도 어릴 때 분식집 벽에 있던 제임스 딘 포스터가 기억나요.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에서 빌려보던 홍콩 영화의 배경음악도 생생하게 떠오르고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에요. 그 기억속에 남는게 배우로서 진짜 행복한거죠. 그런 작품을 많이 남겨드리고 싶고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릴 때 제일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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