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심하다 싶을 만큼 진짜 제 모습이 나갔어요. 배우로서 어느정도 신비로워야 영화를 할 수 있는데 환상을 너무 깨버린 것 같아요. 그래도 싫진 않아요. ‘삼시세끼’의 취지에 맞는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다만 예전엔 '삼시세끼'에서 나온 것처럼 대충 입고 나가면 아무도 못 알아봤는데 요즘엔 다 알아보시더라고요. 이제 꾸미고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해요. 무엇보다 놀란 건 에릭, 이서진 형님의 요리가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는 거예요. 남자들이 맛있는 요리도 뚝딱 만들고 살림도 척척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던데요. 저도 그런 남자가 되고 싶더라고요.”
기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배우들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으로 인터뷰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취재진의 정신을 쏙 빼놓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가벼운 질문도 다큐처럼 진지하게 대답하는 부류다. 굳이 나누자면 이제훈은 후자에 가깝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감성, 기복 없이 차분한 톤의 목소리가 한몫한다. 이제훈은 “그래도 요즘은 좀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느냐”며 머쓱하게 웃었다.“워낙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을 유발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제 스스로 ‘노잼’ 캐릭터라고 한 거고요. 예전엔 누가 꼭 말을 걸어야 입을 열었는데 그래도 요즘엔 낯선 사람들에게 제가 먼저 말을 걸기도 해요. ‘시그널’ 때 조진웅, 김혜수 선배님이 스태프들과 시시콜콜하게 소통하는 걸 보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그전엔 연기만 신경 쓰느라 직진했는데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주연배우로서 현장 분위기를 신나게 주도하는 게 중요하다 싶어요. 지금은 실없는 농담이라도 건네면서 같이 일하는 분들과 끊임없이 스킨십을 해요. 그런 게 나이 들수록 저를 유연하게 만들고 있고요.”
이제훈을 눈여겨본 팬이라면 그가 ‘파수꾼’(2011)으로 처음 등장했던 때의 신선한 충격을 쉽게 잊기 어렵다. 당시 실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현실적인 연기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고지전’(2011), ‘건축학개론’(2012),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 등을 통해 연기력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배우로 올라섰다. 특히 ‘박열’로 235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티켓파워까지 입증했으며 21일 개봉을 앞둔 ‘아이 캔 스피크’ 역시 올 추석 최고 흥행작으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너무 좋은 작품이라서 막 흥분되고 신나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촬영 내내 예쁜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라 행복했어요. 무엇보다 ‘아이 캔 스피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위안부 피해 할머님이 서른다섯 분이 남았는데 ‘아이 캔 스피크’로 많이 위로받으셨으면 해요. 또 제 또래 젊은 세대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둘러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