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서 9급 공무원으로 열연

따뜻한 나문희에 친할머니 정 느껴

관객 울리고 웃기는 '힐링' 영화될 듯

배우 이제훈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사실 영화를 팔짱 끼고 보는 편이에요. 연기나 앙상블은 물론이고 촬영기법, 음악, 편집점 등을 세세하게 뜯어보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희한하게 기술적인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지난 6월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로 통쾌함을 안겼던 그가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로 또 한 번 일본 저격수로 나선다. ‘아이 캔 스피크’는 2007년 2월 미국 하원의원 공개 청문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영화화한 휴먼 코미디물. 이제훈은 9급 공무원 박민재로 분해 깐깐하지만 속정 깊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박열’ 때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완전히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전까진 배우니까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죠.”

극 중 원칙주의 공무원 민재는 8000건이 넘는 민원으로 구청 블랙리스트 1번에 오른 옥분(나문희)과 구청 발령 첫날부터 부딪힌다. 옥분은 어딜 가나 ‘트러블 메이커’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 일쑤인 요주의 인물. 하지만 손주뻘인 민재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앙숙으로 만난 두 사람이 으르렁 거리던 어느 날, 옥분이 민재에게 영어과외를 부탁하면서 둘의 관계는 한층 가까워지진다. 이어 옥분의 과거, 필사적으로 영어를 배우려 하는 이유 등 그를 둘러싼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민재와 옥분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제훈과 나문희는 41살 나이차이를 뛰어넘는 코믹한 호흡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실제로 조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나문희 선생님이 친할머니 같았어요. 어르신인데도 어렵기보다 편안했어요. 보통 배우들은 연기할 때와 평상시 모습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선생님은 그게 없어요. ‘나 인생 다 알아’, ‘내 말이 다 맞아’ 이런 게 없고 아직도 감정에 솔직하고 소녀 같으세요. 그런 선생님을 보면서 저도 덩달아 마음이 편해지니까 연기도 계산해서 하기보다 선생님의 액션을 보고 물 흐르듯 리액션할 때가 많았죠. 촬영장에서 자양강장제 몇 번 얻어먹었더니 촬영이 다 끝났더라고요.”

이제훈은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 여배우로서의 나문희의 매력에 반해버렸다. 특히 이제훈은 나문희의 에너지에 감탄했다며 길고 어려운 영어대사를 깔끔하고 힘있게 소화한 후반부 청문회 장면을 베스트 명장면으로 꼽았다. “나문희 선생님이 연기하기 전에 성우를 하셨대요. 예전에 외화 더빙 경험도 있으셔서 그런지 기본적인 감이 좋으셨던 것 같아요. 저도 ‘박열’ 때 일본어 대사를 해봐서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이해하거든요. 근데 선생님 남편 분이 영어 교수님이시고, 또 자녀분들이 미국에 계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문제였어요. 민재는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잘하는 캐릭터인데 저는 그냥 읽을 수 있는 정도라서. 처음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처럼 있어보이는 느낌을 주려고 했는데 결국 제 스타일대로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더라고요. 제 실제 영어 실력이요? 대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토익시험을 본 적이 있는데 높은 성적은 아니었어요. 950점? 어휴 턱도 없죠.(웃음)”

사진=리틀빅픽처스
특히 이제훈은 청문회 신 중, 영어대사 ‘하우 아 유?’(How are you?)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 초반 단순한 안부인사로 등장하는 ‘하우 아 유?’(How are you?)는 마지막엔 뜻밖의 순간에 터져나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이제훈 역시 제일 중요한 대사라고 언급했다.

“너무 짜릿해서 저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지를 뻔 했어요. 내가 워싱턴까지 촬영하러 간 이유는 오로지 이 대사 한 마디를 위한 거구나 싶었어요. 그 부분이 인상적인 게 청문회 장면은 감정이 북받치지만, 일본 측 대표들한테 맞받아칠 때는 속이 시원하잖아요. 근데 또 반전이 이어지면서 다시 찡해지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계속 감정을 뒤흔드는 게 ‘아이 캔 스피크’의 매력인 듯 해요. 김현석 감독님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스토리의 골격이나 톤 조절, 유머코드까지 잘 치고 빠지면서 아주 객석을 조련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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