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 '장산범'서 아이 잃은 엄마 역 열연

염정아, 사진=NEW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현명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영화 ‘장산범’(감독 허정, 제작 스튜디오 드림캡처)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여배우 특유의 도도함과 두 아이 엄마다운 편안함을 모두 갖춘 ‘천생 여배우’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여배우상과는 차원이 다른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게 뭔지 아는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멋진 선배’였다.

2014년 영화 ‘카트’ 이후 염정아의 3년 만의 스크린 컴백작인 ‘장산범’은 가장 익숙하면서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리는, 전설 속의 괴수 장산범을 소재로 공포를 유발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염정아는 5년 전 아들이 실종된 후 신경쇠약 직전에 몰린 주부 희연 역을 맡아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 ‘장산범’ 개봉을 앞두고 홍보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염정아의 현재 내면 속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살펴봤다.

#40대 여배우=대한민국에서 40대 여배우로 산다는 건 매우 힘든 일. 특히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염정아 같은 ‘워킹맘’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만한 작품을 만나는 기회는 극히 한정돼 있다. 그러기에 ‘장산범’은 염정아에게 정말 소중한 작품이다. 특히 2004년 ‘여선생 VS 여제자’에서 호흡을 맞춘 김미희 대표가 제작을 맡아 그 의미가 남다르다.

“김미희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주기 1년 전부터 이런 영화를 만들 거고 책을 줄 거라고 이야기를 하셔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기대만큼 완성도가 높아 정말 기뻤어요. 영화의 중심을 흐르는 정서가 모성인데 두 아이 엄마인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시나리오까지 쓴 허정 감독이 희연의 이야기를 정말 잘 만들어줘 연기할 맛이 났죠. 최선을 다했는데 관객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더군다나 여름 흥행대전에 개봉해 경쟁작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정말 홍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한테 기회를 다시 주신 김미희 대표님을 위해서라도, 충무로에서 제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염정아, 사진=NEW
#공포의 여왕=2003년 개봉된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은 염정아가 영화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해준 출세작. 14년 만에 출연한 공포물 ‘장산범’은 영화의 결이 ‘장화홍련’과 다르지만 염정아 특유의 예민하면서도 날선 이미지를 다시 볼 수 있어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강한 인상과 달리 염정아는 사실 공포 영화를 못 보는 여린 심성의 소유자다.

“제가 보기와 달리 겁이 엄청 많아요. 공포 영화를 보면 그 후유증이 엄청 커요. 일상 생활을 하다가 계속 무서운 장면이 생각이 나 힘들어 하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관객들에게 공포를 주는 연기를 할 때는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관객들이 무서워할 걸 예상하고 연기하니 재미가 있더라고요.(웃음)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예민한 사람은 아니에요. 털털한 편이죠. 그러나 연기는 본인을 투영하는 거잖아요. 예민하고 날선 연기가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걸 보면 예민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워킹맘=염정아는 결혼 후 11년 동안 두 아이를 낳고 키워야 했기에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기에 왕성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남편도 적극적인 외조를 약속했다. 그러나 의욕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충무로에서 여배우들이 활동할 만한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다. 촬영을 준비했던 ‘도청’의 제작이 후배 김우빈의 투병 때문에 무기한 연기돼 염정아는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못했다. 염정아는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님들 많죠. 요즘 영화를 정말 잘 만드는 젊은 감독님들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그중 제일 좋아하는 감독님은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님이요. 꼭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장산범’을 함께한 허정 감독과도 꼭 다시 한 번 일해보고 싶어요. 정말 재능 넘치는 감독이기에 다음 작품이 기대돼요. 그리고 박찬욱 감독님과도 꼭 다시 일해보고 싶어요. ‘쓰리 몬스터’ 때 장편을 꼭 다시 한번 하자고 하셨는데 약속을 지키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염정아, 사진=NEW
#선배=염정아는 지난 봄 가장 존경했던 선배 김영애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연기자로서 자극을 주는 멘토였고 인간적으로 의지가 되는 선배였기에 그 허전함은 여전하다. 김영애의 이야기를 꺼내자 눈시울 붉어진 염정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불태웠던 고인의 연기투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아직도 돌아가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네요. 정말 연기를 편하게 생각하실 때도 됐는데 항상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셨어요. 그 열정은 도무지 꺼질지 모르셨어요. 늘 ‘어떻게하면 더 잘하는 거니?’ ‘쟤는 왜 저렇게 잘하니’라고 물으셨죠. 선생님을 보며 정말 많이 배웠고 영향을 받았어요.”

이제 벌써 데뷔 27년차. 염정아도 이제 선배님을 넘어 ‘선생님’으로 불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묻자 진심이 가득 묻어 나오는 조언을 남겼다.

“’선생님’이라니요? 낭랑 18세인 김새론은 저한테 언니라고 불러요.(웃음) 저도 데뷔작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했을 때 ‘발연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걸 극복하는 건 많은 작품을 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20대 초반 때 정말 쉬지 않고 불러주시면 감사하다며 달려가 다 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 결과가 좋든 나쁘든 연기자로서 자산이 쌓이더라고요. 후배들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걸 길게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길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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