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류승완 감독은 영화 '군함도'를 만들게 된 계기로 군함도의 실제 항공 사진을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사진 한 장으로 영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귀에 인이 박히도록 배우고 들어왔고 간접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대상으로한 일제의 악행과 수탈들.

영화 '군함도'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귀로 듣고 머리로 알았다고 생각했던 그 참혹한 강제 징용 등 수난의 역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실제 당시의 조선인들이 겪었을 고통은 얼마나 처참했을지 그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영화 도입부 해저 1,000미터 깊이에 위치한 갱도의 끝 막장에서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내하며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채 12시간 이상을 혹사 당하는 10대 초반 소년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1940년대 군함도 지하갱도로 강제 소환 당한것 같은 참혹함에 몸서리쳐진다.

1945년 일제 강점기 경성 반도호텔의 악단장 이강옥(황정민)은 일본 고위층의 아내와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하나밖에 없는 딸 이소희(김수안)와 함께 군함도 행 배에 오르게 된다.

두 사람 외에도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최칠성(소지섭)과 일제 치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온 말년(이정현) 등 조선인들이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채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 행 배에 몸을 싣는다.

그들이 함께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하고 있던 지옥섬 군함도였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조선인 남자들은 해저 1,000미터 깊이의 막장 속에서 매일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갖은 노역을 감당해야 하고 여자들은 유곽으로 끌려간다.

강옥은 일본인 관리들을 위해 연주를 하고 뇌물을 건네며 그들의 비위를 맞춰 딸 소희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를 쓰고 칠성은 노무반장의 자리를 차지해 조선 노동자들의 관리를 맡으려 한다. 말년은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소희와 어린 조선 여인들을 보호하려 하고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박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인 윤학철(이경영)의 구출 작전을 지시 받고 군함도에 잠입한다.

일본 전역에 미국의 폭격이 시작되고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군함도에서 조선인에게 저지른 모든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폭파하려고 하고 조선인들 중 부역자가 있음을 눈치 챈 무영은, 강옥, 칠성, 말년을 비롯한 조선인 모두를 데리고 군함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군함도'의 제작비는 220억 원에 제작 기간만 3년 넘게 걸렸다. 최동훈, 윤제균과 더불어 국내 3대 흥행 감독으로 불리는 류승완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조차도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영화가 류승완의 의지와 상상력이 기초가 되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인 일제강점기를 주요 소재로 다룬 만큼 영화가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강조해서도 안되고 실화의 무게에만 눌려 다큐멘터리적으로만 흘러도 안된다는 이중고를 안고 류승완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스릴 넘치는 대탈출극을 완성시켰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대규모 스펙터클이 벅차게 다가온다.

이모개 촬영감독, 이성환 조명감독, 이후경 미술감독, 정두홍 무술감독,조상경 의상감독, 방준석 음악감독 등 국내 최고의 제작진들은 강원도 춘천의 13만 2천여 제곱미터 부지에 6만 6천 제곱미터 규모의 실제 군함도 크기의 2/3에 달하는 초대형 세트를 지었다. 해당 세트에는 군함도의 상징이 된 지옥계단을 비롯해 탄광 내외부, 조선인과 일본인의 거주구역과 유곽 등 군함도 내 각 공간을 섬세하게 재현돼 영화의 주연 배우들 못지 않은 또 다른 주연배우를 탄생시켰다.

액션 영화 연출의 달인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해 현시대에 대한 시의성과 사회 비판을 꾸준히 담으면서도 상업 영화의 영역에서의 재미와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왔던 류승완 감독.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 보면 늘 자신의 능력이 최대치인 분야에 만족하지 않고 몇 번이고 넘어져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향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역사의 수면 아래에 있던 군함도의 실체와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들의 참상을 눈 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을 넘어서 실제하지 않았던 400여명 조선인의 대 탈출극이라는 상상의 영역을 화면에 구현해낸 그의 노력에 역사는 더디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답할 것이다.

류승완 감독 본인이 말했듯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방식이 될수도, 과거 하시마에서 강제 노역한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사과하며 역사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발표했지만 조선인에 대해서는 사과도, 보상도 여전히 없는 고압적인 일본의 자세 변화가 될수도 있겠다.

영화 '군함도'가 일본으로부터 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끌어낼 수 있는 도화선 혹은 기폭제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 하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류승완의 부름에 한달음에 응하며 관객들을 1945년 당시로 안내해 132분의 폭주기관차에 오르게 하는 건 단연 황정민, 김수안,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등 배우들 몫이다.

류승완의 페르소나이자 '군함도'의 기획 단계부터 영화화를 함께 의논하며 힘을 실었던 황정민은 한국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든든하고 우직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거대한 액션신이나 기가 막히게 몸서리쳐지는 감정신이 없어도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1940년대에도 지금 나와 똑같이 심장이 뛰었던 보통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공기가 스미듯 자연스러운 연기로 보여준다.

독립투사를 구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했다가 400여명 조선인의 대탈출극을 앞장 서서 이끌게 되는 박무영 역의 송중기는 결기에 찬 눈 빛 연기와 절제된 액션 연기로 선배 배우들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태양의 후예'로 안방극장을 휩쓴 그의 스크린 장악력이 예사롭지 않다.

조선 최고의 건달 최칠성 역의 소지섭이 펼치는 포효하는 듯한 훈도시 차림의 액션신은 두고두고 회자될 역동적 장면으로 탄생됐다.

영화에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면 류승완 감독이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를 너무 자제했다는 점이다. 황정민-김수안 부녀와 소지섭-이정현의 동지애, 송중기의 용맹함에 고른 시선을 주다 보니 관객들의 감정선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메인 테마가 흐트러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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