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80년 5월 서울의 한 거리에서 1973년 식 녹색 브리사 택시를 몰며 당대의 히트곡 단발머리를 구슬피 부르는 김만섭(송강호)이 데모가 한창인 곳에서 시위대와 전경들 틈에 섞이게 되는 것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는 시작된다.

김만섭은 "학생은 데모를 할 게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믿는 평범한 택시 운전사다. 오래 전 아내를 잃고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택시 한 대를 겨우 장만해 11살 딸을 홀로 키우는 아빠다.

동료 택시운전사의 집에 월세로 살고 있는 그는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통금이 끊기기 전까지 돌아오면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다른 동료 기사의 말에 몰래 그 손님을 자신의 차에 태운다.

김만섭의 택시에 오르게 된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피터/토마스 크레취만)는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가야 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일본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지내고 있던 그는 당시 광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 신분을 숨긴 채 한국을 찾았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익힌 짧은 영어로 독일기자 피터에게 계속해서 농담 섞인 말을 거는 만섭과 어떻게 해서든 광주에 빨리 당도하고 싶은 피터는 티격태격하는 사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지나 바리케이트로 겹겹이 에워싸인 광주에 도달하고 천지사방으로부터 고립된 듯 광주 거리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전운과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광주 거리에 도착한 두 사람은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이 꿈이라 대학교에 갔다는 청년 구재식(류준열)의 안내로 취재에 나서고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껴 광주를 홀로 떠나려던 김만섭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간 막둥이에게 좀 데려다 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광주에 머무르게 된다.

낡은 택시가 갑자기 고장나는 바람에 광주의 택시 운전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광주에 머무르는 사이 만섭은 피터와 동행하며 광주 시민들의 군인들에게 무참히 폭행 당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서울의 월세방에 딸을 혼자 두고온 만섭은 통금 전에 돌아가려 하지만 고장 난 차 때문에 하룻밤을 광주의 택시 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의 집에서 묵게 되고 함께 소풍가기로 한 딸 생각에 결국 혼자서 광주를 빠져 나온 김만섭은 군인들의 각목과 총탄이 언제고 자신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놓여난 뒤에야 자신이 엄청난 직무유기를 했음을 깨닫는다. 택시운전사로서 손님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만섭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순천에서 광주로 택시를 돌리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흘러간다.

'택시운전사'의 가장 큰 특징은 독일인 기자와 서울에서 온 택시 운전사 두 명의 관찰자 시점을 통해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그린다는 데 있다. 장훈 감독은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것에 이보다 으뜸일 수 없는 송강호의 시선을 따라가게 해놓고도 광주의 참상을 실제처럼 보여주는데 인색하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분노감의 폭발 혹은 치밀어 오르는 슬픔으로 감정을 정화시킨채 극장문을 나서는 걸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그 흔한 줌인과 클로즈업 한 번을 하지 않고 왜 군인들에게 총을 맞고 매질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날의 광주 시민들 속으로 무장해제된 관객들을 던져 놓는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유일하게 광주 문제를 보도해 줄 수 있는 피터 기자를 서울로 데려가야 한다는 사명감과 딸에게 유일하게 남은 부모인 자신의 목숨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여러 차례 서게 되는 김만섭처럼 현실의 삶으로 돌아간 관객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 것이냐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택시운전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실제 1980년 5월 광주에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힌츠페터 기자는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김만섭의 실존 인물인 김사복 씨와 광주시민들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 말미 삽입된 인터뷰 영상에서 힌츠페터는 김사복 씨를 향한 그리움을 절절히 밝히기도 했다.

힌츠페터에게 전한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실명인지 가명인지 여전히 알길 없는 그는 왜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을까. 장훈 감독은 영화 말미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여전히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김만섭이 광화문으로 향하는 손님을 태우는 것에서 연출 의도를 담았다.

사건이 발생한지 37년이 흐른 지금에도 죽은 자는 있되 죽인 자는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단식 현장 옆에서 햄버거 먹기 대회를 진행하는가 하면, 그 옛날 권력 옆에서 목숨 부지하며 높은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이 사회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시민들을 향한 조롱어린 언사를 내뱉는 광경이 2017년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보다 더 민주화된 세상이 어디 있겠냐고 안심할 때 1980년 광주 시민들에게 총을 겨눴던 세력들은 여전히 '광장의 시민들에게 발포한 적이 없다' '우리에겐 죄가 없었노라' '광주에서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북한 특수부대였다"며 37년 전 모두의 눈과 귀를 막고 펼치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또 다른 김사복씨들은 묵묵히 힘겨운 일상을 지나고 있다. 지금 비록 이름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 놓여진다면 그 김사복 씨들은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마음 밑바닥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80년 5월 광주의 김만섭이 그랬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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