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포스터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전쟁영화에서 혈흔이 낭자한 시체, 치열한 전투만이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피 한 방울 없이도 참혹한 드라마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 ‘덩케르크’(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군,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거느린 톰 하디와 케네스 브래너, 킬리언 머피 등이 출연했다. 무엇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최초의 실화 배경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다크나이트’(152분), ‘인터스텔라’(169분) 등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106분)이지만 ‘짧지만 강력하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몰입감은 강력하다.

‘덩케르크’의 특징은 3가지 시간대가 교차되며 진행된다는 점이다. 해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을 오가며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이들의 시선으로 덩케르크 작전을 조명한다. 전작 ‘인터스텔라’ 등을 통해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장기는 실화의 시간을 재구성한 ‘덩케르크’에서도 발휘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리얼리즘은 최고조에 달한다. 라이브 컨퍼런스를 통해 놀란 감독이 ‘아이맥스’로 관람할 것을 추천한 이유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현장감을 위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1,300여 명의 보조 출연자들과 실제 덩케르크 작전에 참여한 민간 선박 20여 척,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동원했다. 군인들이 소지한 총기 하나까지 최대한 실제 사용된 것들을 조달하고자 애썼고, 블루 스크린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덕분에 관객은 스핏파이어의 조종석에 앉아 격추 당하는 긴장감을 느끼거나, 어뢰에 타격을 입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군인의 가쁜 호흡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영국 공군과 독일 공군이 하늘에서 맞붙는 공중전도 실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리얼하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아이맥스와 6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덕분에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공포가 연속된다.

사진='덩케르크' 스틸컷
여기엔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의 OST 역시 큰 몫을 차지한다. ‘덩케르크’는 인물들의 대사량을 극도로 자제한 대신 무서울 만큼 짙은 적막함이나 폭발적인 배경음악으로 빈틈을 메웠다. 이는 급박한 전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다. 특히 시계초침이 똑딱거리는 소리, 빗발치는 총성을 연상케 하는 날카롭고 웅장한 음악들이 참혹한 광경 속 인물들의 드라마와 어우러져 서스펜스를 더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전쟁영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이유는 중반 이후쯤 완벽히 이해된다. 물론 우리가 보통 전쟁영화에 기대하는 특유의 기조는 ‘덩케르크’도 예외는 아니다. 전장 한 가운데 선 군인들의 갖가지 표정과 귓가를 찌르는 폭격음 등 인간 존엄성이 철저히 무너진 상황, 그 와중에 탄생하는 극적인 휴머니즘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덩케르크’는 역사적 사건의 나열보다는 생존과 화합의 메시지에 더 힘을 줬다. 이 때문에 영화 후반부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라며 고개를 떨구는 군인에게 “그거면 됐다”고 담담히 말하는 노인의 모습을 자꾸 곱씹게된다. 오는 7월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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