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여타 상업영화처럼 시원한 볼거리는 없어요. 하지만 박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 시대에 대해 다시금 재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28일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의 신작영화 '박열'은 여러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는 이유는 그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의 삶이 어땠을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했던 신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묵직함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메가폰을 잡은 이 감독은 "역사적 인물을 영화화하는 작업은 너무나 어렵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박열’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영화일까?이 영화를 보는 관점을 어디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멜로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보인다. 멜로라는 단어는 부정확하지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이야기로 보는 것도 하나의 관점이다. 극중 두 사람이 동거를 하면서 ‘동거 서약’을 하는데 그 내용이 ‘첫째,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활동중에는 (가네코 후미코를) 여성으로 보지 않는다. 셋째, 한 사람이라도 권력과 손잡으면 그만둔다’이다. 어찌 보면 페미니즘의 정점에 있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된 사상인 ‘아나키즘’이 일반 관객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겠다우리나라에는 아나키즘도 사회주의도 제대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서양의 이념을 독립운동을 위해 가져왔다. 반면 박열은 일본 아나키즘의 본류에 있는 인물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지만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19세기 아나키스트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권력 쟁취를 내세웠지만 아나키스트들은 그들이 권력이 되는 것은 부정한다.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그 시대 인물들도 권력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 아나키즘이 현대 사회에도 여러 모습으로 분화됐나?아나키즘은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에 흡수되면서 여러 이념으로 분화됐는데 환경운동, 동물보호운동, 페미니즘이 대표적이다. 핵 반대, 원자력발전소 반대나 동물 구조 운동 등이 모두 아나키즘에서 분화된 운동이다.

이준익 감독.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동주’에서 가려져 있던 윤동주의 모습을 불러냈듯 ‘박열’도 묻혀있던 인물을 소환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박열’은 한 조선인이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 사형을 쟁취한 이야기다. 폭탄을 던지지도 않았고 모의를 했다는 것만으로 박열은 대역죄인이 됐다. 아주 이상하다. 당시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조선인 66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을 무마하려 박열을 재판정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열은 그것을 역이용해서 사형까지 유도해낸 인물이다.

▲ 묻혀진 독립운동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박열은 20년 전 영화 ‘아나키스트’를 촬영하면서 처음 알게 돼 큰 매력을 느꼈던 인물이다. 많은 독립운동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 작품을 보면 철저한 고증에 눈길이 간다.

이 영화는 일본인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 평전에 90% 근거한 작품이다. 다른 자료들은 아사히, 산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에 협조를 구했다. 고증을 열심히 맞춘 이유는 일본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신빙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고증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과 부당성을 감정을 빼고 이성과 논리를 통해 돌파해내는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제국주의 반대 운동을 이끈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준익 감독.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실제로 박열과 가네코의 선택과 신념이 어떠했는가를 선명하게 읽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스무 살, 스물 두 살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이념에 무장돼있을수 있을까란 질문의 답은 시대적 요인인 것 같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며 20세기 초반의 이념에 관한 이야기가 과연 요즘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 이준익 감독의 역사 속 인물에 대한 발굴 작업은 계속될까

역사적 고증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영화화한다는 게 사실은 되게 힘들다. 탈진했다.(웃음)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인물 중심의 영화를 찍게 된다. 인물이 목표가 아니라 그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보는 얘기를 하고 싶다.

▲ ‘박열’은 사실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염려와 기대가 섞여 있다. 상업영화처럼 시원한 볼거리는 없다. 다만 영화 내용의 가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몰랐던 인물에 대해 여러 담론을 이어가면 좋겠다.

이준익 감독.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준익 감독.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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