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특별시민' 포스터
최민식, 곽도원, 심은경 주연의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은 대진운만 놓고 보자면 그 어떤 영화들보다 불행하다. 전세계 유래 없을 국정농단과 그로 인한 대통령 탄핵, 그리고 2주를 앞둔 대통령선거까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다이내믹하고 극단의 감정을 달리며 어떤 코미디보다 웃기고 어떤 비극보다 슬플 수 있는 2017년 대한민국의 현재라는 강력한 경쟁 상대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밤이면 대통령 TV토론마저 연일 생중계 중이다.

그렇다고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꺾는 것은 이르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 매번 기대를 뛰어 넘었던 최민식과 또 그에 견줘 뒤지지 않을 카리스마와 묵직함으로 무장한 곽도원이 앞서서 영화를 이끌고 '모비딕' 박인제 감독이 준비한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다.

현 서울시장이자 서울시장 선거 후보인 변종구 (최민식)는 선거를 무사히 치러 3선 시장에 당선된 후 대권 후보로까지 도전할 마음을 먹은 야심가이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거쳐 국회의원에 이어 서울시장이 된 것으로 유추되는 그는 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시절을 선거 유세에서 자랑스럽게 들먹이지만 사실은 뼛속까지 권력욕으로 가득 찬 노회한 정치인이다.

검사 출신이자 선거 공작의 일인자인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권혁수)가 앞장 서서 변종구의 선거 캠프를 지휘하고 있고, 변종구를 존경하지만 그의 현 서울 시정에 대해 독설 가득한 비판도 할 줄 아는 젊은 광고 전문가 박경(심은경)까지 그의 캠프에 가세한다.

변종구 캠프에 맞서 강력한 상대 후보인 양진주(라미란) 후보가 인권 변호사 출신의 깨끗한 이미지를 앞세워 높은 지지율로 변종구를 강하게 압박해 온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그의 지시가 곧 법처럼 행해지는 변 캠프에서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박경을 비롯한 선거운동원들에게 변종구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총성만 울리지 않을 뿐 합법적으로 싸울수 있는 유일한 전쟁터인 선거전에서 양쪽 후보들은 서로의 약점을 캐내고 상대 후보를 헐뜯고 깍아내리기 위해 각종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선거전이 한창 물이 오를 무렵 서울 일대에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해 선거의 또 다른 이슈로 떠오르는가 하면, 변종구의 아내(서이숙)이 경매에서 고가의 그림을 구매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인기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와 '웨스트 윙'을 연상시키는 음모와 이권투구가 난무하는 사이 변종구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며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국내 영화 역사상 본격적으로 다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선거 과정 자체를 영화의 본격 줄거리로 가져왔다는 것은 '특별시민'의 대단한 도전으로 느껴진다. 총이나 칼, 또는 자동차 추격신 같이 눈을 호강시킬 수 있는 스펙타클한 액션이 처음부터 배제돼야 하기에 영화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인간 군상 그 자체에 집중해 관객들을 설득시켜야만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선인인지 악인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가는 변종구라는 인물을, 정치에 도전했을 초기에는 분명 그에게도 정치에 대한 이상향과 국민이나 시민을 향한 충심이 있었을 법한 한 정치인이 권력을 추구하며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고기 씹는 표정 하나만으로도 보는 이가 몸서리치게 느껴질 법하게 표현해낸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또 한 번의 변신에 있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최민식은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의 으스스한 악마성과 '신세계' 강과장의 독한 피로감, '명량' 이순신의 결기가 묘하게 중첩되고 또 파열을 일으키며 변종구를 오간다.

'곡성'과 '아수라'에서 두 차례 연달아 관객들의 뒷목에 소름을 안겼던 곽도원은 '특별시민'에서 정치 영화 특유의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일등공신이다.

심은경은 '부산행'과 '조작된 도시'에 이어 '특별시민'에서도 연달아 색다른 변신에 성공하면서 배우의 길에 독기를 품은 이 여배우의 앞길이 꽃길로 가득하기를 절로 응원하도록 만든다.

'특별시민'이 본격 정치 영화의 서막을 제대로 열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다만 우연히 발생하는 두 번의 큰 사건은 영화의 많은 미덕에도 쉬운 선택으로 여겨진다. 대통령 선거가 아닌 서울시장 선거로 메인 이벤트를 축소 시킨 것도 작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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