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에타’(Julieta) ★★★1/2(5개 만점)

내용과 색깔이 모두 기이할 정도로 다채로운 작품을 만드는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20번째 영화로 그의 다른 작품인 ‘볼베르’와 ‘토크 투 허’처럼 여성이 주인공인 가족 멜로드라마이다. 운명과 상심, 죄의식과 기억에 관한 명상적인 작품으로 시간대를 오락가락 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기억에서 소멸시키려고 하는 사람과 이에 역주행하는 사람의 상반된 감정이 세월을 거쳐 신비한 기운에 안겨 이야기 되는데 약간 히치콕 스타일을 따른 장면도 있다. 플롯이 질서 정연히 이어지지 않아 다소 산만하고 알모도바르의 뛰어난 다른 작품보다 처지긴 하나 흥미 있는 작품이다.

눈부신 것은 주인공 줄리에타의 젊었을 때와 나이 먹었을 때의 역을 각기 맡은 두 배우의 연기와 적색과 청색 그리고 황금색 등으로 채색된 색채. 색깔은 작중 인물과 내용을 불타는 듯이 대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디자인과 소품 등까지 작품의 내성을 감지시킨다.

마드리드에 사는 중년의 여류문학가 줄리에타(엠마 수아레스)는 포르투갈로 주거를 옮기게 위해 애인 로렌조(다리오 그란디네티)와 함께 짐을 싼다. 잠깐 밖에 나간 줄리에타가 자기 딸 아니타의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서 줄리에타는 이사와 로렌조를 다 포기하고 불확실의 미로로 빠져든다.

그리고 줄리에타의 과거가 회상된다. 짧은 금발의 젊고 아름다운 줄리에타(아드리아나 우가르테)가 야간열차를 타고 가다가 열차 안에서 정체가 다소 불분명한 늠름하고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소안(다니엘 그라오)을 만나 달리는 열차 속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눈다. 이어 둘은 소안이 사는 해안 마을의 집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그리고 줄리에타는 딸 아니타를 낳는다. 이어 죽음이라는 비극이 일어나면서 모녀는 깊은 슬픔에 시달리는데 비극과 슬픔이 둘 사이를 점차 멀리 떼어 놓는다. 그리고 아니타(블랑카 파레스)는 18세가 되면서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안 남기고 집을 나가버린다.

줄리에타는 그 뒤로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나 찾지 못해 심신이 피폐해진다. 줄리에타가 딸의 옛 친구를 만나 뒤 이사와 애인마저 포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은 거의 치명적인 슬픔마저 치유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상처를 남기는데 이런 삶의 잔인함에 지쳐 후줄근해진 중년의 줄리에타의 모습을 수아레스가 깊이와 함량을 갖춰 연기한다. 이에 반해 삶의 쾌락을 탐하는 젊은 줄리에타를 우가르테가 생동감 넘치게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봉하고 무언으로 감추려는 여인의 드라마로 스페인어 원제는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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