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도시'로 생애 첫 스크린 데뷔

"‘조작된 도시’…영화보다 더한 현실에 기분 묘했죠"

권유 캐릭터로 '액션 베테랑' 별명 붙어

로코·스릴러 새로운 장르 도전해보고파

배우 지창욱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요즘엔 동네 한증막에 자주 가요. 가서 따뜻하게 몸을 데우면 그렇게 편하고 좋더라고요. 굳이 얼굴 가릴 필요 있나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산답니다.”

2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지창욱은 생애 첫 스크린 데뷔작 ‘조작된 도시’ 개봉을 앞두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요 며칠 자다가도 벌떡 깰 정도로 긴장된다면서도 연신 생글생글 웃으며 한증막의 매력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났다. ‘조작된 도시’는 그의 전작 ‘무사 백동수’, ‘힐러’, ‘더 케이투’ 이후 또 한 번의 액션물, 지창욱은 “느낌이 좋다”고 힘줘 말했다.

“단 한 번도 액션이라서 선택한 적은 없어요. 다 각자의 매력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액션 장르로 묶인 거죠. 특히 ‘조작된 도시’는 범죄액션이라는 세부장르부터 게임을 소재로 한 요소들이 신선해서 확 끌렸죠. 박광현 감독님만의 독특한 영화 색깔에 홀린 것 같아요. 어느 때보다 연출가의 힘을 많이 믿고 의지한 작품이에요.”

‘조작된 도시’는 단 3분 16초만에 살인범으로 조작된 남자가 게임 멤버들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며 짜릿한 반격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극 중 지창욱이 맡은 역할은 무일푼 백수 권유로, 그는 어느 날 미성년자 강간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게임 멤버들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며 거대 권력에 맞서게 된다. 지창욱은 8차선 대규모 카체이싱, 와이어 액션, 맨몸 격투신, 총격신 등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내며 다시 한 번 액션배우로서의 진가를 증명했다. 앞서 전작들을 통해 쌓은 경험 덕분에 이제 액션은 그에게 가장 자신 있는 장르 중 하나다. 이같은 '액션 베테랑' 지창욱을 당황하게 만든 건 ‘상상액션’이었다. “아무래도 만화적인 요소들이 있다보니 CG가 사용되거나, 크로마키판 앞에서 상상만으로 연기해야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교도소 안에서 돌아가신 엄마의 환상을 본다거나, 쌀알을 던져서 소리를 감지해 적들과 싸우는 액션신 같은 것들은 그래픽이 가미된 장면들이라, 연기를 하면서도 스크린에 어떻게 그려질지 굉장히 궁금했죠. 생각보다 재밌고 신선했어요.”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특히 지창욱은 극 중 캐릭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제가 만약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다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했을 것 같아요. 권유는 교도소에서도 실세에게 굴복하지 않지만, 어휴 그렇게 문신 있고 무서운 사람들이랑 실제로 어떻게 싸우겠어요. 그래서 더 권유라는 인물을 응원하게 됐어요. 누구나 현실에서 쉽게 하지 못하는 걸 영화적으로 대신 표현해주는 거니까 연기하면서도 묘하게 통쾌했죠. 제가 권유를 연기하며 느꼈던 그런 카타르시스가 관객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해요.”

무엇보다 영화 초반, PC방에서 게임 폐인으로 사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번쩍이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컵라면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현실감 가득한 생활연기를 보여준 것. “PC방이 낯설지 않았어요. 실제로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많이 갔죠. 그 때 스타크래프트, FPS, 서든어택 이런 게임들이 엄청 유행해서 저도 푹 빠져 있었어요. 영화 속 권유랑 똑같아요. 지금도 가끔 PC방에 갈 때는 늘어진 티셔츠에 세수도 안하고 가요. 거기서 먹는 컵라면에 단무지가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지창욱에게 ‘조작된 도시’는 외로운 촬영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홀로 PC방에서 게임만 하다 홀로 교도소에 끌려갔고, 독방에 갇히기도 하고 늘 도망다녀야 했다. 이에 안재홍, 심은경 등 동료들을 촬영장에서 처음 본 날, 아이처럼 신났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심은경은 앞서 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지창욱과 어색한 사이”라고 밝혀 이목을 끌었던 바 있다. 지창욱은 이에 대해 설명했다. “친해질 시간이 많이 없었죠. 극중에서도 게임으로 만나는 사이고, 실제로 붙는 신은 몇 개 없었어요. 사실 처음에 심은경 씨가 워낙 말수도 적고 차분하셔서 ‘작품에 몰입하시는 중인가’ 싶었죠. 근데 알고 보니 그냥 저처럼 낯을 많이 가리는 분이셨어요. 심은경 씨, 안재홍 씨, 다들 영화 속에 나오는 모습이랑 똑같을 정도로 재밌는 분들이었는데 더 친해지지 못해서 아쉬워요.”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사실 ‘조작된 도시’는 2015년 촬영이 마무리된 작품이다. 하지만 ‘더 케이투’ 종영 이후로 개봉일이 결정되면서, 연달아 선보인 남성적인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배우로서 고민이 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창욱의 의견은 달랐다.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어요. 명확히 다른 작품이고, 이게 끝이 아니니까요. 매번 새로운 걸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무리고, 지금 잘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리는데 집중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더 케이투’를 찍으면서 당분간 액션은 좀 쉬자고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앞으론 안 해본 걸 도전해보고 싶어요. 팬들이 원하는 로맨틱 코미디 혹은 스릴러에서의 악역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려면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좀 더 경험이 많았더라면 좀 더 괜찮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늘 고민스럽거든요. 근데 또 서툰 때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이 많이 알고 능숙해지는 순간 나태해지더라고요. 지금보다 어렸을 때, 연기적으로 훨씬 서툴고 무식했지만 더 순수했던 그 때가 요즘 가끔 그리워요.”

박광현 감독은 이미 3년 전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공교롭게도 최근 시국과 맞아떨어진 영화가 됐다. 최근 뉴스를 장악한 사건들에 비춰 봐도 ‘조작된 도시’라는 제목부터 관객들에겐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창욱은 “우리는 2015년에 촬영했는데 시국과 맞아 떨어진 게 있긴 있더라. 대중들이 봤을 때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 보통 현실을 쫓아가는 영화를 만드는데 현실이 영화를 따라온 것 같고, 기분이 묘했다”며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을 악용하는 사람들과 맞서는 내용이지만 직접적인 것보다 상징적인 표현이 많아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지창욱은 ‘밀당’이 확실한 스타일이다. 시종일관 여유롭게 농담을 건네며 사람을 홀리다가도, 진지할 때는 한 없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종의 반전 매력을 가진 배우다. 인터뷰 말미, 사석에서 지인들과 나눈 대화라며 그가 꺼낸 주제에선 인간적인 면모마저 엿보였다. “얼마 전에 (김)래원이 형이랑 좋은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을 했어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일까? 진짜 나쁜 사람인데 연기를 잘 한다면 그는 좋은 배우일까?’라는 주제였죠. 결국 답은 못 내렸어요. 사람이 좋다고 꼭 좋은 배우는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연기를 못하는 사람을 배우로서 좋다고 할 수 있나. 반면에 인간적으로 최악인데 연기를 너무 잘한다면, 그는 좋은 배우라고 해도 될까.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저도 정답은 모르겠어요. 그 중간쯤에서 합의를 봐야하지 않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또 어떤 배우로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좋은 배우이고, 또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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