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시민'서 소심한 직장인 구재필 역 맡아

첫 주연작 소감 "절친 하정우에게 '손발 오그라든다'고 털어놨죠"

평생 배우-명품 작가 꿈 "여덟 편의 시나리오, 세상에 나왔으면"

'소시민'의 배우 한성천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UL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이동건 기자] 시작부터 강렬했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윤종빈 감독, 하정우와 당차게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호평을 만끽하고 발돋움해야 할 시기에 입대를 택했고, 배우로선 치명적인 공백기를 맞았다. 무대에 다시 서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한성천이 달려온 12년에 욕심은 없고 겸손만 있었다. 주로 조연과 단역을 전전했지만 그에게 배역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았단다. '577 프로젝트'의 '역몰카 장인'으로 현실까지 쥐고 흔든 뒤에는 그를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고, 꾸준한 성실함으로 '롤러코스터', '역린', '악의 연대기', '베테랑', '성난변호사', '터널', '두 남자' 등의 작품에 얼굴을 비쳤다. 무대 한켠에서 동료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한편 계속해서 자신을 담금질한 한성천은 이번 작품 '소시민'을 통해 비로소 120분의 러닝타임을 가득 채우게 됐다.

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소시민'(감독 김병준) 개봉을 앞둔 배우 한성천을 만났다. 극 중 캐릭터 표현을 위해 살을 찌웠던 그는 스크린 속 모습과는 다르게 부쩍 날렵해진 모습이었다.

"어눌한 이미지 표현을 위해선 살집이 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먹는 걸 멈추지 않았죠. 그땐 너무 행복했는데 끝나고 나니 너무 힘드네요.(웃음) 지금도 운동하면서 살을 빼고 있어요."

'소시민'은 하루하루 성실히 사는 소시민의 초상 구재필(한성천)이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겪게 되는 생애 가장 힘든 출근기를 담은 생활밀착 서민드라마. 첫 주연작인 만큼 체중 증량에도 기분 좋게 임했지만, 그는 갖은 열정을 다한 뒤에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가 상영됐을 땐 제 연기가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번 시사회 때 제 연기를 보니 부담스럽더라고요. 제가 영화에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건 처음 본 거잖아요. (하)정우가 '잘 나왔어?'라고 물어보길래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답했죠.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하니까 위로는 됐는데 다시 보라면 볼 수 있을지…(웃음)"

20년 세월을 함께해온 하정우는 연기적으로도 큰 영감을 얻는 친구다. 한성천은 '배우' 하정우가 발산하는 에너지의 설계 지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그 영민한 관찰력을 이번 작품에서 가감 없이 활용했다.

"제일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건 다음 장면이 궁금해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캐릭터를 다 보여주거나 식상하다는 말이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전 이게 주조연으로서 극을 끌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정우의 경우는 작품에 임할 때 그래프를 그리고 디자인을 하거든요. 힘을 배분해서 여기선 1, 여기선 2~3을 보여주죠. 하지만 제 경우 그게 몸에 익지 않으니까 현장 가서 흥분이 일면 오버를 하게 되더라고요. 또 준비를 많이 하면 현장에서 떨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긴장이 되더라고요."

한성천은 "과거 앓았던 기관지 천식을 이겨낸 뒤 체질이 바뀌면서 체중 조절이 유연해졌다"며 웃었다. 사진='용서받지 못한 자'·'롤러코스터'·소시민' 스틸컷

이 같은 말이 엄살처럼 들렸던 건 어느 때보다 폭넓은 감정 스펙트럼을 선보인 '소시민' 속 그의 모습 때문일 거다. 직장 상사로부터 조인트를 차일까 벌벌 떨던 그는 위험천만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당당하게 상사 앞에 서고, 아버지의 국수집에 들러서는 무장해제된 어린아이의 울음으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한성천은 아득바득 살아가는 재필의 모습을 통해 모두를 위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소시민'은 모두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잖아요. 누구나 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회사를 나가고, 돈을 벌지 않나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게 잘못될 것 같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사표를 던질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된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한성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막막하고 캄캄할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는 그는 진실한 직업 정신을 답으로 내렸고,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의 길을 걷겠다 다짐했다. 여기에는 신앙의 힘도 컸다. 하정우의 열정적인 전도 끝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그는 현재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전날에도 하정우, 황보라·차현우 커플, 목사님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다고.

"예전부터 (하)정우가 전도를 하려 무던히 애썼는데 '절대 안 가겠다', '강요하지 말아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마저 사라진 느낌이 들었을 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힘이 됐어요. 누군가에게 터놓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소시민' 개봉으로 새해를 맞는 한성천은 좋은 기운을 듬뿍 받는 기분이란다. '대장 김창수', '공작' 등 대작 촬영에 돌입하는 그는 "큰 배역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때를 기다리느라 아껴서 녹슬어버리는 삶보단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이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작품이 고픈 충무로 신예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문장일 듯하다.

"최근에도 '이걸 몰랐어?', '아직도 부족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어요. 또 제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나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 알아서 써줄 거야'가 아니라 '보답해야지', '더 잘해서 이 사람들을 뿌듯하게 해줘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돼요. 믿어줘서 고마운 만큼 그 이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크죠."

이에 각종 케이블, 종합편성 채널로 유입돼 맹활약을 펼치는 연기파 배우들의 행보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유독 영화만 고집해온 그에게 "드라마 출연도 좋은 발판이 되지 않을까"라고 넌지시 묻자 그는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가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드라마는 테이크를 많이 갈 수 없다 보니 연기 테크닉이나 순발력 등을 배울 수 있어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고, 드라마 작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다만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린다든지 성공하겠다든지 등의 포부는 없어요. 늦긴 했지만 조금씩 다져오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굳이 지름길로 가려다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저버리고 싶진 않거든요. 확 인기를 얻기보단 평생 배우를 하고 싶으니까요."

온갖 손짓과 표정으로 '평생 배우'의 바람을 전하는 그에겐 꿈이 또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하루에 20장씩 원고를 쓸 때도 있다고. 이미 여덟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집필했다는 그는 "습작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이 시나리오를 세상에 나오게 하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단순히 끄적거리는 게 아니라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시나리오 팀을 꾸려서 매번 회의를 하고 있죠. 정말 좋은 작가가 돼서 나중에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물론 배우로서 더 노력을 해야 할 때라 글은 틈틈이 쓰고 있어요.

미숙한 연기자는 말하려 하고, 좋은 배우는 들으려 한다. 항상 관객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작품의 의미를 곱씹는 한성천은 후자였다. 일찍이 윤종빈 감독의 중앙대 졸업작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시나리오가 좋으면 학생들 졸업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면서 영화계 전반에도 애정을 드러냈다.

한성천의 첫 주연작 '소시민'은 오는 12일 개봉한다. 사진=홀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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