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서 변요한과 호흡

조미료 넣지 않은 담백한 멜로라 선택

나홍진 감독·하정우와는 ·언제든 뭉칠 의향 있어

차기작 '남한산성' 이병헌·박해일·고수와 새로운 조합 기대되

배우 김윤석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서 중년 한수현 역을 맡은 김윤석(49)의 스크린 첫 등장 신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기운이 감지된다.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가 걸어 나오듯 어깨에 힘을 쭉 뺀 자연인 김윤석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캐릭터다.

정의와 불법을 오가는 안마방 사장('추격자'), 절대 악인('타짜', '화이')부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도사('전우치'), 괴팍하지만 속정 깊은 교사('완득이'), 이상향을 찾아 섬마을에서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는 과거 사회운동가('남쪽으로 튀어'), 희대의 도박사('도둑들'), 도사와 함께 유괴된 아이를 찾아나서는 형사('극비수사'), 악령에 깃든 소녀를 구하려는 신부(/검은 사제들') 등 어마어마한 필모그래피가 이야기해주듯 김윤석이 이전 작에서 연기한 캐릭터들은 근래 한국 영화사상 가장 강력하거나 문제적인 인물들이었다. 그의 작품 선택의 기준이 달라진 걸까.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도 영화 속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많이 여유롭고 평소와 달리 농담의 횟수도 잦다.

"기술시사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여기저기서 눈물 참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멜로가 담백하고 억지 서사가 없는 영화에요. 남녀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딸과의 사랑 등 지금 내 나이인 50대의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느낄 수 있는 딱 내 나이대의 감정이 녹아든 영화라 선택했어요."

기욤 뮈소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 만큼 '당신, 거기'는 50대의 한수현(김윤석)이 과거의 자신(변요한)을 찾아가 첫사랑 연아(채서진)를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거는 내용을 그렸다. 영화 '쎄시봉'에서 김희애와 못다 이룬 사랑 때문에 비행기 탑승 통로에서 처절하게 우는 뒷모습을 선보이며 첫사랑을 못 이룬 뭇남성들에게 깊은 공감을 줬다면 이번에는 첫사랑 여인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애타는 마음을 뭉클하게 그려냈다.

배우 김윤석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물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애틋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죠. 근데 저는 극 중 딸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사실이 더 마음에 와 닿았어요. 사실 연아에 대한 부분은 변요한에게 중요한 부분이었고 저는 딸과의 장면들이 더 애정이 가요. 실제 두 딸의 아빠이기도 하고요. 어깨에서 힘을 뺀 걸로 보였다면 이번 작품에 실제 평소에 집에서 지내는 내 모습들이 많이 담겼기 때문이죠. 딸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준다던지 음식을 만들어주는 모습도 비슷하고요. 딸 역을 맡은 박혜수와는 평소에 아빠와 딸 같은 감정을 조금이라도 미리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우리 집에 몇 차례 초대하기도 했어요."

김윤석이 연기하는 장면에서 딸과 교감하는 내용의 비중이 컸던 만큼 가장 촬영이 힘들었던 장면도 딸과 헤어지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부분이었다.

"딸을 앞에 두고 자신의 병을 고백하는 장면이 정서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실제 딸이라는 감정을 주고 그 고백을 하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내 딸 앞에서 내가 완치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감정이 훅하고 들어오는 거에요. 아, 그 장면만큼이나 김성령씨 앞에서 풍선 들고 고백하는 장면도 민망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미인인 미스코리아 앞에서 그런 장면을 찍으려니 쑥스러웠죠."

김윤석 자신도 부산 동의대 극예술연구회에서 처음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해 극단 현장, 연우무대, 학전을 거친 정통 연극배우 출신이다 보니 한예종 연극과 출신의 변요한과는 별다른 말없이도 호흡과 표정으로 합이 맞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변요한이 저처럼 연극을 베이스로 했고 뮤지컬도 경험한 친구니까요 일단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연기를 계산적으로만 하는 배우도 아니었고요. 즉흥적으로 호흡을 받아치기도 하고 순간에 몸을 던지기도 하더라고요. 몇몇 신에선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던가 멱살을 너무 심하게 잡아와서 놀란 적도 있지만 타고난 감각이 좋았어요.(웃음) 또 촬영이 진행될수록 주위 스태프들이 둘이 닮아간다는 소리를 많이 하더군요. 요한이가 내 눈 빛이나 행동을 많이 관찰했다고 하던데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나 눈빛에서 제 모습을 보게 됐어요. 또 다른 숙제가 있었는데 우리 두 사람은 한편으론 비슷해야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달라야 했어요. 요한이가 연아와 사랑을 이루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했다면 저는 생을 마감하는 입장이어야 했으니까 표현법이 달라야 하는 지점도 있었죠."

배우 김윤석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외의 다른 나라들도 일찌감치 영화화를 탐냈던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영화화를 한국에서 하게 된 데는 기욤 뮈소가 '추격자' 등을 통해 이미 김윤석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주효했다.

"기욤 뮈소가 영화화를 허락한 이유 중에는 뭐 홍지영 감독이 각색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던 점이 가장 크겠죠. 제가 기여한 건 뭐 2%나 되려나요. '추격자'나 '황해'가 칸영화제에 갔고 프랑스에 수출도 됐으니까 저희 영화를 봤겠죠. 기욤 뮈소가 아는 한국 배우가 저랑 하정우 밖에 없지 않을까요?(웃음)"

'추격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절친 나홍진 감독과 차기작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영화 '곡성' 당시 나홍진 감독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서 "김윤석 배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편집 포인트에 있어서 한두 번 큰 힌트를 얻었다"며 김윤석의 예술성과 감식안을 극찬한 이야기도 전했다.

"나 감독이 '곡성' 후반 작업 중일 때 편집실에 두 번인가 갔었죠. 나홍진 감독이야 워낙 자기 계산이 잘 서있고 확신이 있는 감독인데요. 그냥 두 번 정도 편집 작업 지켜보며 느낀 바를 이야기해줬을 뿐이에요. '추격자', '황해'를 같이 한 나홍진 감독이나 하정우와는 자주 뭉치고 편히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요. 한 번 뭉치면 개구장이처럼 놀죠. 모이면 늘 '우리끼리 한 번 뭉치자'는 이야기는 합니다. 조만간 뭉치게 되겠죠. 정우 의견도 한 번 물어봐야 하는데, 근데 내가 나 감독 작품을 하려면 체력이 좋을 때 해야 하는데(웃음)."

중년의 한수현이 젊은 시절의 연아와 대면하는 장면은 딱 한 번 등장한다.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연인을 젊은 시절 당시로 돌아가 만나는 장면을 찍을 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갱년기에 가까운 나이인데 첫사랑 여인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돌고래 쇼 장에서 연아는 저 멀리 있고 내가 바라봐야 하는 장면인데 연아 대신 보조출연자 팀장이 상대역할을 하는 거에요. 선글라스 끼고 해병대 모자 쓴 배우가 '선배님, 여기 보시면 됩니다'하는데 감정이 도저히 안 잡히죠. 그래서 결국 채서진이 상대역 연기를 했어요. 한수현 입장에선 '나 여기있어'라고 말을 걸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죠. 그저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만 보고 싶었을 거에요. 사실 남자들에게 첫사랑은 서툴 수밖에 없고 바보 같은 느낌이죠. 첫사랑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깨지는 거 아닌가요. 내 경우만 생각해봐도 정말 그 때 당시 내모습이 싫어요. 바보 같았죠. 두 번째나 세 번째 사랑 정도 되야 그나마 애틋한 감정이 들죠. 첫사랑에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나마 행운아죠."

김윤석은 지난달부터 김훈의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남한산성'의 촬영에 한창이다.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한 임금과 조정이 밖으로 나갈 수도 공격 할 수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 속에서 그리는 47일을 다룬다. 김윤석은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맞서 끝까지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 역을 맡아 최명길 역의 이병헌과 극한 대립을 이룰 예정이다.

"우선 사극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기대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요. 이병헌, 박해일, 고수 등 대부분 배우들과 처음 호흡을 이뤄요. 이 새로운 조합에 대한 기대감도 크죠. 제가 겨울 촬영에 경험이 많은 사람인데 다른 무엇보다 추위와의 싸움이 가장 걱정됩니다. 사극이다 보니 내내 수염을 붙이고 촬영해야 해서 그 부분도 살짝 걱정이 되네요. 벌써부터 내복을 껴입고 촬영에 임하고 있어요.(웃음)"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훌륭한 필모그래피의 소유자인 김윤석이 그동안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은 뭘까. 그는 "제게 굉장히 큰 변화를 준 두 작품인 '타짜', '추격자'도 기억에 남꼬 가장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은 '완득이'다. 소박하게 찍었지만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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