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터'에서 대한민국 뒤흔든 희대의 사기범 진회장 역 맡아

"진회장 캐릭터 위해 필리핀 배우들 영어발음 녹음해 공부했죠"

연기 극찬에 "마냥 즐길수만 없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 자제"

[스포츠한국 이동건 기자] 화려한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한 물갈퀴질을 한다. '내부자들'을 통해 연기 신으로 떠오른 이병헌도 그렇다. "배우에게 쉼 없는 치열함 없이 성공을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그는 25년의 시간 동안 수백수천의 표정을 만들어냈고, 이 얼굴은 그에게 가장 멋진 옷이 됐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캐릭터 연기로 이젠 불문율로 통하는 그는 영화 '마스터' 개봉을 앞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마스터'의 배우 이병헌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스터'(감독 조의석)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까지, 그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

필리핀이 배경인 '마스터'에서 이병헌은 인간미 넘치는 영어 발음으로 소소한 재미를 안긴다. 이 모습을 보면 오롯이 배우의 상상력과 독창성으로 일궈낸 캐릭터 같지만, 이병헌은 진회장의 디테일한 요소를 채우려 현지인 배우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진회장이라면 분명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친근감을 주고 상대방이 알아듣기 쉬운 영어를 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에 앞서 필리핀 현지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필리핀 배우들을 캐스팅하러 갔을 때 그런 부탁을 했어요. 필리핀 배우들에게 내 대사를 녹음해서 보내달라고. 친절하게도 각기 다른 세 배우들이 다른 감정으로 녹음을 보내왔더라고요. 아무래도 배우들이니까 오버한 사람도 있고 덤덤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감정선보단 공통적인 발음을 봤어요. 어떤 발음은 묵음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동남아는 동남아 영어의 공식이 있더라고요."

이병헌은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뛰어난 언어 이해력으로 할리우드에서도 꾸준히 활약하고 있으니 더욱 고무적이다.

"문법도 그렇고 문장, 단어에서 뜻을 모르는 부분이 되게 많아요. 발음을 듣고 표현하는 데 있어선 운 좋게도 능력이 조금 있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막히는 게 많아요. 욕심이 덜한 건지 게으른 건지… 자투리 시간마다 영어 공부를 했다면 미국에서 시나리오를 받아 읽을 때 시간도 덜 걸리고, 감독과도 깊은 얘기를 나눌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지아이조2', '레드', '터미네이터', '미스컨덕트', '매그니피센트7' 등에 출연한 이병헌은 가장 성공적인 할리우드 진출을 이룬 한국 배우로 손꼽힌다. 이에 세계적 배우들과 호흡한 소감을 묻자 그는 알파치노와 만난 당시를 떠올리며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미스컨덕트'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누가 캐스팅됐냐고 물었더니 알파치노, 안소니 홉킨스가 한대요. 바로 한다고 했죠. 그런데 출연을 결정짓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알파치노를 만나는 장면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께 부탁했어요. 한 신만이라도 만들어달라고."

그렇게 성사된 알파치노와의 만남에 이병헌은 "시모사와 신타로 감독이 일본계 미국인이다. 아시아인으로서 동지애를 느낀 게 아닐까 싶다"며 웃었다.

"알파치노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연기가 훌륭한 건 너무나 당연하고, 인격적으로 너무 닮고 싶은 부분이 많더라고요.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배우가 얼마나 부끄러움을 타는지 몰라요. 어릴 적부터 제일 보고 싶어 했던 배우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얘기했더니, 웃으면서 수줍어하시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이 신선하기도 하고 놀라웠어요."

이병헌은 연기 열정에 있어서도 알파치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알파치노에게 과연 저런 게 필요할까 싶었는데, 조그만 극장이라도 빌려서 무대 위에서 리허설을 하자고 감독에게 건의를 하더라"라며 "무대 위에서 아이디어도 내고, 대사를 여러 번씩 다른 느낌으로 하고 '이거 어땠어?'라고 끊임없이 되물었다. 70대 나이에 그렇게 정열적인 모습을 보니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밖에 없구나' 느꼈다. 영화는 비록 망했지만 제겐 아주 큰 공부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 '마스터'의 배우 이병헌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상급 배우이면서도 전 세계 배우들과 호흡하며 쉴 새 없이 배운다는 이병헌은 후배들이 닮고 싶은 배우로 가장 많이 언급된다. 진구, 성훈, 여진구, 박지빈, 진태현, 현우성, 이장미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를 롤모델로 꼽는 배우들이 셀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물음표를 던졌다.

"기분은 좋지만 '나의 어떤 부분 때문에 저 친구들이 나를 롤모델로 삼았을까?' 궁금해요. 그래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쓰기도 하죠. 구체적인 이유는 그 친구들과 만나보고 얘기하고 싶어요.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면서 그런 걸까요. 또 다른 시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친구들에게 신기해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잘해야겠죠."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의 신이지만 이토록 이병헌이 자기평가에 인색한 이유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가짐은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 그가 택한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많은 사랑을 받다가도 한 작품으로 실망을 안기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잖아요. 한 작품 실패했을 뿐인데 '이젠 끝이야'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요. 자극적인 욕을 들었을 땐 되게 상심하거든요. 상처받지 않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그런 것에 상심하지 않고, 과찬을 들어도 '다음에는 다른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냥 기뻐하고 즐길 수만은 없어요.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릴 수 있을 때 누려라'라고 하겠지만요."

이병헌은 가족에게도 감정을 오픈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매니저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는 그는 '내부자들'에 따라온 호평에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꽉꽉 누르고 가슴 깊은 곳에서 쾌재를 불렀다.

"'내부자' 때는 '신들린 연기다', '어떻다' 하면서 저에 대해서 좋은 기사만 나오는 거예요. 메인 뉴스에도 뜨고, 여러 사람들에게 축하 문자가 오는 거죠. 그럼 전 매니저와 통화하면서 '야, 기사 참 잘 썼더라'라고 말해요.(웃음) 마음에 있는 별의별 얘기를 다 하죠. 그래놓고 집에 와서 아내가 '오빠, 기사 났던데 봤어?'라고 하면 '무슨 기사?'라고 해요. 그쪽에서 얘기하기 전까진 말을 안 하죠."

누군가에겐 덕심을 유발할 마음 단련 에피소드에 웃음이 터졌다. 어느 분야에서 '마스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가정의 마스터를 꼽은 이병헌은 "좋은 아들, 아빠,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주연 '마스터'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까지, 그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오는 21일 개봉.

영화 '마스터'의 배우 이병헌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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