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서 재혁(김남길) 연인·발전소 홍보관 직원 연주 역 맡아

"데뷔 9년 차에도 초조함 없어… 배우는 시간 동안 행복 느꼈어요"

"캐스팅 번복은 빈번한 일… '엽기적인 그녀' 불발 논란에 안타까웠죠"

배우 김주현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이동건 기자] 내년이면 데뷔 10년 차인 김주현은 자신을 신예라고 소개했다.

2007년 공포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뒤 'TV소설 사랑아 사랑아', '드라마 페스티벌- 상놈 탈출기', '모던파머' 등에 출연하며 안방극장에 간간히 얼굴을 비쳤다. 하지만 눈길을 확 끄는 미모도 낯익지 않은 걸 보면 그의 소개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김주현은 이번 작품 '판도라'를 통해 비로소 힘찬 시동을 걸었다.

지난 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 개봉을 맞은 배우 김주현을 만났다. 원전사고를 다룬 재난영화 '판도라'에서 재혁(김남길)의 연인이자 발전소 홍보관 직원 연주 역을 맡은 김주현은 이 작품에서 유일한 신예 배우로 화려한 눈도장을 찍었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 틈에서 호흡한 만큼 촬영 후 감회도 남다를 것 같았다.

"제가 자존감은 높은 편인데 자신감이 부족해요. 연기 욕심도 많아지고 워낙 잘하는 분들과 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고 더 좌절했던 것 같아요. 촬영을 마치고 난 뒤에는 책임감을 갖고, 저 자신을 더 믿고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그마치 1년이 흐른 촬영 당시를 떠올리는 표정에 겸손이 배어 있었다. 극 중 김주현은 재난 현장 속 시민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는 진한 걸크러시를 남기고, 대선배 김영애 앞 애절한 연기로 휴머니티 요소를 극대화한다.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폭넓은 감정선을 선보인 그는 선배들과 부딪히며 더 큰 감흥을 받았다고 밝혔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잖아요. 김영애 선생님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어머니 같은 모습이었죠.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았어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가슴 아픈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문정희 선배는 슛이 들어갈 때 정말 많이 바뀌세요. 프로시잖아요. 앵글 안에서의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요? 연기적인 내공이 정말 놀라웠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남길 선배도요. 정말 성실하시고, 책임감 있게 스태프와 배우들을 챙겨주셨어요."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은 잘 배운다. 배우들의 묵직한 호흡을 체감한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했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곱씹으며 촬영에 임했다.

"제가 신인이기도 하고, 연기적으로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임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캐릭터에 집중하기도 무리였고 어려운 신이 많았죠. 다행히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부담감을 덜 수 있었어요. 감독님이 칭찬도 해주시고 '너가 가진 것의 20%밖에 안 나왔어'라고 북돋워주시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제겐 부족한 점만 보였거든요. 그저 용기를 주려고 그러시나 보다 생각했어요."

크랭크인 전 한 달간은 4시간씩 자며 캐릭터를 준비했고, 스쿠터부터 대형 관광버스 운전까지 액션 트레이닝에 몰두했다. 평소 재난물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었다는 그는 태국 쓰나미 사건을 다룬 영화 '더 임파서블'을 참고하며 이번 작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대사를 많이 연습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이 대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려고 하죠. 결국 대사는 주관적으로 해석해야 하잖아요. 어쩔 수 없이 제가 생각하는 방식, 제가 아는 한에서 해석이 되더라고요. 문화생활을 하는 이유도 다르게 바라보고 배우기 위해서 하는 거고요. 그런 데 초점을 두고 공부하고 있어요."

그에게 배우란 끊임없이 배우는 직업인 것 같다. 한 달 뒤면 10년 차를 맞는 김주현에게 "그간 주목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초조함은 없었냐"고 묻자 그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배우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차분하게 답을 내놓았다.

"전 어릴 때부터 배우의 꿈을 가진 건 아니에요. 우연히 연기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초조함을 느끼진 않았고, 지금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묵묵히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일을 안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20대 중반부터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지만요. 고민이 많았던 시기 '모던 파머'를 하게 되면서 연기가 재밌고 현장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배우는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그다음 '판도라'를 찍고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음 촬영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하지만 제가 부족하기도 하고 상황적으로 안 맞아서 공백기가 생겼어요. 하지만 힘들어하거나 좌절하진 않아요. 제가 연기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되면 집에 있을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공백기가 있었던 건 배우로서의 자각이 부족했거나 연기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그래요. 그동안 했던 것에 비해 주목받는다고 해서 굉장히 기쁜 일이고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서 김주현은 1800:1 경쟁률의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엽기적인 그녀' 주원의 상대 역에 낙점됐지만, 중도 하차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뜻하지 않게 공백기가 생겼고, 대다수 네티즌이 대신 나서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담담했고, 앞으로의 행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공개 오디션이 아니었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알게 되서 많이 속상했어요. 불쌍한 이미지로 봐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죠.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제 역할을 뺏어간 것처럼 되고, 나쁜 사람이 돼버리잖아요. 그래서 말하는 게 조심스럽고 불편할 때가 있었어요. 배우 일을 하면서 캐스팅 번복은 빈번한 일이잖아요. 이렇게까지 돼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 그저 '판도라'의 연주로 절 바라봐주셨으면 좋겠고, 앞으로 다른 역할로 찾아뵐 테니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배우 김주현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국민이 뽑은 미모와 연기력이니 무대에서 자신을 잘 갈고 닦는 일만 남았다. 다만 이 청순한 외모에 연기가 가릴까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고민은 없는지 묻자 그는 "연기는 외모에 묻히지 않는다"고 딱 잘라 소신을 밝혔다.

"샤를리즈 테론을 두고 누가 외모 때문에 연기 못 한다고 말하겠어요. 연기는 연기고 외모는 외모인 것 같아요. 다만 한 이미지에 국한되면 선입견이라는 건 생기겠죠. 광고에는 예쁜 모습으로 나오는데, 망가진 모습을 보면 어색할 수 있잖아요. 이번에 연주라는 캐릭터를 준비할 때도 감독님이 '넌 어떤 이미지를 그렸니'라고 물어보셔서 전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를 떠올렸다고 말씀드렸죠. 망가짐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고요. 감독님이 제가 갖고 있던 이미지에 걱정을 하셔서 스스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틈틈히 찾아보고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배우는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이다. 이미지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 배우의 매력을 느꼈다는 그는 가감 없이 감정을 펼쳐본 '판도라'에 대해 "꼭 보셨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부탁했다.

"재난 영화라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배우들이 서로 아끼고 챙겨주는 분위기라 꼭 가족 같았어요. '판도라'는 해가 되는 영화가 아니에요. 시국이 뒤숭숭해서 마음이 불편할 순 있지만 한 번쯤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 김주현의 화려한 충무로 데뷔를 알린 '판도라'는 지난 7일 개봉해 누적관객수 161만 9869명을 기록, 6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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