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청소년 연기 위해 실제 담배 배우기도

과거 연기력 논란 이후 승부욕 발동

외모 칭찬 뛰어넘는 연기력 보여주고파

배우 최민호. 사진=엠씨엠씨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사실 저는 ‘두 남자’가 15세 받을 줄 알았어요. 제 팬 대부분이 청소년들이라 스크린 스코어에 조금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좀 안타까웠어요. 감독님께 문자로 ‘아쉽지 않으시냐’고 여쭸더니, ‘영화는 역시 청불이다’란 명언을 남기셨죠.”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샤이니 멤버 최민호는 첫 주연작이 청불(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자 소녀팬들부터 떠올렸을 만큼 '뼛속까지 아이돌'이다. 소위 이미지로 먹고 사는 아이돌이 청불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거친 욕을 쏟아내고 침을 뱉는 모습이 어린 팬들에겐 낯설 수 있었다. 하지만 최민호는 소속사를 설득해서라도 하고 싶었고 결국 제대로 해냈다. 영화 ‘두 남자’(감독 이성태)는 인생 밑바닥에 있는 두 남자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범죄 액션극. 저예산 영화임에도 지난달 30일 개봉 이후 누적관객수 5만 3,799명(영화진흥위원회 제공 12월 5일 기준)을 동원하며 선전 중이다. 극 중 최민호는 가출 청소년 진일 역을 맡아 십대 소년의 위태로운 방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처음엔 진일이란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안 됐어요. 저랑 진일이는 교집합이 없었거든요. 저는 어린 시절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도 성실하게 마쳤고, 좋은 회사를 만나서 팬분들 사랑 받으면서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거든요. 소년원 출신인 진일이의 감정을 제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행복한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봤어요. 가족들과의 따뜻한 식사, 친구들과의 여행, 샤이니 1위 이런 걸 모두 없애보니까 어느 정도 진일이한테 가까워져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선 두려웠어요. 진일이의 척박한 내면에 다가갈수록 자꾸 사회 밖으로 숨으려 하는 진일이가 안타깝기도 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두운 감정들이 한동안 남아있었죠.”

사진='두남자' 스틸
극 중 최민호가 연기한 진일은 가출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절도를 일삼고 늘 경찰에 쫓겨다니는 인물. 매일 훔친 돈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밤거리를 배회하면서 하룻밤 잘 곳을 찾아 헤맨다. 때문에 영화 내내 진일은 크게 웃지 않는다. 웃을 일도 없다. 영화 오프닝 역시 진한 담배연기를 내뿜는 진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최민호는 비행 청소년을 연기하며 가장 타협하기 힘들었던 부분으로 '담배'를 꼽았다.

“제가 비흡연자라서 담배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감독님께 ‘담배 장면 빼도 되겠냐’고 여쭸고 감독님도 흔쾌히 허락하셨죠.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길거리에 어린 학생이 그냥 서 있을 때랑, 담배라도 하나 물고 서 있는 거랑은 느낌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하루 고민하고 ‘담배를 배워보자’ 마음먹었죠. 감독님께 다시 말씀드렸더니 ‘나중에 못 끊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건강에 나쁘다’라면서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시더라고요.”

사실 굳이 담배를 배우지 않아도 방법은 있었다. 실제로 피우는 척 흉내내는 배우들도 많다. 최민호가 굳이 담배를 제대로 배운 이유는 연기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겉담배를 피우는 방법도 있었죠. 근데 실제 흡연자분들이 보시고 ‘저거 가짜로 피웠네’ 하시면서 연기까지 가짜로 비춰질까봐 걱정됐어요. 담배를 자연스럽게 피우려면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해서 크랭크인 전부터 시작했죠. 처음엔 헛구역질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촬영 막바지엔 못 끊을까봐 무서워졌죠. 담배가 무서운 게 아침에 일어나서 스케줄 가기전에 저도 모르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더라고요. 결국 촬영 끝나고도 2주는 더 피웠어요. 그래도 촬영 끝나자마자 금연하겠다고 약속한 건 지켜야 하니까, 허벅지 꼬집어가면서 참았죠.”

사진='두남자' 스틸
담배만큼 많이 등장하는 건 액션신이었다. 하지만 멋있고 화려한 액션은 아니었다. 최민호와 마동석은 실제 막싸움을 보는 것 같은 리얼한 장면을 연출해 이목을 끌었다. 거친 액션신을 처음 접해보는 최민호에게 가장 많이 힘이 된 건 배우 마동석이었다. “마동석 형님도 저처럼 운동을 좋아하셔서 공감대가 많았어요. 형님이 ‘운동하는 사람 진짜 좋아한다’라면서 먼저 편하게 대해주셨죠. 합을 맞출 때도 감독님께 ‘이렇게 하면 민호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냐’라고 건의해주시고, 제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많이 만들어주셨어요. 덕분에 좋은 장면들이 많이 연출됐던 것 같아요.”

마동석 특유의 아우라 탓에 최민호가 묻힐 수도 있겠단 생각은 기우였다. 최민호는 '두 남자'를 통해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거칠고 파워풀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최민호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많은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쏟아지는 칭찬에 "얼떨떨하다"고 했다. 연기로 칭찬을 받아본 건 처음이기 때문. 지난 2010년 단막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아름다운 그대에게’, ‘처음이라서’ 등 꽤나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연기력 논란은 쉽게 떼기 힘든 꼬리표였다. 그는 스스로 “연기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서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운을 뗐다.

“연기를 좋아하기만 하고 스킬은 없었어요.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고, 인생 가장 큰 슬럼프를 겪었죠. 그때 저는 샤이니 멤버들에 비해서 가수로서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연기도 별로였고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이렇게 인터뷰라도 하면 한마디 하기가 정말 어려울 정도로 위축됐었어요. 그러다가 연기력 논란이 생겼고, 혼자 고민하다가 더 이상 '연극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안 멋있어도 되니까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자고 마음먹은 순간 방송도 편해졌고 연기도 재밌어졌어요. 카메라 앞에서 훨씬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자연스러워진 제 모습을 대중도 좋아해주더라고요. 물론 처음부터 연기를 잘했다면 더 많은 기회가 왔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인정받기 위해서 고민했던 과정 역시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진=엠씨엠씨
오랜 시간 연기력에 관한 질타를 받으면서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었다. 기대했던 좋은 결과나 칭찬에 목말랐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민호는 욕 댓글을 보면서도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꾸짖었다. “악플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 제가 못한 부분을 계속 쪼개보면서 대체 뭐가 부족했나 깊게 파고들었죠. 또 일상 속 제 모습을 계속 관찰하면서 ‘이런 모습을 왜 연기에 반영하지 못했냐’라면서 질책하는 게 습관이 됐죠.“

연기를 놓을 수 없었던 건 최민호 특유의 승부욕 덕분이기도 했다. “원래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에요. 어릴 때부터 뭐든 잘하는 친형 때문에 비교도 많이 당했고, 작은 게임이라도 지는 게 싫었어요. 데뷔하고 나서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더 물고뜯고 늘어졌어요. 특히 연기는 제게 하고 싶은 일인 동시에 재밌는 일이기도 해요. 하고 싶은데 재밌는 일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욕심이 나요.”

최민호가 배우로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당연히 ‘연기 잘한다’였다. 그 다음엔 ‘최민호처럼 생긴 애가 이런 것도 해?’라는 의외성을 주고 싶단다. “잘생긴 외모가 연기 활동에 제약이 된 적도 있어요. 캐스팅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고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진짜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악역을 할 때의 느낌도 있지만, 저처럼 생긴 사람이 거친 역할을 잘 표현해냈을 때의 의외성에서 오는 묘한 성취감이 있거든요. ‘저런 얼굴인데도 잘 어울리네?’ '저런 얼굴에 이런 캐릭터도 가능하네?'라는 말은 어떤 칭찬보다 기분이 좋아요.”

마지막으로 최민호는 ‘연기돌’ 수식어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연기돌이란 말이 부정적으로 보이진 않아요. 연기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진지한 태도로 연기에 임하고, 그래서 인정받으면 되죠. 당연시되는 편견들을 바꿔나가는 건 결국 플레이어들의 몫이에요. 오히려 무관심보다는 낫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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