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형'서 사기전과 10범 형 두식 역 맡아
"'형' 시나리오 읽으면서 차 안에서 몰래 울었어요"
"연기는 대결 아닌 호흡… 공연 활동 도움 됐죠"
[스포츠한국 이동건 기자] 뮤지컬계에서 이미 스타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뛰어든 건 2012년 '건축학개론'에서였다. 강렬한 감초 연기에 잠깐 반짝거릴 뿐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젠 키스신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들썩이게 한다. 배우 조정석의 이야기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형' 개봉을 앞둔 조정석을 만났다. '최고다 이순신', '오 나의 귀신님'에 이어 최근 '질투의 화신'까지 안방극장에선 보증수표가 됐지만 주연을 선 영화는 번번이 쓴맛을 봤다. 그래서 더 부담이 클 것 같았다.
"매 작품이 부담인 것 같아요. 맨 앞에 제 이름이 나올 때의 부담감은 '특종'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택한 건 시나리오를 읽어나가면서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에요. 전 시나리오를 읽을 때의 첫 느낌을 중요시하거든요. 다만 송강호 선배는 시나리오 첫 페이지를 읽으면 느낌이 확 온다고 하는데, 전 아직 그런 경지까진 이르지 못한 것 같아요."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형'(감독 권수경)은 사기전과 10범 형 두식(조정석)과 잘 나가던 국가대표 동생 두영(도경수), 남보다 못한 두 형제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기막힌 동거 스토리를 그린 브로 코미디.
조정석은 '형'의 첫 시나리오를 받은 뒤 '오 나의 귀신님'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몰래 울었다고 전했다. 단숨에 대본을 읽어내려나간 그는 "스태프에게 눈물을 보일까 봐 창밖을 보면서 울었다"며 멋쩍어했다.
"아무래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애를 잘 다룬 것 같고요. 제가 형들이 있다 보니 이 이야기가 저에겐 팍 꽂혔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두고 '신파다', '진부한 소재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선 딱히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관객분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저에게는 확 와 닿았어요.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실 거라는 예감도 있었고요."
후반부 전개와 관련해 조정석 스스로 신파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지만 '형'은 유쾌발랄한 버디 무비에 가깝다. 극 중 능청스러운 사기꾼 역을 맡은 조정석은 '건축학개론' 납뜩이 때보다 더 현실적이고 탄력 넘치는 유머 MSG를 선보인다. 극장을 나설 때면 조정석이 버릇처럼 내뱉는 "개새"의 어감이 그리울 정도.
"제가 영화에서 욕을 많이 하잖아요. 더 찰지게 할 수도 있었는데…(웃음) 영화의 톤 앤 매너를 볼 때 그 정도가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장에 있는 감독님과 배우들이 함께 상의했고요. '개새'라는 비속어가 많이 나오는데 다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에요. 디테일이 잘 담겨 있는 시나리오죠. 초중반에는 코미디를 최대한 잘 살리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쏟아지는 육두문자 대사에 대리만족을 느꼈냐고 묻자 조정석은 "물론이다. 배우들의 특권 같은 것"이라며 "비속어를 평소에 잘 안 쓴다. 그래 봤자 '존나'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에 "'존나'는 표준어 아니냐"고 받아치자 그는 훤한 얼굴로 호탕하게 웃었다.
조정석은 어떤 사람일까. 주로 츤데레에 마초 캐릭터를 도맡았던 그는 생각보다 쑥스러움도 많고 담백한 매력이 돋보이는 남자였다.
"전 마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은 또 못해요. 완전히 살가운 스타일은 아닌 거죠. 그렇다고 츤데레도 아니고… 평범한 것 같아요. 마초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제 모습을 발견한 적이요? 이상한 감정을 느낀 적은 있죠. "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극 중 유방암에 불임 선고까지 받은 그는 "남자의 자괴감과 상실감 등 새로운 감정을 많이 느꼈다"고 이화신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남자주인공이 유방암이라는 설정에 저희 소속사도 우려하긴 했죠. 그런데 전 완전 신선하고, 독특하고, 느낌 있다고 얘기했어요. 실제로 저희 드라마를 보시고 유방암 검사를 받아 초기에 잡은 분들도 있으세요. 몽우리가 져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어쨌든 전 이런 설정 자체가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화신이 늘 수컷임을 강조하는 마초라는 게 흥미로웠어요. 나중에 시청자분들 반응을 보고 '먹혔다' 그런 생각 했죠.(웃음)"
서숙향 작가가 의도한 것 역시 마초 기자의 미묘한 매력이었다고. 조정석은 "작가님이 '화신이 나리를 무시하고 짜증 낼 때 더 매력적이다'라고 하셨다"면서 "이기적이지만 진실한 캐릭터다. 제가 다르게 이해하고 접근했다면 그런 게 잘 표현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감각적으로 느끼고 표현했던 것 같다"고 자신했다.
"예를 들면 컵라면을 얘기하면서 짜증 내는 부분이 있어요. '컵라면 없다면서'라는 대사도 거칠거나 눈이 확 돈 모습으로 하진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그 흥분과 마음이 전해지게 했죠. 저도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보통 드라마는 처음부터 대본이 다 나오진 않아서 전 초반 장면들을 보고 화신의 캐릭터를 생각해나갔죠."
본능적으로 발달한 배우의 촉은 공효진과의 탈의실 키스신에서 빛을 발했다. 호흡도 척 하면 척이었다니 올 연말 베스트커플상도 노려볼 만하다.
"어떤 장면이 리얼할지 공효진과 상의하면서 연기했어요. 탈의실 키스신에서는 둘 사이의 거리에 따라 긴장감이 달라지잖아요. 공효진이 '이 상황에선 이런 식으로…'라고 대충 말했는데 전 바로 '뭔지 알겠어' 이렇게 되는 거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연말 시상식이요? 커플상이야말로 기다려져요."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 시대 가장 핫한 남자배우로 자리매김한 조정석이다. 십수년간 다양한 무대에 서며 연기 철학을 쌓은 그는 "공연 무대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일당백을 상대하는 느낌이다 보니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하죠. 또, 무대에선 배우들의 앙상블이 잘 형성돼야 그 작품에 힘이 실리고 잘 전해지거든요. 전 그런 주의에요. 연기는 대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이 만들어가는 거지. 배우들 간의 호흡과 공기를 형성하는 데 신경써야 해요."
그래서인지 조정석이 하면 특별한 연기가 되고, 모든 대사가 공감을 자아내는 일기장처럼 느껴진다. 그의 주특기로 꼽히는 속사포 대사 비법에 대해서도 물었다.
"배우의 기본이지만 내 말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긴 대사들이 많으면 연습을 확실하게 하고 들어가죠. 대사를 외워서 입으로 내뱉고 있다는 것으로만 보이면 안 되니까요. 리듬감도 생각하고요. 그 긴 대사를 다 들어줄 만큼 집중력 있게, 볼 수 있게끔 재미있게, 구성지게 계획을 하고 작정하며 연습하고 있어요. 또, 작품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느껴야 하고 그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곧 좋은 연기죠. 제가 연극을 할 당시 연출하던 선생님께 '좋은 연기는 뭐라고 생각하냐'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요. 선생님은 '관객이 실제로 믿게 하는 게 좋은 연기가 아닐까. 10m만 걸어가면 나도 설 수 있는 공간인데, 실존하는 세상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도 그 말에 공감을 하고 항상 머릿속에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보는 분들이 믿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종영 후에도 여전히 바쁜 그는 영화 홍보 스케줄까지 마무리되면 집에서 편히 쉴 예정이다. 그간 숨 가쁘게 달려왔으니 굴로 들어가고 싶다는 그는 관객의 관심에 보답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집에서 안 나올 예정이에요. 6월부터 단 하루도 안 쉬었거든요. 잠만 자거나 집에 좀 있고 싶어요. '질투의 화신' 촬영할 땐 2~3시간씩 자고 촬영했으니까요.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종방연을 그날 했는데, 그날부터 또 지금까지 쉰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리운 거예요. 거실에서 TV 켜고 몇 시간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버티고 있는 저 자신이 짜증 났어요. 이겨내고 있는 저 자신을 바라볼 때 좀 쓰러졌으면 좋겠고…(웃음) 농담입니다. 막판에는 정말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