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럭키'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늦가을 극장가에 의미있는 흥행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대규모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나 톱스타 캐스팅으로 무장한 작품이 아닌 ‘의외의 흥행작’들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는 것. 코미디 영화 ‘럭키’(감독 이계백) 다양성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 다큐멘터리 ‘자백’(감독 최승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르도 각각 다른 이들 작품은 의미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비수기로 불리는 가을 극장가의 복병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선 유해진 주연의 ‘럭키’는 개봉 열흘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코미디 영화 중 최단기간 400만 돌파 신기록을 세웠다. 2013년 개봉한 ‘수상한 그녀’ 이후 코미디 영화로는 처음으로 4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기도 하다. 냉혹한 킬러 형욱(유해진)이 우연히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은 후 자신을 배우 지망생으로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유해진의 원맨쇼’라고 불릴 만큼 대부분을 유해진의 연기력에 기대고 있다.

언론 시사 후 호평이 쏟아지면서 어느 정도 흥행이 예측되기도 했지만 400만 돌파를 넘어 이후의 기록 경신도 예상되는 이유는 밝은 웃음을 주는 코미디에 메시지를 담은 점과 함께 ‘유해진’이라는 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쌓은 연기 내공과 최근 케이블TV tvN ‘삼시세끼’로 대중적인 호감도를 얻은 그는 마침내 ‘럭키’에서 흥행 잭팟도 터뜨리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럭키’의 한 제작관계자는 “누구나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탄탄한 각본의 코미디 영화라는 점과 주연배우 유해진에 대한 흥행파워가 맞물리면서 예상 밖의 흥행 결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노인 문제를 다룬 다양성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는 개봉 18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한 다양성 영화(한국영화) 중 ‘글로리데이’ ‘서울역’에 이은 세 번째 기록이다.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얻으며 인기가 높은 소영(윤여정)은 어느 날 단골 고객으로부터 자신을 실제로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고민에 빠진다.

실존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소재로 해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노인 자살, 빈곤, 성매매 등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봤다. 연기경력 50년의 베테랑 배우 윤여정은 성매매와 예기치 않은 살인에 맞닥뜨리게 되는 인물을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소화해냈다. 일반적으로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소재가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 데는 일흔의 나이에 연기 투혼을 보여준 윤여정의 도전정신과 과감한 소재를 스크린에 옮긴 이재용 감독의 용기에서 기인한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도 27일 10만 관객을 넘어섰다. ‘자백’은 MBC 출신의 액션 저널리스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 4개국을 넘나들며 40개월 간 추적한 스파이 조작 사건의 실체를 담았다. 정치 사회적 소재를 다룬 한국 다큐멘터리로서는 최고 흥행 기록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용산 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2012)으로 개봉 당시 7만3541명의 관객을 모았다.

MBC ‘PD수첩’ 출신으로 뉴스타파에 재직중인 최승호 감독의 끈질긴 집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3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개봉 전 4억여원을 모금해 개봉에 나선 이 작품은 상업영화에 비하면 극소수 상영관에서 출발했지만 정치, 문화, 사회, 예술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꾸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도 단체관람을 진행하는 등 의미있는 행보와 함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최순실 사건 등 국정이 어지러운 가운데 관객들이 관심도 더욱 집중됐다. ‘자백’의 한 제작관계자는 “누군가의 끈질긴 노력으로 완성된 작품이 흥행에도 성공해 기쁘다. 영화가 지니는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큰 만큼 이런 작품이 속속 나와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올 가을 극장가의 이변 사례는 계속될까? 그러나 모든 ‘이변’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비슷한 취향의 상업영화를 벗어나 뚝심있는 행보를 보인 작품들은 그래서 반갑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기존의 흥행 공식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지향해야 할 바다. 다행히 관객들이 먼저 그런 작품을 알아봐주고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영화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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