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팩 없애려 밤마다 라면 먹기도"
" 떡진 헤어스타일 위해 종일 누워 있은 적도 있어"

무용과 출신이라 춤 영화 관심… '스텝업' 보다 '블랙스완'이 내 취향

땀에 절은 제 티셔츠 소장한 팬, 소중히 간직해주길

배우 이준. 사진=프레인TPC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럭키’ 흥행이요? 방금 전에도 기사는 봤는데, 사실 체감은 못하고 있어요. 원래 반응 챙겨보는데 지금 드라마 촬영이 거의 생방송 수준이라 신경을 많이 못 썼네요.”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난 배우 이준은 인터뷰에 앞서 상기된 표정이었다. 입소문을 탄 ‘럭키’의 흥행에 이어, 마침 촬영 중인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활약’은 요즘의 이준에게 딱 맞는 문구다.

이준은 2008년 영화 ‘닌자 어쌔신’을 시작으로 드라마 ‘아이리스 2’, ‘갑동이’, ‘풍문으로 들었소’, ‘뱀파이어 탐정’ 등에서 활약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성공한 연기돌’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만큼 늘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그였지만, 유독 스크린 성적만큼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럭키’는 이준 필모그래피에서 ‘대박작’으로 새겨질듯하다. 26일 기준 누적관객수 481만을 기록하며 5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 “그동안 찍은 영화 중에서 제일 성공했죠. 사실 흥행여부에 일희일비하는 성격은 아닌데 예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아서 신기하긴 해요.”

사진=영화 '럭키' 스틸컷
유해진, 이준 주연의 ‘럭키’는 목욕탕 열쇠 때문에 운명이 바뀐 킬러와 무명배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블록버스터급 스케일도 아니고, 심오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것도 아닌 이 코믹영화가 이토록 이례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가 대체 뭘까. 이준은 ‘편안함’을 꼽았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사는 게 힘들 때 심각한 영화 보기 싫잖아요. 소소하게 터지는 매력이 엄청난 영화죠”

극중 이준이 맡은 캐릭터는 무명배우. 삶에 미련도, 의욕도 없는 인생이지만 어느 날 목욕탕에서 우연히 훔친 열쇠로 킬러의 삶을 살게 된 그는 인생 반전 기회를 얻게 된다. 이준이 그동안 연기했던 사이코패스, 뱀파이어 등 선 굵은 캐릭터에 비하면 오히려 단순할 법도 한데, 이준은 지금껏 연기한 인물 중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코미디 장르 속 심각한 인물이란 점이 어려웠어요. 무명배우, 자살시도, 남의 삶을 훔친 범죄자 이런 것만 봐도 재성의 현실이 코미디랑 거리가 멀잖아요. 자칫 비호감 캐릭터로 보일까봐 최대한 귀여워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평을 보니까 제 캐릭터를 두고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라고요. 100% 소화하지 못한 제 탓이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고민을 거듭할 만큼 쉽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그럼에도 이준이 ‘럭키’에 끌린 건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덕분이었다. “제가 원래 인터넷에서 웃긴 걸 봐도 잘 안 웃어요. 근데 이건 글로만 읽는데 육성으로 터지더라고요. '이대로만 구현되면 대박이겠다' 싶었죠.”

시나리오 선택 이후 유해진과의 작업 소식을 들은 이준은 다시 한 번 '대박'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처음 함께 촬영한 날은 몸이 떨릴 만큼 긴장했다고. “‘대체 이 웃긴 캐릭터를 누가 살릴 수 있을까’ 했는데 유해진 선배님이라면 딱 맞는 싱크로율이라고 생각했죠. 긴장한 이유는 ‘선배님께 잘 보여야지’ 이런 것보다 ‘내가 잘해야 할텐데’ 걱정했기 때문이었어요. 근데 호흡을 맞출수록 기분 좋은 떨림으로 바뀌더라고요.”

사진=영화 '럭키' 스틸컷
‘럭키’는 오프닝부터 이준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띄운다. 그는 처절한 표정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좀 씻고 다녀!”라고 윽박지르는 주인아줌마의 핀잔 한마디에 “아, 씻고 죽자”라며 목에 감긴 줄을 태연히 풀어버린다.

자살시도를 하던 순간도, 그마저 미뤄버린 순간도 재성은 정말 죽고 싶었던 걸까 혹은 그저 그렇게 살기 싫었던 걸까. 이준이 해석한 재성의 심리가 궁금했다. “제가 볼 때 재성이는 그냥 나약한 인물이에요. 진짜 죽을 용기도 없어요. 자살시도도 일종의 쇼라고 생각했어요.”

촬영 당시 손가락의 떨림, 땀 한 방울까지 신경 쓰느라 목매다는 장면만 17컷을 촬영했다는 이준. 그의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빛났다. “먼저 식스팩을 없애려고 밤마다 라면을 먹었어요. ‘거의 누워있겠지?’ 싶어서 눌린 머리를 만들었고, 런닝셔츠는 제가 직접 산거예요. 매일 입고 다니면서 땀으로 적시고, 일부러 제일 안 예쁘게 타는 크림을 구해서 태닝도 했어요. 나중엔 실제로 냄새도 났죠.”

영화 촬영 이후 런닝셔츠의 행방에 대해 묻자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제 팬분이 갖고 계실 거예요. 작년 12월에 팬미팅을 했는데 소장품 증정 이벤트가 있었어요. 고가의 옷 한 벌, 직접 만든 피규어 그리고 그 런닝셔츠를 준비했죠. 죄송한 마음에 빨래해서 드릴까 했지만, 제 노력이 담긴 걸 그대로 드리고 싶었어요. ‘영화가 잘 될테니 꼭 간직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지금도 갖고 계시겠죠?”

사진=영화 '럭키' 스틸컷
아이돌 그룹 엠블랙으로 데뷔했지만 이제 대중들에게 이준은 '배우'다.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로 출연작을 쌓다보니 어느덧 서른이 됐다. 또래 남자 배우들이 하나둘 군에 입대하는 가운데 1988년생인 이준 역시 군입대를 미룰 수 없는 상황. 이준은 “입대시기가 언제가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전에 최대한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는 게 목표”라며 “무용을 전공해서 그런지 춤을 다룬 영화, 그 중에서도 어두운 걸 좋아해요. 예를 들면 ‘스텝 업’보다는 ‘블랙 스완’이 제 취향이죠. 그런 분위기의 좋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꼭 해보고 싶어요.”라는 소망을 전했다.

올 한 해 2편의 영화에 이어 드라마까지 연달아 출연한 이준은 여전히 바쁘다. 최근 가장 ‘럭키’했던 일에 대해 묻자 “드라마 촬영장 대기실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 쉰 것”이라 대답할 만큼 숨가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배우로서 바빠졌고, 그만큼 높아진 인기에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늘어가는 고민과 연기관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전하기도 했다. “틀에 갇힐까봐 제일 두려워요. 안정적으로 잘할 수 있는 연기만 하기보다, 무리수를 던지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픈 욕망이 크거든요. 사실 얼마 전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도 주변에선 다 말렸거든요. 그럴수록 더 많은 애드립을 시도하면서 무리수를 뒀던 것 같아요. 제한적인 연기에 갇힌 배우가 되느니 차라리 욕 좀 먹고 실패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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