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수라'서 정우성 의형제·황정민 수행팀장 문선모 역

"선배들은 지독한 노력파들…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궁'같은 하이틴물 더 하지 않은 것 후회…때가 있는 듯해"

'아수라' 주지훈. 사진=CJ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김소희 기자] "설정이 과해도 설득력이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SF여도 상관 없어요. 설득력이 있다는 건 제가 그걸 보고 흥미를 느꼈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가 볼 땐 분명히 설득력이 없었는데 관객들은 좋아하면 굉장히 골치 아프더라고요. 그런 작품이요? 꽤나 많았네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아수라'는 저를 완전히 설득시킨 영화인 거죠."

28일 개봉하는 '아수라'(감독 김성수·제작 사나이픽처스)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액션영화다. 주지훈은 선망과 야심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 형사 문선모 역을 맡았다. 악인들이 판치는 '아수라'에서 유일하게 선에서 악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22일 배우 주지훈을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신 싱글벙글이다. 하루종일 진행되는 인터뷰에도 지친 내색 하나 없다. 늘 당당한 애티튜드가 주지훈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아수라' 개봉을 앞둔 그에겐 당당함에 여유로움까지 더해졌다. '솔직하다'는 느낌도 빼놓을 수 없다. 한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그가 현재 앓고 있는 불면증까지 낱낱이 밝혔다. 그와의 인터뷰의 테마는 '리얼(real)'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수라'팀은 실제로도 정말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요. 기자간담회나 제작발표회 분위기 보셨죠? 그걸 연기로 할 수 있다면 저 여기 있지 않습니다.(웃음) 제가 깐족거리는 게 화제가 됐다고요? 그렇게 해드려야 해요. 형들이 다 받아주시면서 좋아해 주세요. 저도 가끔은 쉬고 싶은데, 다들 좋아해 주시니까 힘내시라는 차원에서 더 하게 되네요."

함께 호흡을 맞춘 정우성을 비롯해 황정민,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가 대화 도중 수차례 등장했다. 말 그대로 기승전'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만으로 34세인 주지훈은 '아수라' 배우들 중 가장 막내다. 선배들의 넘치는 사랑을 기죽지 않는 연기력으로 보답했다. 역할상 10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기싸움을 펼쳐야 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대본에 써있는 대로 하면 되는데 밀릴 게 없다"고 답한다. 그답다.

'아수라' 주지훈. 사진=CJ엔터테인먼트
"김성수 감독님의 대본이 굉장히 디테일해요. 얘기도 되게 많이 나누는 스타일이세요. 또 형들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문제 없었습니다. 어차피 저희는 대본을 보고 시작하잖아요. 상황이 바뀌면, 그 분들도 저를 대하는 게 완전히 바뀌거든요. 거기서 제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저 형들이 잘 해주시니까 잘 받아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

"모든 게 형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그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수라' 촬영에 임했다. 배우들은 주지훈에 대해 "현장에서 잠을 잤다"고 폭로했지만, 집에서 대본을 숙지하고 현장에서 여유를 갖는 게 주지훈만의 긴장을 푸는 방법이라고. 원체 노력파인 주지훈은 앞서 영화 '간신'(감독 민규동) 때는 대본만 150번 보며 캐릭터를 연구했다. 그런데 오히려 '아수라' 대본은 15번 정도만 봤다. 힘을 많이 뺀 것 같다고 말하자 "덜 봤다고 말하지 않고 고급스럽게 표현해 주셔서 좋다"고 반응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까지 갖췄다.

"연기 선생님들은 '연기는 잘 하는 사람이랑 하면 는다'고들 해요. 실제로 감정을 줘버리고 제가 생각한 게 아닌 무언가가 나오게 되니까요. 저도 이번에 영화를 보니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저의 표정, 호흡들이 저절로 나오던데요. 저야 땡큐죠. 선배를 떠나서 그 분들은 그냥 귀신들이에요. 그 누구도 노력파가 아닌 선배는 없었습니다. 노력의 기준이 높을 뿐이지 연극을 20년씩 하면서 2시간 짜리 대본을 통으로 외우는 게 체화된 사람들이에요. '날 것' 연기요? 회 먹어요?(웃음) 날 것 같은 연기를 하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이 선재해야 가능해요. 노력하지 않으면 연기 잘한단 소리를 듣기는 커녕 살아남을 수 없어요. 도태됩니다."

주지훈은 "김성수 감독님과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 힘들다"고 털어놨다. 10년간 연기를 하며 최고의 난이도라고 생각되는 작품이 '아수라'인데, 짜증 나지 않고 오히려 열정에 불타오르게 만들었다고. 그 결과 아쉽지 않은 장면이 한 장면도 없다. 애정하지 않는 신도 없다. 또 자신의 캐릭터가 본인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마지막 장면 찍을 때 서른 테이크 정도 간 것 같아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감정이 너무 사진처럼 명확하게 보여서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런데 막상 찍고 보니 감정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왜이러지. 미쳤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다시 가겠다고 했어요. 우성이 형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저한테 방해될까봐 말도 한 마디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 중간에 소주 한 병 마시고 찍었어요. 감정이 너무 안 나오니까 온갖 미안함과 짜증남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빵 터져버렸거든요. 다행히 감독님이 오케이 해주셨는데요.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네요. "

'아수라' 주지훈. 사진=CJ엔터테인먼트
'아수라'의 시사회가 진행되고 '악인 어벤져스', '악인 열전'이라는 표현이 뒤따르고 있다. 다수의 욕설과 선혈이 낭자한 액션신을 향해 우려섞인 시선도 상당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기에 허용 범위는 넓지만, 영화의 폭력 수위가 과잉돼서 오히려 의미가 허무하게 남는다는 지적도 있다. 주지훈은 "좋은 평은 가슴에 담고, 나쁜 평은 지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감독님께서 '어쩔 수 없음'을 가장 리얼하고 처연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그 정도까지 해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절벽 끝으로 몰아 넣은 후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게 된다'고 말하는 거죠. 제가 허리가 안 좋고 잠도 잘 못자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병이어서 눈치가 엄청 보여요. 직장인들은 더 하겠죠. 그런데 이게 삶의 질을 엄청나게 떨어뜨립니다. 그러다가 상태가 악화되는 거고. 정말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을 때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영화예요. 현재 수위도 많이 낮춘 거예요. 토론토 영화제 버전은 조금 더 잔인합니다. 인물에게 더 큰 쇼크를 주기 위해서인데요. 우려하신 것처럼 수위가 너무 세버리면 관객들이 미장센에 가려 감정을 못 보게 될 것 같아 수정하신 것 같아요."

주지훈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을 팬들에게 주는 선물 차원에서 하고 있다. "우성이 형도 하는데 제가 뭐라고 안 하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재'이기 때문에 아직도 카페에서 셀카를 찍는 건 너무나도 힘들다고. '아재'란 표현을 들으면 형들이 서운해 할 것 같다고 하자 '아재st'라고 정정하더니, '아수라'팀과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전한다.

"저도 술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저는 짧고 굵은 1차를 선호해요. 그런데 형들은 1, 2, 3차 다 가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저는 형들에게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간 적이 없어요. 화장실 간다고 하고 도망치기 일쑤죠. 형들이 정말 착한 게 아무도 뭐라고 안 하세요. 어제도 도망쳤어요. 아, 저 부산에서도 도망친 적 있어요. 우성이 형, 감독님이랑 부산 동네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막 놀다가 눈을 떴는데 집이었어요.(웃음) '아수라'팀은 배려그룹이에요. 배려 5인조요."

데뷔 11년을 맞이하는 주지훈은 최근 데뷔작 '궁'을 다시 보며 '흐뭇함'을 느꼈다. 작품이 싫은 것도, 왕자 캐릭터가 싫은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 가장 부족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해 그동안 치부로만 여겼다. 30대 중반인 이제는 오히려 20대 때 '궁'과 같은 하이틴물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이제 '궁'같은 작품을 하려면 괴리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이 제가 교복을 입은 모습을 완전히 이해하시기란 힘들잖아요. 그때는 '다음에도 또 할 수 있겠지'란 생각에 하지 않았는데 그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40대도 청춘이라고 하지만, 외관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니까요. 저 35살인데, 형들 옆에 있으면 완전 애로 보이잖아요. 연륜에서 오는 아우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일도 열심히 하려고 하고 많이 하려고 해요. '지금 하자' 주의가 된 거죠."

20대에서 30대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또 있다. 이제는 20대 만큼 화낼 기운도 없다는 것. 평소에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하는지 묻자 "아니다. 되게 미워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어릴 때는 싸우고 몇 년 씩 안 봤다면, 이제는 상처를 받아도 다음날 전화가 오면 '밥 먹었냐'고 묻게 된다. 그는 "내가 불편한 만큼 그도 불편할 텐데, 그가 제게 먼저 전화를 해주는 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와 연결해 연인 가인에 대해 묻자 말을 아꼈다. "이 영화 제작비만 110억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아수라'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소주 한 잔 하면서 이 영화에 본인을 대입했으면 좋겠어요. 두시간 십분 정도의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채워줄 수 있다면 뿌듯할 것 같아요. 이 영화에 대해 나빴다는 말도 괜찮아요. 어떤 문화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는 건 좋은 문화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얘기를 하는 게 결국 스스로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거예요. 왜냐, 자기가 즐기는 거잖아요. 아무것도 없이 '멍'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멍때리기 대회가 인기겠죠.(웃음) 어쨌든 영화가 안 좋으면 아무 얘기도 안 하잖아요. 저번주에 뭐 봤냐고 물어봤는데 '뭐였더라' 라고 하면 골치 아프죠. 말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 잘못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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