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분위기와 심리저 깊이를 갖춘 히치콕 스타일의 치정살인 필름 느와르로 피곤에 지친 모습을 한 주연 여우 잔느 모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다. 프랑스의 명장 루이 말르가 24세 때 만든 첫 영화로 누벨 바그의 문을 열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여름 철 파리 흐린 토요일 하오 7시. 공중전화 부스에서 플로랑스(모로)가 자신의 정부 쥘리앙(모리스 로네)에게 군수품 제조회사 사장인 나이 먹은 자기 남편 시몽을 죽이라고 조른다. 그리고 둘은 30분 후 단골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다.
시몽의 부하직원으로 낙하산부대 출신인 쥘리앙은 밧줄을 타고 자기 사무실 위층의 사장실에 침입, 권총으로 시몽을 살해한다. 밖으로 나온 쥘리앙이 회사 앞에 세워둔 차에 시동을 걸고 따나려는 순간 자기 사무실 창 밖에 걸린 밧줄이 눈에 띈다. 밧줄을 회수하러 쥘리앙이 다시 회사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 경비원이 전원을 끄고 퇴근한다.
이 때부터 쥘리앙이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하려고 애를 쓰는 긴장감 가득한 장면과 카페에 나타나지 않은 쥘리앙을 찾아 비가 내리는 텅 빈 파리시내를 밤새 걸어 다니는 플로랑스의 허무한 모습이 교차된다. 그리고 열쇠가 꽂혀있는 쥘리앙의 차를 쥘리앙의 회사 앞 꽃가게 여종업원 베로니크와 그녀의 애인 루이가 훔쳐 타고 달아나면서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난다.
대단히 절제된 영화로 거의 침묵 속에 서술되는데 이 것을 깨는 소리가 독백으로 전달되는 플로랑스의 내면 언어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트럼핏소리. 고독한 트럼핏 소리가 영화의 무드를 짙게 채색한다. 데이비스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말르의 부탁으로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그리고 앙리 드카에가 흑백으로 찍은 매우 어두운 안적이 끊긴 밤의 파리의 공허가 황홀하다.
영화에서 플로랑스와 쥘리앙은 한번도 직접 만나지 않는다. 둘은 영화 끝에 물 속의 현상된 사진에서 포옹한채 만난다. 그리고 플로랑스는 “10년, 20년. 난 이제부터 늙을거야. 이제부터 잠들거야. 그러나 우리는 함께야. 우릴 떼어놓을 수는 없어.”라고 독백한다.
모로가 참으로 유혹적이다. 그늘진 얼굴, 감정 잃은 눈동자, 양끝이 아래로 처진 농염한 입술 그리고 짙은 안개처럼 가라앉은 나른한 음성. 모로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인처럼 보여 보는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그녀를 위해 살인도 저지를만한 유혹이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가 복원된 필름으로 오는 18일까지 뉴아트극장(11272 산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회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