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 역 맡아

"20년지기 정우성? 이젠 대표님… 아직도 존댓말 써요"

'드라마·독립영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스포츠한국 이동건 기자] 꼭 두 번 사는 것 같다.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로 전국의 여심을 휩쓴 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어린 여학생들이 그를 향해 새로운 순애보를 키운다. "얼굴에 김 묻었어요"라는 한 팬의 말 덕분에 '잘생김'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정재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인기와 평단의 호평을 두루 챙기며 필모그래피를 수놓고 있다. 이번에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27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의 불리한 전황을 한순간에 뒤집은 동명의 작전을 영화화한 작품. 성공률이 5000대 1에 불과한 작전을 기획한 맥아더 장군과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첩보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이정재가 26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둔 26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재를 만났다. 40대 아이돌답게 갸름한 얼굴에는 잘생김이 군데군데 붙었고, 세월의 흐름 따라 생긴 눈가 주름은 정성스럽게 심어놓은 듯 매력적이었다. '도둑들'(2012)의 비열한 뽀빠이, '신세계'(2013)의 고뇌하는 언더커버, '관상'(2013)의 냉혹한 수양대군, '암살'(2015) 속 독립투사들의 배신자 염석진이 모두 이 얼굴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묵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 역에 도전했다.

이정재는 영화 '하녀'(2010)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뒤 출연작마다 하나같이 흥행 물살을 탔다. 작품 선택에 남다른 감이 있는 것인지 묻자 그는 웃음 섞인 손사래를 쳤다.

"그랬다면 '빅 매치'(2014)도 잘 됐겠죠. 잘될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흥행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6~700만 정도 갔으면 좋겠어요. 웬만한 영화도 1~200만 넘기기가 쉽지 않잖아요. 700만 정도면 어마어마한 스코어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개봉을 앞둔 떨림은 비슷하네요."

데뷔 24년 차에도 새로운 떨림으로 취재 현장에 참석해왔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라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에 이정재는 대신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이재한 감독과 제작사 정태원 대표가 전작 '포화 속으로'를 만들 당시 의미적으로 좋은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애국심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해요. 색깔론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되니까 두 분은 당황스러웠나 봐요.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진정한 의도는 뒤로 밀리고 다른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그런 일을 겪다 보니 (두 사람이) 이번 작품에서 그런 말은 나오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영화를 최대한 세련되고 매끄럽게 흘러갈 수 있게끔 만들자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고요. 의도가 퇴색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죠. 물론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와 의도는 애국이 분명해요. 그렇다고 애국하자는 것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걸 얼마나 촌스럽게 강요했느냐가 나쁜 거지. 한번 경험해봤고 관객분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보겠다고 하시니 '그럼 저도 한 번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호국영웅들을 기리는 의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인천상륙작전'은 오락성이 탄탄한 작품이라고 이정재는 자부했다. 이범수, 박철민, 정준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가세했기에 볼거리가 풍부해졌고, 여기에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과의 호흡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크랭크인 당시부터 빠질 수 없는 화젯거리였다. 지난 13일 내한 기자회견을 가진 리암 니슨은 이정재에 대해 "진정한 배우"라고 극찬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리암 니슨은 워낙 젠틀한 분이라서 '사람 기분 좋게 만들려고 하신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잠깐 티타임을 가졌는데요. 잘했다고 또 한 번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편집본을 봤는데 정말 좋았다'고 격려해줬어요."

갈수록 연기가 재밌어진다는 그에겐 일을 꾸준히, 오래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이번 작품 이후에도 이정재는 차기작 촬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최근 크랭크인한 영화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부터 8월 말 촬영이 시작되는 '대립군'(감독 정윤철)까지 스크린 행보는 계속된다. 다만 2009년 '트리플'을 기점으로 드라마 출연은 뚝 끊긴 상태다. 스크린으로만 작품 활동을 펼칠 계획인지 묻자 이정재는 "아뇨. 요즘에 재미난 드라마들이 많잖아요. tvN도 그렇고…"라면서 이내 멈칫, 다른 채널을 의식한다. "케이블 쪽도 그렇고. 종편도 그렇고.(웃음)"

"의외로 TV 쪽에서 영화만큼 많은 제안이 오지 않아요. 영화 제작회수보다 드라마 제작회수가 훨씬 많을 텐데, 영화 시나리오가 10개 들어오면 방송국 시나리오는 1개 들어올까 말까에요. 저 사람은 'TV 드라마 안 하겠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저도 드라마를 해봤기 때문에 드라마의 묘미를 알죠. 영화는 두 시간만 지나면 끝나는데 드라마는 시리즈로 나오는 재미가 있으니까. 그런데 제안도 적고, 이 안에서 찾으려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실로 그의 관심 반경은 드라마뿐 아니라 조명받지 못하는 저예산 영화까지 뻗어있다고.

"독립영화도 좋아요. 일정만 맞는다면 하고 싶어요. '이정재가 이런 걸 하겠어?'라는 생각 때문에 제안이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는데, 좋은 취지와 프로젝트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이정재는 현재 절친 정우성과 함께 설립한 아티스트컴퍼니의 이사로 있다. 좋은 신인배우들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차린 회사이기 때문에 큰 부담감은 없다는 그는 신예배우 영입 계획을 물어도 조급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연기자들을 빨리 영입해야겠다는 계획은 없고요. 시간을 더 천천히 가져서 신인들 위주로 미팅을 해보고, 저희의 경험치와 조언이 필요한 후배들과 일을 하려고 해요. 그게 저희의 취지이기도 하고 회사를 크게 키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서요. 급하게 뭘 해야 한다는 건 없어요. 저희만 일하기도 바쁘니까요.(웃음) 누군가 추천을 해주신다거나, 도와달라는 신인이 있다면 같이 상의하고 색깔이 맞는지 따져보고 영입해야죠."

두 사람의 직급은 회사 운영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뉘어 이정재가 이사, 정우성이 대표를 맡게 됐다. 20년지기 절친이지만 일적으로 빚어지는 마찰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판단을 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보편적인 옳고 그름이 있잖아요. 큰 틀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어요. 다만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해 다른 구석은 있는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저희 둘은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그래서 오랜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게 이렇게 일하는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아요. 되도록 상대방의 결정에 맞추려고 하고… 20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아직도 존댓말을 쓰고 있어요. 이젠 말을 못 놓지 않을까요. 정우성이 대표님이니까요.(웃음)"

한 엔터테인먼트의 이사이자 굵직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에게 연기 영역 밖의 자문까지 구하는 이들이 요즘들어 부쩍 많아졌다. 그간 촬영 현장과 작품 속 캐릭터에서 부각된 리더 기질은 그로 하여금 기대고 싶게 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부탁에 이정재는 감히 조언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솔직히 나이가 들다 보니 후배들이나 경험이 부족한 영화인들이 조언 아닌 조언을 얻으려고 해요. 그런데 사실 제가 배우 이외의 무언가를 집중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조언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전 단지 연기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일에 치중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제가 꼭 어떤 영화인이나 배우가 되겠다는 건 아닌데요. 요즘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좋은 일도 많이 생기는 것 같고, 좋은 일이 생기다 보니 연기도 재밌어지고 흥미가 생겨요. 지금처럼 일을 꾸준히 오래 했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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