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아가씨'에서 매력덩어리 사기꾼 백작 역 열연
김민희가 오묘한 고양이라면 김태리는 귀여운 강아지
칸국제영화제에서 초심을 함께한 윤종빈 감독 떠올렸다

하정우,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배우 하정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사람이다. 수많은 흥행 영화와 꾸준한 인기, 유명세, 돈보다 그가 더 귀중하게 여기는 건 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과 촬영장에서 같은 꿈을 나누는 동료들, 항상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는 가족이다.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 용필름)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에게 인터뷰도 단순한 일이 아닌 교감의 기회다. 다른 배우들처럼 하고 싶은 말만 기계적으로 줄줄이 읊어대는 게 아니라 기자들과 일일이 소통하면서 자신의 열정과 꿈을 대중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런 인간미가 대중이 하정우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화제를 모은 영화 '아가씨'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귀족 아가씨와 그 재산을 노리는 백작의 사주로 아가씨에게 다가갔다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버린 하녀의 사랑을 그린 러브 스토리. 하정우는 극에 긴장감을 돋우는 사랑스러운 옴므파탈 백작 역을 맡아 기대대로 매끄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현재 하정우의 내면에 자리 잡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백작=백작은 일본인 귀족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제주도 머슴과 무당 사이에서 태어난 철저한 사기꾼. 타고난 영리함과 노련한 처세술,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수많은 여성들을 사로잡는다. 하정우는 백작 캐릭터에 특유의 유머감각을 첨가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가씨’에서 백작은 장치적인 캐릭터. 두 여자의 러브스토리를 다루는 영화답게 주인공은 김민희와 김태리다. 그러나 그는 박찬욱 감독의 인간미와 재미있는 캐릭터에 반해 출연을 결심했다.

“백작은 정말 정확한 캐릭터였어요. 어찌 보면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비슷한 면도 있죠. 박찬욱 감독님의 명확한 색깔에 저의 리듬감이 투입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정했어요. 그러나 예상과 달리 쉽지 않았어요. 익숙한 캐릭터이지만 박찬욱 감독의 리듬에선 충돌이 일어나더라고요. 문어체 대사에 일본어 대사가 반 이상이 돼서 애를 좀 먹었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면에서 박감독님과 코드가 잘 맞았어요. 사람을 중요시하는 면이 비슷해요. 저도 데뷔 때부터 함께 일한 사람들과 지금까지 계속 하는데 박감독님도 ‘올드보이’ 때부터 함께한 분들과 일을 같이 하시더라고요.”

하정우,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김민희와 김태리=영화 속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백작은 앙큼한 아가씨와 하녀들에게 계속 굴욕을 당한다. 하정우는 두 후배 여배우를 이끌며 영화의 중심축 역할을 제대로 한다. 촬영장에서 그는 파격적인 캐릭터 때문에 마음과 몸 고생을 한 두 여배우를 항상 보호해주고 챙겨주는 따뜻한 선배이자 큰 오빠 같은 존재였다. 하정우는 두 여배우의 연기와 매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민희는 정말 오묘한 매력이 있어요. 또한 김태리는 정말 살아 숨쉬는 매력이 있죠. 그림으로 두 사람을 표현하면 김태리는 사실주의, 김민희는 표현주의 그림이라고 하고 싶어요. 촬영장에서도 두 사람의 모습은 달라요. 김민희가 분장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 느낌이라면 태리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강아지 같았어요. 이렇게 서로 다르기에 잘 안 맞을 것 같았는데 함께 있으니 케미가 강력해지더라고요. 노출 장면이 있을 때는 선배로서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거창한 건 없어요. 마음에 상처받지 않게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챙겨주는 거죠.”

#윤종빈 감독=하정우는 몇 주 전 ‘아가씨’ 덕분에 오랜만에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유일하게 하루 쉬는 날 칸 거리를 10년 넘게 함께 일한 친구이자 헤어 스태프와 6시간 동안이나 걸으면서 10년 전 윤종빈 감독과 ‘용서받지 못한 자’로 칸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단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젊고 꿈이 많았던 시절에 함께 동고동락한 윤종빈 감독에 대한 애정을 다시 확인했다.

“그땐 국적기도 못 타고 가장 싼 티켓을 골라서 사서 갔어요. 칸에 숙소를 못 얻어 니스에서 짐을 풀고 출퇴근했죠. 니스에서 턱시도를 입고 칸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 온몸이 땀 범벅이 됐는데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가서 에어컨 바람 쐬며 몸을 말리곤 했어요. 그리고 나서 여기저기 파티 쫓아다니며 밥과 술을 얻어 먹고 다녔죠. 그리고 나서 새벽에 버스 정류장에 앉아 윤종빈 감독과 10년 후에 꼭 경쟁부문으로 다시 오자고 다짐했었어요. 이번에 ‘아가씨’로 레드카펫을 밟는데 윤종빈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바닷가를 거닐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잘 가고 있는 건지, 영혼 없이 그냥 살고 있는 게 아닌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한국에 오자마자 윤종빈을 만나 우정다짐을 했어요. 다시 함께 한번 가아죠. 꼭!”

#김용화 감독=하정우가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는 건 차기작 선정 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가씨’ 이외에도 오는 8월 영화 ‘터널’ 개봉을 앞둔 하정우는 현재 ‘국가대표’에서 환상의 호흡을 맞춘 김용화 감독의 차기작 ‘신과 함께’ 촬영을 준비 중이다. ‘신과 함께’ 출연 결정은 김용화 감독과의 약속에서 시작됐다.

하정우,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2013년도에 김용화 감독님의 ‘미스터 고’가 개봉돼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을 때 ‘더 테러 라이브’가 얼마후 개봉됐는데 흥행이 잘 됐어요. 왠지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아갔는데 감독님이 예상과 달리 의연하시더라고요. 속은 뒤집어졌을 수도 있겠지만.(웃음) 그때 맥주 마시면서 ‘내가 형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다음 작품은 무조건 출연한 테니 나를 1번으로 생각해라. 그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것 저것 준비하시다 ‘신과 함께’를 가져오셔서 두 말 않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게 두 편이 됐네요. 1부와 2부로 나눠서 개봉할 예정이어서 무려 8개월이나 촬영해야 해요. 다시 함께하게 돼 기쁘고 무척 재미있는 촬영이 될 것 같아요.”

하정우,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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