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외모 자체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곡성’의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은 가만히 있어도 강렬한 예술가의 포스가 느껴졌다.

텁수룩한 수염과 선굵은 남성적인 이목구비 탓에 마초일 거라는 만나기 전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문과 달리 여린 구석이 많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였다. 스포일러가 많은 영화 특성상 모든 질문에 말 한마디마다 조심스러워하고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는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등 귀여운 구석도 많았다.

개봉 후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보이고 있는 영화 ‘곡성’은 평온했던 마을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모든 원인이 외지인(쿠니무라 준)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 스릴러 영화.

두 번째 영화 ‘황해’의 실패 후 나감독이 6년 동안 절치부심해 만들어낸 야심작이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나감독만의 강렬한 영화적 색깔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갈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남자 나감독의 내면 속 키위드를 살펴보았다.

#궁금증=‘개봉 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영화 속 다양한 설정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쏟아지는 은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오면서 영화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결말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나감독은 이런 다양한 논란과 해석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들려주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지인이나 친지들의 장례식에 갈일이 많아졌어요. 슬프더라고요. 어떻게 돌아 가신지는 알겠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존재의 소멸에 대한 질문을 누구에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범주 안에서 대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어요. 그때 신이 떠올랐습니다. 신이라면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자신을 증명해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한 신이 과연 선한 분인지 악한 분인지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이런 생각이 이 영화의 출발이었어요. 결말에 대해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자신의 신조, 믿음대로 영화가 달리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봉했으니 관객분들이 자유롭게 보시면서 서로 토론하셨으면 좋겠어요.”

#잔혹성=나감독의 작품들은 열렬한 팬들을 양산했지만 일관된 폭력과 잔혹성 탓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스릴러 장르의 특성이라고 하지만 그의 영화에 나오는 폭력은 일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곡성’이 공개되기 전 제작보고회에서 나감독은 '15세 관람가'등급에 맞게 표현수위를 완화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피는 안 나오지만 공포감의 세기는 더 강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표현 방식이 좀더 세련돼진 것이라는 게 중론. 나감독은 이런 평가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감독이 일관적인 표현방식이 있습니다.어떤 감독님들은 다양한 장르를 잇달아 연출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넓혀가지만 전 특정한 장르를 하면서 더 깊이 파고들어 가는 걸 더욱 선호합니다. 한 장르를 깊이 있게 경험하고 학습하다보면 그 장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세 편 했는데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꾸준히 자신의 색깔을 가져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일흔이 넘어 만든 영화를 보면 정말 놀랐습니다. 많이 배우죠. 제가 스릴러에 집중하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작가적인 개성이라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배우들=‘곡성’이 어려운 주제에도 관객들을 몰입시킬 수 있던 건 배우들의 명연기 때문. 나홍진 감독이 화가라면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등 배우들은 물감과 붓이 돼 격정적인 터치가 살아 숨 쉬는 야수파 화가의 풍경화를 만들었다. 나감독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준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는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천우희가 연기한 캐릭터 무명에 대한 설명부터 들려주었다.

“우리가 해외 영화나 TV 시리즈에서 신을 만나는 공간은 느낌이 다르잖아요. 어떻게 한국의 신을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곡성의 대자연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 자연의 신성함을 무명에게 담고 싶었습니다. 그걸 품어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죠. 천우희는 그런 힘과 품격을 갖고 있는 배우였습니다. 정말 대사를 툭툭 던지는데 대자연처럼 강렬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곽도원은 ‘황해’ 때 연기가 좋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대사 하나하나에 매치되는 사람을 찾다보니 곽도원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해 연기했습니다. 제가 됐다고 하는데 꼭 한번 더 가자고 조르곤 했죠. 쿠니무라 준은 영화 ‘아웃레인지’에서 처음 봤는데 한 컷에서 변검을 하듯이 얼굴이 여러 번 바뀌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외지인 캐릭터에 딱 들어맞았어요.”

#겁쟁이=나홍진 감독은 영화적 특성 때문에 인간적으로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그가 ‘스너프 영화 마니아다’라는 소문부터 영화 속 결말부 때문에 무신론자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많은 논란과 소문을 불러일으키는 말 그대로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인물인 것. 그는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폭소를 터뜨렸다.

“사실 전 매우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이 만든 스릴러 영화나 공포물은 무서워서 절대 보지 못해요. 한 번은 무서운 영화인지 모르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전혀 모르는 옆 사람 손을 잡은 적도 있어요. DVD로 보면 무서운 장면 나오면 꺼버리고 빨리 돌려서 보곤 하죠. 무신론자냐고요? 저 기독교 신자입니다. 가족들도 교회에 다니고요. 시사회 때 어머니가 목사님과 함께 오셨는데 나이가 드신 분들이니 제 의도를 오해할까 걱정했어요. 그러나 모두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며 잘 봤다고 말씀해주셔서 마음을 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내 의도가 이쪽에 있다면 이렇게 보일 거고 저쪽에 있다면 다르게 보일 영화입니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차기작은 정말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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