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156분이란 긴 러닝타임 동안 입에서 ‘악’ 소리가 저절로 여러 번 나온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곡성’(제작 사이드미러, 폭스인터내설 프로덕션)은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 보기 힘들 작품이다. ‘걸작’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스릴러의 묘미라면 감독과 관객의 두뇌싸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란 문구가 생각나게 할 만큼 나홍진 감독은 관객들의 심장과 뇌, 숨소리까지 조련하면서 완승을 거둔다. 패배를 당한 관객들의 기분은 절대 나쁘지 않다. 처음에 나홍진 감독의 잔인한 개성에 대한 불평이 나오다가도 기대한 것 이상의 만족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결국엔 미소를 짓게 된다. ‘곡성’을 보면서 관객들의 입에서 나올 만한 감탄사를 모아봤다.

#도대체 뭐야?=영화는 평온했던 마을에 낯선 외지인(쿠나무라 준)이 나타난 후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경찰은 모든 사건의 원인을 야생 버섯 중독으로 결론 내리지만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돌기 시작한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프자 딸을 살리기 위해 사건의 중심에 들어간다. 그러나 인생은 낙장불입!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는 잔인한 지옥불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간다. 원인을 파헤쳐 들어갈수록 상상을 할 수 없던 추악한 진실에 다가가고 모두가 경악할 만한 결말부를 향해 영화는 폭주한다.

#안 잔인하다며?=허를 찌르는 반전의 연속이기 때문에 스토리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불가능하다. 되도록 많은 정보 없이 보러 가는 게 좋을 듯. 그러나 최고 난이도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아찔한 경험을 할 것이라는 건 확신한다. 나홍진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표현수위를 전작들보다 낮췄다고 공언했지만 그건 감독의 착각이다. 표현방식이 세련돼 졌을 뿐이다. 피가 흥건하지 않아도 화면에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아주 많다. ‘15세 관람가’ 등급에 속으면 절대 안 된다. 진짜 무섭다.

영화 초반부터 스멀스멀 발 밑부터 기어오르는 공포와 긴장감은 중반부터 심장을 파고들고 결말에는 영혼까지 잠식당한 기분이 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몸 안에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 나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다. 극장에는 “미쳤어~” “오늘 밤 잠 다 잤네”, “나홍진 괴물이야”란 찬사와 탄식이 가득하다. 영화를 본 후 나홍진 감독의 뇌 속과 성장과정이 궁금해질 관객이 많을 듯하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나홍진 감독은 영화 내내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성경 누가복음 24장 38절로 시작된 영화는 샤머니즘과 기독교, 천주교, 악마 등을 등장시키면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또한 인생에 꼭 필요한 믿음은 과연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지역색이 가득 한 코미디로 시작된 영화는 중반 이후 스릴러의 구색을 확실히 갖추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공포 오컬트, 좀비 장르까지 뒤섞으면서 관객들을 정신적 멘붕 상태에 빠트린다.

영화의 주인공 종구는 비극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고 일은 갈수록 꼬여만 간다. 그런 모습에서 나감독은 비극의 원인은 결코 피해자에게 있지 않고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결말에 정신적 안정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인생의 잔인함을 톡톡히 일깨워주며 무력감과 허탈함을 세트로 묶어 안겨준다.

#연기 진짜 잘한다!=배우들은 이름값을 확실히 한다. 곽도원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연배우로서 책무를 확실히 한다. 영화 초반부 어수룩한 시골 경찰의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다가 딸을 살리기 위해 의도치 않게 지옥 문을 열면서부터는 애절한 부정을 절절하게 그려나간다. 관객들이 비극이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결말에 최악의 비극을 당한 후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진 그의 공허한 눈빛은 뇌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박수무당 일광을 연기한 황정민은 중반 이후 등장하지만 비중에 상관없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믿고 보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인증한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 새살이 드러나듯이 미스터리한 다층적인 캐릭터를 얄밉도록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을 충격의 현장에 초대한다.

쿠나무라 준과 천우희의 연기도 두 말 할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스포일러가 많은 캐릭터여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미친 존재감’이란 신조어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한다. 출연 분량이 예상보다 적은 천우희의 마지막 장면 명연기는 오랫동안 회자될 만하다. 영화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아역 김환희의 연기도 압권이다. 천진한 얼굴로 실감나게 표현한 신들린 연기는 탄성을 자아낸다. 미래에 대단한 배우가 될 것 같은 '괴물 아역'의 탄생이다.

#이 감독 미쳤어!=‘곡성’은 결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지옥체험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홍진 감독의 놀라운 상상력과 천재적인 연출력, 배우들의 명연기, 묵직한 주제의식의 향연은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마주하기 힘든 잔인한 현실을 담은 나홍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이 무시무시한 폭주를 경험하면 결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장이 될 만한 천재 감독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도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체험에 합류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웰컴투 나홍진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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