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 '해어화'서 조선시대 마지막 기생 소율 열 열연
서른이 되니 일만 하고 '애어른'처럼 살았던 20대가 아쉬워
사랑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궁금한 존재 "언제 올까?"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느낌이었다.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 제작 더 램프)의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한효주는 생기발랄한 20대 초반 소녀의 느낌이었다. 이제 그의 앞에 놓여진 ‘서른’이란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사실 한효주는 데뷔 때부터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이미지 때문에 ‘애어른’의 느낌이 강했다. 고전적인 외모에 단아하고 절제된 이미지가 쉽게 다가서기 힘든 ‘아우라’를 만들었던 것.

그러나 서른을 넘긴 한효주는 한결 편안하면서 친근한 매력이 가득했다. 예전에 상상할 수 없던 애교와 어리광이 늘었다는 주위 스태프들의 증언이 빈말은 아닌 듯했다. 20대에 배우로서 거둔 놀라운 성공. 거기에 닥쳐온 뜻하지 않은 인생의 파고. 진했던 아홉수를 넘기며 서른이 된 한효주는 원점에서 자신을 해체해 하나씩 재조립하며 인생의 행복을 찾고 있었다. 질긴 성장통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한효주의 미소가 더욱 아름다운 이유다.

“영화 속에서 제가 연기한 소율이 마지막에 ‘왜 그땐 몰랐을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누구나 정말 지나기 전엔 그 시절의 소중함을 잘 몰라요. 전 20대 어렸을 때 어리게 살지 못했어요.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하다 보니 언제나 무언가를 책임져야 했어요. 작품이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죠.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어리광도 부려 보고 실수도 해봤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럴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요즘 어리광을 더 열심히 부려요.(웃음)”

‘해어화’는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서로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노래에 대한 열정과 한 남자를 두고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던 두 여자의 대립을 그린 시대극. 한효주는 재능과 미모를 모두 갖춘 예인이자 조선의 마지막 기생 정소율 역을 맡아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연기한다. 순수한 소녀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들의 배신으로 인한 복수의 화신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열연했다. 한효주는 모든 걸 다 가진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게 허상이었던 걸 깨닫는 소율의 상실감을 가슴 절절하게 형상화해 낸다.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톱스타의 삶에서 경험해본 감정이기에 더욱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이 영화를 처음 설명할 때 ‘모차르트 대 살리에르’가 아닌 ‘모차르트 대 모차르트’의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가슴에 딱 와 닿더라고요. 저도 연기생활을 하면서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그저 잘하고 싶어 달렸는데 도착점에 닿았을 때 그것이 답이 아닌 걸 깨달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질투심을 안 느끼고 살 수 없어요. 그러나 그 감정이 다가올 때 전 피해가는 스타일이에요. 누구는 자극이 될 수 있다 말하지만 전 안 좋은 에너지로 돌아오더라고요. 될 수 있는 한 내 몸 안에 좋은 감정만 갖고 살려고 노력해요.”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한효주와 천우희는 ‘해어화’에서 치열한 연기대결을 펼친다. 전작 ‘뷰티 인사이드’에서 절절하게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진한 우정과 질투, 애증이 오가다 파국에 맞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나간다. 한효주는 천우희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동료배우로서 존경심을 드러냈다. 연적인 캐릭터 특성상 촬영 내내 거리를 두다가 끝날 때쯤에야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고.

“천우희는 배우로서 정말 칭찬할 것밖에 없어요. 영화 ‘한공주’를 보고 연기를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함께 영화를 연달아 호흡을 맞춰보니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촬영 기간에는 서로 장난을 치고 꽁냥꽁냥 친하게 지낼 순 없었어요. 거리를 두는 게 서로에 대한 배려였죠. 끝날 때쯤에야 서로 맥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우희가 ‘한공주’로 청룡상을 탔을 때 내가 전년 수상자여서 시상을 맡았어요. 전날 밤새우며 함께 촬영했는데 ‘내일 니가 상을 꼭 탔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런데 진짜 타니 정말 기뻤어요. 같은 영화를 찍는 동료로서 내가 주게 되니 더 감격스럽더라고요.”

한효주는 영화 속에서 다재 다능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낸다. 조선시대 마지막 기생 역할을 맞추기 위해 노래와 춤을 공부했다. 특히 정가부터 유행가 등 다양한 장르를 멋들어지게 소화해내는 모습에서 그동안의 노력이 제대로 드러난다.

“노래에 대한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촬영 전 연습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배우는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즐거웠어요.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무언가를 정복해가는 느낌이 들어 항상 재미있어요. ‘해어화’에선 정가라는 장르를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천우희가 부른 유행가를 부를 때가 더 힘들었죠. 정가는 사람들이 잘 모르기에 잘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까 부담이 적었는데 유행가는 비교할 대상들이 많잖아요. 우희가 진짜 힘들었을 거예요.”

충무로에서 20대 여배우가 여배우 중심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는 건 매우 드문 일. 한효주는 지난해 ‘뷰티인사이드’부터 ‘해어화’까지 잇달아 동료 여배우들이 부러워할 만한 기회를 손안에 쥐었다. 이는 한효주에 대한 영화계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뷰티인사이드’는 멜로장르로서는 드물게 지난해 여름 극장가에서 선전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더 많은 제작비가 든 ‘해어화’가 4월 비수기 극장가에서 얼마나 선전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분명히 책임감을 느끼고 부담감이 있죠. ‘뷰티 인사이드’에 출연할 때도 이 영화가 잘 만들어져 성공한다면 여배우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더 많은 작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해어화’도 여배우로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시나리오였어요. 정말 잘 돼서 여배우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한효주는 오는 7월 MBC 수목드라마 ‘더블유’(극본 송재정, 연출 정대윤)으로 6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다. ‘해어화’ 홍보를 마치면 곧장 촬영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데뷔 이후 별다른 스캔들 없이 쉼없이 달려왔던 한효주. 여자로서의 행복, 즉 사랑에 대한 열망은 없는 것일까? 덧없는 사랑에 피눈물 쏟았던 ‘해어화’ 속 정소율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사랑에 대해선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사랑은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게 진짜 사랑인지 잘 모르겠어요. 도무지 사랑이 무엇인지. 또한 그런 사랑이 나에게는 언제 다가올지 정말 궁금해요. 많이 기다렸거든요.(웃음) 드라마는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었어요. 만약 하게 된다면 진짜 드라마만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드라마틱하고 스피디한 걸 하고 싶었는데 이게 딱 그랬어요. 대본이 정말 재미있어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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