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나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언제까지나 귀여운 꼬마 소녀일 줄만 알았던 심은경은 어느덧 데뷔 13년차, 20대 초반의 숙녀로 자라나 있었다. 그간 배우로서 부침을 겪으며 자의식도 훌쩍 성장한 듯한 그의 선택은 뜻밖에도 스릴러 영화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 제작 (주)영화사 수작, 10일 개봉)였다.

15년 전 살인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녀가 연쇄살인마와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어둡고도 슬프고 잔인하다. 극중 심은경은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15년간 복수의 칼날을 가는 남희주 역으로 분해 극을 이끌어간다. 또래들보다 앞서 주연급 배우로 자리를 굳힌 그가 20대 초반 여배우들이 흔히 택하는 트렌디함이나 로맨스물과는 동떨어진 선택을 한 이유는 뭘까? 최근 2년 사이 "연기 자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는 그는 "배우뿐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들려주었다.

"순수성과 잔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끌렸어요. 아버지를 잃고 홀로 살아온 소녀 희주는 때묻지 않은 인물이지만 15년 동안 복수를 꿈꾸는 집요함도 지니고 있죠.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가며 희주의 복수가 행해지는 장면에서 풍기는 이상한 기운에 왠지 호기심이 일었다고 할까요? 소녀같은 눈망울을 지녔지만 내면에는 섬뜩한 광기를 담고 있는 소녀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죠."

실제로 스릴러와 호러 장르의 광팬이라는 그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장르에 도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심은경.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영화 '렛미인' 속 오스칼과 이엘리의 감성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속을 알 수 없는 소년 오스칼과 그를 만나 변화하는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를 보면 마음이 아파 오는 느낌이 있거든요. 희주도 그런 면을 가지고 있죠. 다면적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스릴러는 정말 해보고 싶었던 장르고 이번에 '다른 걸 보여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선택한 이유의 전부였어요"

그러나 막상 돌입한 촬영 과정은 내내 고민의 연속이었다.

"과연 '어떻게 보여지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극명하게 캐릭터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맞을까, 아니면 초연한 듯 표현하는 게 좋을까 하는. 제가 택한 건 후자 쪽이었어요. 희주 안에 어린아이와 잔인성, 담담함까지 다양한 감정을 내가 끌어안고 가면서 하나씩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은근하게 드러나는 톤 앤 매너(Tone & Manner)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촬영했죠"

이처럼 세심하게 집중한 덕분일까? 잔인함이 드러나는 몇몇 장면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촬영할 땐 사실 몰입을 많이 했어요. 희주의 복수가 행해지는 장면에선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구요. 굉장히 센 장면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한동안 멍했어요.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들지 않고 마치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죠. '아 이럴 땐 이런 느낌이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심은경.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 가는 인물로서 매순간 갈등도 많았다.

"촬영장에서 쉬는 시간엔 농담도 하고 그랬지만 제 안에선 혼란스러웠어요. 과연 이 캐릭터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얻어야할까 내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계산하면 안 되겠다'는 점이었어요. 오히려 내가 느끼는 이 혼돈스러움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표현해야겠단 생각이었죠."

그렇게 나온 연기는 실은 스스로 평가할 때 만족스럽지는 않다. 실제로 심은경은 언론시사회 현장에서도 "내 연기에 아쉬움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부족한 점을 드러낸 이유를 물어보니 "어디서든 솔직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온다.

"굳이 내 모습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제가 많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고 그건 숨긴다고 해도 드러나거든요.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사실 예전에는 돋보이고 싶고, 그래서 좀 유식한 척도 했는데 여러 작품을 거치며 시간이 지나다보니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한결 성숙해진 그의 모습은 영화 '써니' '수상한 그녀'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의 연이은 폭발적 흥행 이후 첫 주연 드라마 KBS 2TV '내일도 칸타빌레'의 부진을 통해 얻은 성찰이 큰 몫을 했다.

심은경.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수상한 그녀' 이후 '최연소 흥행퀸'같은 수식어가 저를 옭아매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동안은 앞만 보며 가는 게 당연하고, '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연기를 잘해야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한두 작품씩 하면서 굴곡을 겪으면서 내가 너무 자만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본질을 잊고 살았다는 걸 알았어요. 결국 전 행복하지 않았죠. 연기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어느 순간 기계처럼 연기하고 있더라구요."

아직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결론은 얻었다.

"그동안 남의 눈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날 좋아할까? 저렇게 하면 싫어할거야'란 생각에 휘둘리다 보니 저를 잃어버린 거죠. 13년동안 연기 하나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벽에 부딪치다 보니 어떻게 즐겨야할 지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크든 작든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기로 했어요. 곧 촬영에 들어가는 독립영화 '걷기왕'도 연기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보이지 않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20대 가장 꽃다운 나이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 연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를 물으니 "아직 제대로 누군가를 만나본 경험이 없다"라며 웃음짓는다.

"연애에 대해 예전엔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이제는 해볼만 하겠구나란 생각이에요. 특히 연기할 때 다양한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데 그런 감정의 원천이 연애인 것 같거든요. 제가 조금 더 성숙해지려면 연애를 해야겠단 생각도 들어요"(웃음)

심은경.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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