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사진=장인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드라마 속 '홍설'과는 달리 망설임없이 명확하다. 4년 전 데뷔작인 영화 '은교' 한 편으로 단숨에 충무로의 샛별로 떠오른 것이 결코 거품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김고은은 어떤 질문에도 또렷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줄 아는 배우다. 특히 연기에 대해서는 한층 무르익은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속사포처럼 꺼내놓는다.

케이블채널 tvN 월화 드라마 '치즈인더트랩'(극본 김남희, 연출 이윤정)이 높은 인기를 구가한 웹툰 원작의 부담감을 이기고 성공한 데는 김고은의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큰 몫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완벽한 조건의 대학생 유정(박해진)과 그의 모습을 꿰뚫어 본 여대생 홍설(김고은)의 로맨스를 담은 '치즈인더트랩'은 이제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웹툰 원작의 다소 우울한 분위기와는 달리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탄생한 홍설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부터 홍설이라는 아이 자체가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웹툰 속 설이는 평범한데 나름의 멋스러움이 있고 자신의 예민함을 드러내는 스타일도 아니죠. 연기로 나타내기엔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 싶어 사랑스러움에 방점을 찍었어요. 현실 속에서의 인물처럼 연민도 가고,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고 싶었죠."

그렇게 표현한 홍설은 귀여우면서도 현실적이고 섬세하지만 공감이 가는 캐릭터다.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땐 그 인물이 내 습관처럼 배도록 하려고 해요. 그래서 일상에서나 촬영장에서나 그 모습으로 있으려고 해요. 내가 맡은 인물에 대해 적어도 3박 4일간은 떠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누구보다 그 인물을 잘 이해하고 남들이 모르는 속얘기도 알고 있어야 하는 거죠."

김고은. 사진=장인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구보다 홍설을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그였지만 처음부터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됐던 건 아니다.

"촬영하면서 사실 끊임없이 의심이 들었어요. 과연 내가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건지 불안했거든요. 드라마 촬영 특성상 영화처럼 바로 바로 모니터를 할 수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잘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마다 감독님이 다시금 힘을 주시고 확신을 주신 부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극중 가장 맘에 드는 연기'를 물어보니 "술취한 연기"를 꼽는다.

"술 마신 사람들 관찰을 많이 했어요. 정말 리얼한 포인트를 잡아 내 것으로 승화시키려고 했죠. 그렇게 나온 설이의 술 취한 모습은 꽤 맘에 들게 나온 것 같아요."(웃음)

극중 홍설의 때론 보이시하고, 페미닌한 스타일도 큰 화제가 됐다.

김고은. 사진=장인엔터테인먼트 제공.
"평범함 속에 '멋짐'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타일리스트와 상의를 오랜 시간 했는데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아이템, 예를 들어 재킷이나 청바지, 셔츠 등을 잘 믹스매치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옷이 투입돼 후반부엔 피팅도 다 하진 못했지만요"

실제 김고은은 홍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물으니 "저와는 정말 달라요"라며 웃음짓는다.

"저는 설이처럼 생각이 많거나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편이 아니에요. 설이가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의심하는 부분이 좀 답답하기도 했어요. 설이에 비하면 전 '단호박(단호한 성격의 인물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 스타일'이죠."

대학시절에 대해 물어보니 '푸하하'라며 웃음부터 터뜨린다.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생활이 워낙 빡빡해서 열심히 다니긴 했는데 동기나 선후배들 사이에선 '빨간 추리닝'으로 통했어요. 매일같이 빨간색 트레이닝복에 안경을 쓴 채 탄산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였거든요. 그렇다고 눈에 크게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김고은. 사진=장인엔터테인먼트 제공.
촬영 분위기는 늘 즐거웠지만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워낙 인기 높은 웹툰 원작에 대한 부담 탓이었을까? 촬영중 김고은은 쓰러져서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사실 촬영 중 이렇게 아파보기는 처음이라 저도 많이 놀랐어요. 스태프와 다른 배우 분들께도 정말 죄송했고요. 제가 원래는 강철체력이거든요. 밤샘 촬영도 거뜬했는데 아마도 몇년간 쉼없이 일해서인지 체력이 좀 떨어졌나봐요."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2년 영화 '은교'로 크게 주목받은 그는 이후 영화 '몬스터'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 '계춘할망' 등을 연달아 찍으며 쉼없는 행보를 이어왔다.

물론 '은교'의 후광이 워낙 세서였는지 일부 작품에서는 때론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

"돌아보면 잘 온 것 같아요. 어쨌든 나는 많이 부딪치고 다치면서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 과정을 겪어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일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어요. 흥행이 실패했다고 모든 게 실패한 건 아니고 그 과정을 통해 저는 발전했을 거에요."

그래서 이제는 '기복'을 없애는 게 김고은의 연기 목표다.

"이제 제 나이는 훈련을 통해 기복을 없애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하는 준비 단계인 것 같아요. 그동안은 '내가 잘하는게 뭘까?' 보다 '내가 부족한 게 뭘까?'란 고민 속에서 시도하고 도전했던 것 같아요"

만 스물 다섯. 이제 의심할 바 없이 나이도 '꺾였다'라며 웃음짓는다.

"쉼없이 어려운 작품을 했고,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 했어요. 하지만 이제 '신인'이라는 타이틀로 잘 못 해도 포용이 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숨을 데가 없는 거죠. 작품에 좀더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 같아요."

'방황하는 청춘'의 시기는 이미 지난 듯 한층 성숙해진 김고은의 결심이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