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현주 기자] 사전제작 드라마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2016년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줄기는 사전제작이라 봐도 좋다. 2016년 100% 사전 제작 드라마를 표방하는 드라마들이 줄줄이 방영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전역한 송중기와 송혜교의 만남으로 화제를 산 KBS 2TV ‘태양의 후예’가 2월 24일 첫 방송 날짜를 확정했다. KBS 2TV ‘함부로 애틋하게’와 ‘화랑 : 더 비기닝’은 7~8월에 방송될 예정이다. 이영애의 12년 만의 복귀작 SBS ‘사임당, the Herstory’와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끈 ‘보보경심 : 려’는 하반기 방송을 목표로 한다. 이렇듯 올 한해만 5편 이상의 사전제작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찾는다.

‘쪽대본’과 ‘생방’ 촬영의 악순환이라는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환경상 사전제작에 대한 필요성은 일찌감치 대두됐다. 실제 몇몇 편의 사전제작 드라마가 선보였으나 성공사례는 전무후무하다. 2004년 20억원을 들여 합중 합작으로 사전제작된 ‘비천무’는 방송사 편성을 확보하지 못해 2008년도에나 방영됐다. 이마저도 아쉬운 성적으로 퇴장해야 했다. 이후 사전제작 드라마인 ‘탐나는도다’(2009년)와 ‘로드넘버원’(2010년), ‘파라다이스 목장’(2011년) 등도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 왜 ‘다시’ 사전제작 드라마인가?

완성도를 높이고 드라마 제작환경에 여유를 주기 위해 시도한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몇 년 사이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그 자취를 감추는 듯 보였으나 최근 들어 분위기는 반전됐다. 가장 큰 요인은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2014년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신(新) 시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회당 3억원까지 치솟은 한국 드라마의 인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해외 수입드라마에 대한 사전심의제를 뒀고, 국내 드라마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사전심의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100% 사전제작은 불가피해졌다. 때문에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제작사 PD는 “열악했던 드라마 촬영 현장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했는데 결국 중국 돈이 바꿔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한시된 사전제작 드라마가 결국 중국의 막대한 자본 앞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의 후예’ 프로듀서인 KBS 함영훈 CP는 “‘겨울연가’나 ‘대장금’ 등 우리나라 드라마가 일본이나 홍콩에서 큰 수익을 내고 경제효과를 가져오면서 그 전까지는 산업이라 볼 수 없었던 드라마가 산업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중국 시장에 대응하는 것은 산업화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유일무이한 시장이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결과”라고 밝혔다.

‘보보경심 : 려’의 제작사인 바람이 분다 조선경 기획 PD는 “예산이 큰 작품이라면 해외 시장 매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시장은 지금 많이 가라앉았고 중국 시장이 떠올랐다”면서 “중국에서 심의를 받는 기간이 몇 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100% 사전제작 드라마가 늘고 있는 것”이라 했다.

▶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

여유로운 제작 환경은 사전제작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시간에 쫓기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훨씬 나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태양의 후예’ 측 관계자는 “사전제작을 하면 드라마 제작 방식이 많이 바뀐다. 사전제작 드라마는 대본이 많이 나온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자신했다. 무엇보다 용두사미, 뒷심 부족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사임당, the Herstory’ 제작을 맡은 그룹에이트의 김영배 기획팀장은 “드라마 특성상 여러 계절을 다 담아야 하는데 사전제작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계절감을 다 담아서 시청자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전달하고, 높은 완성도로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사전제작 드라마가 중국 시장을 겨냥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중국 정부의 정책 등 불확실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지난달 30일 촬영을 종료하고 현재 중국 광전총국(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에 들어간 ‘태양의 후예’는 한국과 중국의 동시 방송을 결정했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심의에 정확한 시간은 제작사 측에서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문제. 한 관계자는 “‘태양의 후예’가 한국과 중국의 동시 방송을 결정했지만 중국이라는 나라가 아직 완벽한 시스템이 정착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한중 동시 방송을 완벽히 확정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위해 예산이 늘어나면서 중국 자본에 더욱 의존하고, 중국 입맛에 맞춰진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 역시 존재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 역시 제작자 입장으로서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목소리는 사전제작 드라마를 ‘정도의 길’로 여김으로써 생기는 문제라고 여겼다. 함 CP는 “중국 때문에 사전제작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가 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은 모든 산업 부문에서 중요한 시장이다. 큰 시장을 보고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는 드라마가 있고, 그렇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 사전제작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판이 커지고, 중국 시장을 상대로 상품성이 엿보이는 작품에 한해서 중국 시장에 대비하는 것”이라면서 “아무리 중국 시장을 겨냥한다고 해도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전제작 드라마는 PPL(간접광고) 영업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광고주나 협찬사들이 제품을 내놓고 싶어 하는 특정한 시즌이 존재하는데 사전제작 드라마는 이 시기를 맞추기 힘들다. 때문에 사전제작 드라마에는 유행을 덜 타는 제품 위주로 PPL이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 동시 방영을 확정했다면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제품이나 외식 프랜차이즈 등의 PPL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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