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사진=디자인뮤직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어요. 경기도 일산의 작은 제 작업실에서 만드는 음악이 세계 시장에도 통한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죠."

한국인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댄스클럽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주인공이 있다. 이제 30대 중반의 작곡가 최진석이 바로 그 주인공. 최진석 작곡가가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키스 미 퀵(Kiss Me Quick)’은 영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후 지난해 8월말 미국 빌보드 댄스 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인 작곡가의 곡이 빌보드 댄스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첫 기록이다.

최 작곡가는 노르웨이 출신의 프로듀서 그룹인 디자인 뮤직 (Dsign Music)에서 작곡가, 프로듀서 및 아시아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해외 작곡가, 아티스트들과의 공동작업과 교류를 통해 다수의 협업을 진행해왔다.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져있진 않지만 일본의 아라시를 비롯해 해외 유명 뮤지션 및 K팝을 이끌고 있는 국내 그룹의 곡을 만드는 등 그는 해외 무대에서 더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도 '빌보드 댄스클럽 차트 1위'라는 기록은 예상치 못했던 쾌거였다.

"방 안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집에서 작업하는데 음악을 만들고, 가족들과 함께 얘기하는 게 제 일상이거든요. 일산 골방에서 혼자 만드는 음악이 세계에서 이렇게 힘을 가질 수 있다니 놀라웠죠. 친구들이 제 노래를 들었다며 라디오 방송 내용을 보내주는 걸 보면서 새삼 감사했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품었던 의구심같은 것도 사라졌죠"

최진석. 사진=디자인뮤직 제공.
그가 만든 '키스 미 퀵'은 영국의 유명 아이돌 그룹 ‘더 원티드(The Wanted)’의 멤버였던 네이선 사익스의 솔로 데뷔곡으로 영미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네이선 사익스의 뉴욕 공연은 10분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어요. 좋은 아티스트이기에 프로젝트에 맞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컸는데 들려져야한다는 생각이 컸는데 막상 차트 1위까지 오르니 마냥 신기했죠. 영국에서도 잠시 살긴 했지만 그저 축구로 유명한 나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결실을 맺게 돼 기뻐요."

여기에 지난 9월 그가 작곡가로 참여한 레드벨벳의 첫 정규 앨범 '레드(Red)'도 미국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그가 프로듀싱한 일본 그룹 아라시의 곡 '이메징 크레이지(Imaging Crazy)'가 수록된 DVD는 총 55만장 이상이 판매돼 일본음반협회에서 더블 플래티넘 인증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한 작곡가의 곡이 세계 각지에서 공감받을 수 있는 노래로 자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새로운 네트워크 방식을 통해 다르게 보여주기에 집중했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네이선 사익스의 곡은 모타운의 음악을 어떻게 하면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에 꽂혀있던 가운데 나온 노래예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 보자는 생각으로 레트로한 비트를 다른 형태로 배열하고, 모타운 코드에 프로덕션적인 터치를 많이 했죠. 변주, 변조 등 여러가지 형태 음악적 테크닉이 들어가면서 '아 내가 원하는 게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었어요.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사운드를 접목시켜 세련되고 엣지있게 만들수 있을까에 집중했죠. 그러다보니 음악적으로 파고드는 작업에 많이 주력하게 돼요."

최진석. 사진=디자인뮤직 제공.
그는 이런 '서로 다른 네트워킹의 힘'을 작곡가들의 협업 프로젝트인 '송캠프(Song camp)'에서 찾는다.

2011년 1회 노르웨이 정부 스폰서십으로 시작된 '송캠프'는 많게는 100여명의 작곡가들이 모여 팀을 이뤄 곡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각각의 작곡가들이 멜로디와 트랙 등 곡을 이루는 다양한 부분을 나눠 작업해 하나의 곡을 완성해간다. 송캠프를 통해 유럽의 작곡가들과의 교류가 이뤄지고 실제로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미쓰에이 등 국내 유명 아이돌 그룹의 곡도 이같은 작업을 통해 탄생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송캠프라는 협업 체제가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소개되면서 2012년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같은 곡이 세계적으로 히트, 이제는 이런 협업에 관심을 둔 작곡가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저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던' 초심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송캠프를 인연으로 그곳에서 만난 작곡가들의 협업 그룹인 '디자인뮤직'에 합류하게 된 그는 현재 디자인뮤직의 아시아 지역 본부장을 맡고 있다. 송캠프에 모이는 작곡가들은 여전히 K팝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세계 시장의 K팝에 대한 호응에 대해 그는 "가능성과 한계를 보게 된다"라며 운을 뗐다.

"세계적인 톱 작곡가들이 한국 K팝 그룹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잘 짜여진 매니지먼트 시스템 속에서 결과물이 세련되고 멋지게 나오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K팝은 세계 시장에서 매력적인 분야죠. 단점은 좀더 도전 의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대중적이고 쉬운 콘텐츠에 집중하기보다는 좀더 어렵고 힘든 작업에 대한 열망이 느낍니다."

최진석. 사진=디자인뮤직 제공.
겸손하게 얘기를 이어가지만 '작곡가 최진석'으로 홀로서기까지 그도 독특한 이력을 쌓아왔다. 국내에서 학부 졸업 후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오디오 프로덕션 전공 석사를 마친 그는 갓 서른이라는 나이에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실용음악학과장이 되면서 약 4년간 학교에 몸을 담아왔다. 하지만 학교보다는 본인이 직접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창의적인 작업에 좀더 뜻이 있었던 그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2012년부터 본격적인 음악 작업에 매진했다.

"사실 뭐든 패기만 가지고는 힘들어요. 금방 사그라들기도 하죠. 자기가 원하는 게 뭐냐를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보면서 근성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노력만 한다고 기회가 찾아오진 않거든요. 특히 큰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려면 늘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기회가 올 때마다 조금씩 증명해내면 시간이 걸려도 기회는 오더라구요."

점점 커지는 K팝 시장과 함께 2016년 한해는 그에게 더욱 바빠질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작곡가, 프로듀서로서의 꿈인 그래미 어워드에 가까이 가고 싶은 게 저의 큰 꿈이에요. 처음에는 막연했는데 조금씩 길을 걷다 보니 '아 이제 멀지만은 않겠구나'라는 기운이 느껴져요. 영화 음악을 하면서 오스카와 그래미를 함께 도전하는 작곡가도 꿈꿔 봐요. 사업본부장으로서는 비즈니스적으로 아이디어도 내고 그 안에서 업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트렌드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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